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한 명 잘못 선택하면 나라 꼴이 이 모양이 되는구나를 절실히 보여준 해프닝이었다. 천박하고 비루하여 낯을 들 수 없다. 내가 뭐가 부족한지는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 터이다. 내가 부족하면 부족한 것을 보완할 사람을 잘 쓰면 된다. 그것조차 못하는 자가 권좌에 앉아 있으니 결국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깜도 안 되는 인사들을 자리에 앉혀 놓고 22번이나 탄핵 소추를 발의했다고 핑계를 대고 있다. 제대로 된 사람들을 인선했으면 애당초 이런 사단도 없었다.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남 탓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핑곗거리 중 제일 쉬운 게 남 탓하는 거다. "너 때문이야!", "나는 잘하고 있는데 너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없다"라는 전형적인 유아기식 발상이다.
비상계엄 선포 전문 속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보면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동네 양아치 어법을 벗어나지 못했고 용어 선택 또한 조폭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법전 말고 소설책, 수필집, 시집이라도 한 권 읽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설사 속마음이 그렇다 하더라도 말을 할 때는 정중하게, 또는 엄중하게 돌려까야 한다. 그게 진정한 고수의 화법이고 지도자가 써야 할 언어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천박한 단어들을 끌어와 표현할 수 있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의 언어와 말투가 이렇게 천박할 수 있나? 주변에 있는 스피치 라이터들은 뭐 하고 있나? 감히 입도 뻥긋 못하는 분위기인가? 이런 분위기에서 책사 하며 밥 벌어먹고 사는 것도 치사하고 힘들겠지만 그 정도면 그냥 떠나라. 근묵자흑(近墨者黑) 근주자적(近朱者赤)이다. 참담하다. 뭐 새로운 것도 아니긴 하다. 이미 국정 브리핑 할 때부터 알아봤다.
비상계엄선포 전문 속 단어와 어법을 보자.
"판사를 겁박하고", "주요 예산 전액 삭감하여 국가 본질 기능 훼손하여 마약 천국, 민생치안 공황상태로 만들어", "예산 폭거로 국가 재정 농락", "민주당의 입법 독재, 예산안 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아", "국정은 마비되고 국민들의 한숨만 늘어", "헌정 질서를 짓밟고 국가 기관을 교란시키는 내란 획책으로 명백한 반국가 행위",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탄핵과 특검, 방탄으로 국정이 마비상태",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 체제 전복 기도",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척결",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세력의 준동",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국가 정상화시키기 위해 계엄 선포", "자유 대한민국 영속성을 위해 부득이한 것", "신명을 바쳐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
어쩌면 이렇게 외눈박이 시선으로 세상을 볼까? 세상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어느 하나, 어느 한쪽의 시선만으로 굴러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같이 부대끼고 용광로처럼 끓기도 하고 차가운 얼음처럼 식기도 하면서 함께 살아내야 한다. 그것도 엄중한 국제 질서의 틈바구니에서 말이다. 그래서 타협이 필요하고 협상이 필요하고, 양보가 필요하고 상생이 필요한 것이다.
계엄을 선포하고도 계엄이 안 될 것이라는 것을 당사자도 알았을 것이다. 충격 요법을 주어 정국을 잡기 위한 고단수 전략일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평가하기에는 너무도 허술하다. 술 먹고 주사 부리는 정도의 수준이어서 그렇다. 5·18 군사독재 시절의 계엄사령관들은 군을 동원해 철저히 언론을 통제하고 정치인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해서 쿠데타에 성공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의 계엄 선포는 너무도 어이가 없다. 하긴 군대도 안 갔으니 군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턱이 없을 거다.
이렇게 저렇게 말을 하는 것조차 창피하다. 지난 밤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에서 지우기로 한다. 하지만 오늘부터 벌어질 사회 혼란의 분위기는 어쩔 것인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다들 예상하고 있는 것과 같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야 내가 얼굴 들고 해외 여행이라도 한번 더 갈 수 있을 듯하다. 부끄러움이 국민들의 몫이라는 것에 참담하지 않을 수 없다. 괜히 잠만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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