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 일본 백화점과의 경쟁
남촌의 중심은 센긴마에히로바 鮮前廣場(조선은행 앞 광장, 현 한국은행 앞 광장)이다. 조선은행 앞의 넓은 광장을 중심으로 네 개의 일본 백화점이 포진하고 있었다. 미츠코시 경성점(三越,현 신세계백화점)을 필두로 죠지아(丁子屋 현 롯데호텔 영플라자) 미나카이(三中井 현 밀레오레 자리), 히라다야(平田 현 고려빌딩 자리) 네 개의 백화점들이 화려한 상품과 세련된 상술로 남촌의 일본인들을 장악하더니 북촌의 조선 사람에게까지 손을 뻗었다. 북촌의 박흥식이 경영하는 화신이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박흥식의 첫 번째 카드는 상품권 발행이다. 경성에는 뒷돈이 성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가 돈을 주고받는 것은 꺼리는 법이다. 박흥식은 사람의 마음을 상술로 활용한 것이다. 사람들은 상품권을 돈 대신 이용했다. 상품권이 불티나게 팔렸다. 조선인의 민족감정도 호소했다. 감옥에 갇혀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병보석으로 풀려나게 하고, 출옥 후 2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비운의 조선 왕족들을 초청하는 이벤트도 대박이 났다. 연이어 당시 최고의 문화주택을 경품으로 내걸어 소비자들을 유혹했다. 안정적 물품 공급을 위해 그는 오사카에 빌딩을 인수하여 사무실을 내고 필요한 상품들을 대량으로 싼값에 매수하였다. 결재도 현금으로 하여 더 할인 혜택을 받는 방법으로 가격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 주요한을 고용해 광고와 마케팅을 담당하게 했다.
승승장구하던 화신이 1935년 1월 27일 인근 사과를 파는 과일가게에서 발화한 불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에 굴복할 박흥식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가 박길룡에게 조선 최고의 건물을 부탁한다. 드디어 2년 만에 지하 1층, 지상 6층, 연건평 3,011평의 백화점이 탄생하니 이제 남촌의 여느 백화점과도 경쟁하여도 뒤질 리 만무했다. 6층 자리 신축 건물은 엘리베이터를 완비한 초호화 건물이었다. 옥상에는 전광판을 설치하였다. 불빛이 점등하는 대로 글자가 쓰여지는 희한한 최첨단 네온 싸인 광고판이었다. 당시 경성의 최고의 자랑거리는 화신백화점 갔다오는 것이었다.
-미쓰코시 백화점
본정통이라고 부르는 진고개(충무로)에서 내려오는 길과 조선의 중심로인 남대문로가 만나는 교차점이 남촌의 중심이다. 전차가 조선은행 앞 광장을 지날 때는 남산 중턱의 조선신궁을 향해 승객들은 모두 일어나 차장의 구호에 따라 절을 해야 했다. 이러한 상계와 정치 문화의 중심지에 자리 잡은 곳이 미스코시 백화점이다.
미스코시백화점은 1904년 도쿄 니혼바시에 미스코시 본점 들어선 이후 조선에 진출했다. 미스코시 경성출장소 오복점(포목점)으로 충무로의 목조건물에서 시작했다. 그 후 1930년 선은 광장 맞은편 지금 위치에 3층짜리 큰 빌딩을 지어 백화점을 개업한 것이다. 이 백화점은 2016년 영화 암살에도 등장한다. 영화 속 주인공 김윤옥(전지현 분)의 결혼식이 치러진 곳이라는 것은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을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백화점은 1852년프랑스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이 처음 생긴이래, 서구로 확장되었다.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졸라는 백화점을 '상업의 대성당'이라 불렀다. 성당에서 기도하던 사람들이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며 풍요로운 물신을 찬양한다는 의미이다. 1933년 종합잡지 '삼천리' 기사를 보면 경성인구 30만일 때 미스코시백화점 하루 방문자 수가 12만6천 명. 화신 백화점이 11만7 천 명으로 비등비등했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 나오는 공간
미스코시 백화점은 문학 작품 속에도 자주 등장한다.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에 등장한다. 본명이 김해경(金海卿)인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기사가 되었지만 지병인 결핵이 도져 총독부를 사직한다. 시쓰기에 열중한 것은 배천온천에서 만난 금홍이와 차린 제비다방이 망하고 부터이다. 친구 박태원의 도움으로 조선중앙일보에 1934년 에 시 「오감도」를 발표하여 문단과 독자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가 쓴 시는 띄어쓰기나 문법을 무시한다.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소외된 근대 지식인인 자신이다. 그는'육신이 피로하고 정신이 은화처럼 맑을 때' 거리로 나선다. 아내가 감기약이라고 준 것이 실은 수면제였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정신이 맑은 날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쓰꼬시로 갔다. 나는 거기서 스물 여섯 해를 회고했다. 피로와 공포 때문에 오탁의 거리를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굽어보니 현란한 현실 속에 사람들이 수선을 떨고 있다. 현란을 극한 정도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 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미쓰코시 옥상에서 한번 멋지게 날개를 펴고 날아보자던 이상은 일본에서 불령선인이 되어 수감 후 페병으로 죽는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말이 '멜론이 먹고 싶다'는 거였다.
해방이 되자 미쓰코시는 적산으로 편입되었다. 전쟁 중에는 미군 px로 사용되었다. 미군들은 이곳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했다. 이곳에 일하는 한국 점원들은 퇴근 할 때는 몸수색을 받아야했다. 이 PX는 우리나라 문화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박완서 소설 나목의 주 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PX의 한국물산점에서는 미군들이 가져온 애인이나 가족사진을 스카프나 손수건에 그려주고 돈을 받았다. 대여섯 명의 화가가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팀장이 소설가 박완서였다. 박완서가 지나가는 미군을 데려오면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주었는데 그 중에 박수근이 있었다. 박완서의 소설 <나목>은 그 때 그 시절의 이야기이다. 일제시대 미쓰코시백화점이 6.25전쟁 때 미 8팔군 PX로 사용할 때도 지금과 같은 건물이었다. 명동의 신셰계백화점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단 말인가. 건물을 둘러보고 옥상에도 가본다. 건물은 말이 없다. 묵직하게 자기의 자리를 지킬 뿐이다.
-박흥식의 몰락
일제하에서 승승장구한 기업인 박흥식은 중추원참의가 되었고 1937년 중일전쟁 당시에는 군용비행기 헌납운동에 앞장선다. 그러나 해방을 도둑처럼 찾아왔다. 그가 한 모든 행위들이 친일행위로 간주되었다. 반민족행위 특별법 1호로 구속 수감된 것은 1949년 1월 11일이었다. 일제하에서 친일 행위가 문제가 된 것이다. 다른 정치범들에게는 오히려 관대했다. 석방도 1호였다. 103일 만에 무죄로 풀려났다. 한국전쟁으로 백화점은 불에 탔으나 건물 맞은편의 신신백화점을 신축하여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위기가 또 찾아왔다. 1961년 5.16의 군사정부는 그를 부정 축재자로 몰아 자택에서 연행하여 재수감 했다. 석방의 댓가를 요구했다. 그는 신도시 계획안을 제출했다. 그가 제출한 '남서울 신도시계획안'은 강남의 2,410만평에 11년간 270억을 들여 32만~48만 명을 거주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10년 후 강남 개발의 모델이 되었다.
그는 새로운 정부에서 또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잘못 짚었다. 구리시 근처에 비스코스 인견사 회사를 차렸다. 국제적으로 사양 산업인 인조견 사업에 뛰어들은 것이다. 성공할 리 없었다. 그동안 모은 모든 자금을 일시에 날렸다. 300억의 부도를 내고 도산한 것은 1980년이었고, 문화재와 다름없는 가회동 177-1번지 900평 그의 저택은 1987년에 처분되었다. 이 저택에서 한 때는 정주영이 살았다. 강남구 역삼동의 아파트로 이사한 후 파킨스병을 앓다가 1994년에 조용히 임종을 맞았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역임 했던 손정목 교수는 ‘그는 한국기업이 20세기 전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의 희생자’라고 평가하였다.(서울도시계획이야기 1권.176쪽)
PX로 쓰였던 미쓰코시 백화점은 1962년 동방생명으로 넘어갔고, 지금은 신세계 백화점이 되었다. 조선에서 500백년 상권을 대표하는 육의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던 화신백화점은 한보그룹에 1986년 넘어가고 그 이듬해에 철거되었다. 박수근은 1965년 사망하고 그 해에 중앙공보관에서 열린 유작전을 본 박완서에 의해 소설 '나목'이 탄생했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신세계 백화점이라는 이유로 명동 초입에 아직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옥상에서 날개야 돋아라 절규한 이상은 진작에 요절했다. 그러나 소설 '날개'는 여전히 우리에게 소중한 문화 유산으로 남아있다.
고맙게도 명동의 신세계백화점은 옥상을 개방하고 있다. 날개가 움츠러진 사람들은 신세계로 달려가자. 정신이 은화처럼 맑은 날 그곳에 가서 겨드랑이에 돋아나는 날개를 의식하고 한 번 이 세상에 두려움 없는 날개짓을 하자. 기업은 가고 브랜드는 잊혀져도 작품은, 예술은 영원히 남는 법이다.
[브랜드의 문화사 ⑩] 화신백화점과 미쓰코스백화점 2 < 브랜드의 문화사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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