한국 대중음악을 이끄는 뮤지션들이 태동한 인디 음악의 메카, 홍대! 하지만 그곳에서조차 공연할 곳을 찾지 못한 언저리 뮤지션들이 있다. “우리는 공연장도, 돈도 없다. 그렇다면?” 홍대 앞 ‘작은 용산’ 두리반을 시작으로 주민 잔치, 대학 축제, 시위 현장, 길거리까지,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기타를 둘러 메고 마이크를 잡는다. ‘어떻게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며 살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들은 자본, 경쟁, 분열에 맞서 스스로 자립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하는데…. 잉여력 충만한 홍대 언저리 뮤지션들의 립싱크 없는 라이브 성장기가 시작된다!
정용택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파티51>소개글에 나오는 말이다. 자유로운 음악 세계를 펼치기 위해 홍대를 찾아 인디 밴드를 시작했지만, 홍대가 핫플로 뜨면서 이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곧 철거되어야 할 '두리반'식당을 찾아가서 신나게 연주하며 함께 뭉쳤다. 철거민과 인디 밴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이들이 뭉친 것은 자본주의 사회, 자본 앞에 문화도 예술도 소시민적 생활도 위협받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들을 지켜보며 <파티51>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독립영화 감독, 아니 그는 영화감독이라기 보다는 '시대의 기록자'이다. 갈 곳 없는 가난한 상인들의 아픔을 보듬고, 그들의 할 말을 대신 해주는 '시대의 대변인'이다. 서울에서 최고의 핫플인 홍대의 뒷골목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줄이야.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정용택을 만난다.
- 자기소개와 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해 주시죠.
저는 대구에서 태어나 1990년대 후반 대구에서 카메라를 처음 졉했습니다 2000년도에 공식적인 촬영을 했습니다 <낙선>이라는 작품입니다, 총선시민연대, 참여연대 등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유권자들의 힘으로 의정 활동에서 현저히 자격이 안되는 국회의원 후보들을 심판하자는 운동입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장치인 뽑지 말자는 낙선 운동을 다큐멘터리로 만들면서 저는 대구 지역 촬영을 하게되었죠. 그것이 공식적인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한첫 촬영이었습니다.
그전에도 영화는 좋아했어요. '문화학교 서울'이나 '아메닉'같은 민간 시네마테크에 영화를 보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문적으로 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한 적도 없습니다. 단지 국비로 취업을 지원하는 학원에서 사진과 비디오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것이 바탕이 되어 자연스럽게 영화를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낙선> 인연으로 진보네트워크(이하 진보넷, 정보통신 운동 단체)에서 운영하는 인터넷방송국에서 일했습니다. 진보넷은 노동, 농민, 빈민 운동 등 사회운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단체였는데 2000년부터 2003년까지는 그 단체에서 일을 했습니다.
- 정용택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사회적인 이슈, 특히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부각시키는데 이런 작품을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투기와 젠트리피케이션 등 부동산 문제가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홍대 앞 연남동에서 실제로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를 주민으로서 목격했습니다. 게스트 하우스를 찾는 관광객의 소음 등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문제로 동네를 떠난 경험도 있습니다.
2010년대에 서울의 쇠락한 구 도심이 핫플레이스로 변할 때 외지에서 들어온 건물주들이 임차인들을 내쫓는 일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임차인들은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란 단체를 만들어서 거세게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상가법이 세 번이나 개정되었습니다. 한남동 가로수길, 서촌, 을지로 등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보면서 투기와 젠트리피케이션의 심각성을 실감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민주당 민홍철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다주택자 1,000명이 매입한 가구만 해도 4만 1,721 가구입니다. 일부의 투기꾼들이 부동산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부동산 투기로 고소득자들의 자산은 빠르게 늘고 있고, 불평등이 사회 전반에 심화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영화 <파티51> 찍을 때의 이야기를 해 주시죠.
나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파티51>을 찍을 때가 홍대 창전동에서 연남동으로 이사 온 지 3년 정도 지났을 시기입니다. 당시 오세훈 시장이 연남동을 차이나 타운으로 재개발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벌써 10여 년이 훌쩍 지난 2011년 얘기네요. 그때 현재 연남동 홍대입구역 3번 출구 건너편에 재개발에 맞서는 '두리반'이라는 식당이 보였습니다. 식당 사장의 남편 유채림 소설가가 쓴 ‘아내의 우물 두리반' 이란 한겨레 신문 기고 글을 보게 되었죠. 이러한 문제에 깊이 공감하여 무작정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철거 현장이라 하면 극단적인 투쟁 방식이 시민들에게는 무섭고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소설가의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서 철거 현장에서 최소한으로 저항하는 이야기는 함께 서울에서 살며 호흡하는 소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좀 더 어릴 때에는 거친 철거 투쟁 현장에서 연대하고 촬영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파티51>을 찍을 때는 한 사람의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을 때라 부드러운 글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파티51>은 두리반 식당 앞에서 하루종일 인디 밴드들이 임차인의 입장에서 임차인들과 함께 공연한 것을 기록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철거 현장의 어둡고 힘에 겨운 이야기에 인디 밴드들이 찾아와 공연을 하니 즐거운 축제의 장이 되었습니다.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고요. 어두운 면을 밝고 유쾌하게 드러내 사회적 이슈를 만들었습니다.
- 저도 영화를 보았는데 생각과는 달리 무척 흥겨운 영화로 기억이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떠오르는 질문이 있는데요.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밀어내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없애는 것보다 핫플이 그나마 보존되는 것이 낫지 않은가요?
부의 양극화가 문제인 것이죠. 보존은 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보존이라 하기 힘든 상황 아닌가요.지금 서울은 다주택자들의 서울이 되어갑니다.
연남동이 핫 플레이스가 되면서 건물주들이 강남 등 외지인으로 바뀌었습니다.
높아진 임대료로 임차인들이 쫓겨나고 주거지가 상업지로 바뀐 상황입니다.
재개발을 막기 위해 핫플이 되어도 좋다? 핫플이 꼭 답인가 라는의문이 남습니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상권을 개발하면서 주거지는 보호합니다. 일본 도쿄의 땅 값으로 미국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올랐었지만 90년대 버블 붕괴가 되면서 지금은 거의 땅 값이 오르는 않는 상태입니다. 임대료도 함부로 못 올리고요. '차지차가법' 이라는 일본의 상가법이 있어요.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인데, 계약을 맺으면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내보내지 못하고 임대료를 함부로 올리지 못하게 하는 법입니다. 물론 백프로 보호는 못하지만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도 있고요.
독일에서는'선매권' 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다. 일종의 재생 사업 같은 것입니다. 활성화될 지역 같은 곳의 투기를 막기 위해 땅을 민간이 매입을 하더라도, 지자체가 투기를 막기 위해 그 지역을 선택해서 매입하면 지자체에게 우선 권한을 주는 제도입니다. 철저하게 투기를 막는 법입니다.
우리는 너무 무방비한 상태에서 핫플로 활성화시켜 온통 주거지를 상업지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을 막자는 것이지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 지역을 보세요. 대부분 장소는 남아 있지만 주거지가 상업지로 바뀐 지역이 많습니다. 저도 아파트보다 오래된 골목길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만, 주민이 사라지고 프랜차이즈만 남은 골목길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이 많이 듭니다.
<2편에서 계속>
[발굴! 독립영화 감독 ④] 비주류들의 통쾌한 외침, '시대의 기록자' - 정용택 감독 1 < 인터뷰 < 뉴스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