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그림 중에서도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것은 바로 연꽃 그림이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연꽃을 언급한 기록도 상당히 많다.
연꽃을 언급하고 있는 문헌 자료를 찾다 보면, 양적 방대함에 놀라고, 상세한 묘사에 다시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동아시아의 문인들은 연꽃 부위를 상세하게 나누고, 그 각각의 부위에 다른 명칭을 붙였는데, 이러한 예는 연꽃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그 만큼 동아시아 문인들이 연꽃에 대해 애정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꽃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연꽃의 상징적 의미는 그 생태적 특징에서 비롯되었다. 연꽃은 진흙, 곧 세속에 뿌리를 두되 거기에 물들지 않고 하늘(깨달음의 세계)을 향해 피어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연꽃의 생태적 특징에서 비롯된 상징성은 불교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사찰의 극락전 앞에 연지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 때문에 연꽃이나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이 불화에 등장하는 예가 많다.
그 중 대표적인 예로 <관경십육관변상도(觀經十六觀變相圖)>를 들 수 있다. <관경십육관변상도> 화면 상단에는 분수가 그려져 있다. 분수에서 솟아 나온 열네 개의 수로는 여덟 개의 연못으로 연결된다.
불화(佛畵)에 연못이 그려진 예는 많다. 하지만 연못 물의 근원(根源)인 수로가 그려진 예는 <관경십육관변상도>가 거의 유일하다. 극락에 왕생하기 위한 연화화생의 과정을 도상화한 부분이 바로 연못이다.
<관경십육관변상도>에 분수와 수로를 그려 연못의 근원까지 드러낸 연유는 무엇일까. 이 작품에 수로 도상을 그린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는 해당 불화와 관련된 경전의 내용을 고찰하고 불화 제작 시점의 정치,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경전 내용과 제작 시점의 시대적 배경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현세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극락에 왕생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고려인들은 현세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극락왕생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간절한 바람을 이루기 위한 방도를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다. 불교에서 부처의 지혜를 믿는 사람이 서방정토에서 왕생할 때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연화화생(蓮華花生)’의 의미로 연결되었다.
인도 고대신화에서 등장하는 연꽃은 혼돈의 물 밑에 잠자는 영원한 정령인 ‘나라야나’의 배꼽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로부터 연꽃을 우주의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꽃으로 믿는 ‘세계연화사상(世界蓮華思想)’이 나타났다.
한편, 송대의 성리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을 인격 높은 군자(君子)에 비유하면서, 연꽃은 다양한 문예(文藝) 작품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나는 국화(菊)는 꽃 가운데 은일지사(隱逸之士)요, 모란(牡丹)은 꽃 가운데 부귀한 자요, 연꽃(蓮)은 꽃 가운데 군자(君子)라고 생각한다”
연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기원전으로 올라간다. 그렇다면 이 연꽃 그림은 언제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것일까? 기년이 있는 한국 작품 가운데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연꽃 그림은 안악3호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음 편에서는 중국과 한국 문헌에 나타난 연꽃에 대해 살펴본 뒤 민화 속에 핀 연꽃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지난 12·3 사태는 우리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위헌불법적 상황 속에서도 깨어있는 시민정신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내려 한 국민들을 보며, 흙 속에 뿌리를 두되 거기에 물들지 않고 그 주변 또한 깨끗하게 만드는 연꽃이 떠올랐다. 민주주의를 일깨운 우리 모두가 아름답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다시 꽃피우기를 바라며 연꽃을 바라본다.
[김취정의 올 댓 민화 ④] 우주의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꽃, 연꽃 < 김취정 [올댓민화]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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