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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Dec 06. 2024

[일상의 리흘라] 느낌과 감정은 지식에 비례한다

느낌과 감정은 머릿속에 든 지식의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같은 것                     


느낌과 감정은 본능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울컥 다가오고 가슴 뛰게 하고 마음 졸이기도 하고 흥분하기도 하는 것이 느낌(feeling)이고 감정(感情 ; emotion)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어할 수 없는 본능 같은 이 느낌과 감정은 머릿속에 든 지식의 호수 위에 떠있는 돛단배 같은 것이다. 머릿속에 든 지식이 없으면 느낄 수도, 울 수 도, 웃을 수 도 없다. 그냥 무미건조해진다. 봐도 본 것이 아니요, 들어도 들은 것이 아니다. 느낌이 없고 감정이 없으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것이다. 연결고리가 지식인데 지식을 쌓아놓지 못하면 본 것과 들은 것을 느낌과 감정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호통재라! 그렇게 무식한 인간을 우리는 이번주 초에 밤잠 설치며 지켜보는 비극과 마주했다. 서울대 나와도 무식할 수 있음을 보여줬고 책 몇 권 읽지 않아 동네 건달 수준을 못 벗어난 어법과 말투를 통해, 오히려 듣는 사람이 쪽팔리는 부끄러움을 경험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놈이 '책 한 권만 읽은 놈'이다. 그것밖에 모르기 때문에 다른 다양성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그런 인간들은 느낌과 감정도 하나밖에 없다. 자기 것 밖에 모르는 것이다.


다양한 지식을 섭렵하지 못하고 오로지 법전만 들여다본 전형적인 외눈박이의 민낯을 봤다. 그것을 문학적으로 '무식하다'라고 한다. 느낌과 감정도 지식으로 훈련되는 것이다.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은 뭔가? 다양한 지식을 쌓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읽고 책 속에 있는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식을 언제든 꺼내 조합하고 융합해 내서 자기 것으로 말하고 표현하고 쓸 수 있을 때가 되어야 그때서야 존재로서의 개인이 되는 것이다.



법전 하나만 공부했으면 그 분야에만 계속 있어야 그나마 빛을 발할 수 있다. 알량한 법전으로 무장한 지식으로 천하를 주무르려고 하는 발상 자체가 어이없을 뿐이다. 사실 그런 오판을 하도록 판을 깔아준 사람들이 먼저 반성할 일이다. "그때는 몰랐다고?" "이 정도일 줄 알았나?"라고? 그건 그를 지켜본 자신이 관심 없고 무식해서 그렇다고 자인하는 꼴이다. 알려고 하지 않았고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거라고 외면해 버리면 오늘 같은 사달이 난다. 감시하고 지켜보는, 깨어있는 시민이 필요한 이유다.


따뜻한 느낌과 감정의 향기가 아우라처럼 피어오르려면 어려서부터 교육이 되고 훈련이 되어야 한다. 예쁜 말을 하고 아름다운 시를 읽고 잔잔히 가슴 떨리는 음악을 접하고 한없이 펼쳐진 자연풍광 앞에 서보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인 책 속에 빠져들어 다양한 간접경험을 하게 하여 느낌과 감성을 키워내야 한다. 그렇게 느낌과 감정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느낌과 감정은 머릿속에 든 지식의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같은 것이다. 책상 위에 놓인 연필 한 자루에서 137억 년 우주의 진화를 읽고 46억 년 지구의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연필의 나무 몸체에서 시베리아 향나무의 키를 키워온 바람과 호수의 잔잔함, 강물의 일렁임과 회귀한 연어의 사체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흑연과 점토가 배합된 검은 연필심에서 지구 맨틀 속에서 용광로처럼 끓고 있던 지구의 속살을 만질 수 있어야 하고 다이아몬드와 같은 탄소배열의 분자구조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때서야 느낌과 감정이 물밀듯이 벅차게 다가오고 살아난다. 그때서야 지식이 뭐고 느낌이 뭐고 감정이 뭐고 말이 뭐고 언어가 뭔지 말하고 느낄 수 있다. 알지 못하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모르면 느끼지도 웃지도 울지도 못한다. 내가 무얼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게 대부분 범인들의 인생이지만, 그래서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찾아야 한다. 그래야 새로움에 경악하고 놀라움에 화들짝 깨어나게 된다. 그래야 느낌과 감정을 동반한 기억이 만들어진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나? 무엇을 놓쳤길래 괴물을 만들어 놓았나? 한 개인의 천박한 일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상처가 크다. 견고하게 쌓지 못한 것이 있다면 이제라도 벽돌을 하나하나 다시 쌓아야 한다. 흙벽돌이 아니라 가마에서 구워낸 내화벽돌로 다시 쌓아야 한다. 건전한 상식과 합리적 생각이 모르타르가 되어 천년 만년가는 성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견고한 성벽에 지식의 붓으로 그림을 예쁘고 멋지게 그려야 한다. 그게 지금 우리가 해내야 하는 사명이다. 지구촌에서 비웃음 받는 광대가 되지 않는 길이다. 헛발질 한방 때문에 근본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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