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시간에 깎인 돌. 돌은 움직이지 않지만, 시간 속에서 끝없이 변한다. 미륵의 형상을 닮은 이 돌들은 이제 다시 생명력을 얻는다. 과거를 살아낸 돌들이 미래에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들어보자.
아트선재센터에서 내년 1월 26일(일)까지 이끼바위쿠르르의 첫 개인전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을 개최한다. '이끼바위쿠르르'는 2021년 결성된 작가집단으로 김결, 김종원, 조지은이 참여하고 자신들을 '시각 연구 밴드'라고 표현한다. 이들은 식물과 자연현상, 인류, 생태학의 연계를 탐구하고 이를 시각미술로 표현하는 예술가 그룹이다.
이번 전시는 생태에 뒤덮인 채 시간을 버텨내며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돌과 장소에 주목한다.미래에 올 부처인 미륵은 동학, 불교, 무교의 영향을 받아 우리의 풍경 속에 자리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륵 조각상들은 사찰 주변에서 잊혀지거나, 마을 어귀와 들판 속에서 방치된 채 버려진 돌로 남아 있게 됐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이러한 미륵상의 현실에 주목하여 그 결과를 영상과 설치, 평면 작업으로 만들어냈다. 이들은 미륵 조각상을 찾아다니며 망가진 축사, 태양광으로 가득 찬 폐교와 같은 풍경들을 포착했다. 작가는 임실의 논밭 위에서 만난 석상을 본떠 제작한 설치 작품 <거꾸로 사는 돌>을 전시장 한 가운데 위치시킨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전시장 전체를 “과거를 살아내는 돌”이 있는 풍경으로 변모시키기를 시도한다.
작품 <더듬기>(2024) 는 차갑고 단단한 석상을 숯으로 더듬으며 작가들이 미륵을 만지고 느꼈던 경험을 전달한다. 작품 <우리들의 산>(2024)은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괴상하게 생긴 돌들이 만들어 낸 풍경을 전시장으로 가져온 작품이다. 거대한 산속에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정경을 이루는 기암과 괴석을 지점토와 먹을 활용해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영상 <쓰레기와의 춤>(2024)은 먼지와 쓰레기들이 폐허 속에서 춤추는 모습을 담아낸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먼지 속에서 자연과 조화롭게 존재하는 새로운 관계를 환기시키며, 우리에게 함께 존재함의 의미를 묻는다.
이끼바위쿠르르는 미륵이 이야기하는 미래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품으며 ‘거꾸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했다고 전한다. 이끼바위쿠르르의 조지은 작가는 "(미륵 석상이 남아 있는 곳은)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장소이기 때문에 미륵이 오랜 시간을 버티고 스스로를 지킨 것처럼 보였다"면서 "버려짐으로써 오히려 그 존재가 지켜지는 것을 보며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6일까지.
돌의 춤과 미륵의 손짓, 아트선재센터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 < 전시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