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가 종이를 적시던 시간과 캔버스가 세상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순간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통은 늘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담아낼 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의 붓질로 세상을 표현하고, 수묵의 번짐으로 삶의 흔적을 담아낸다는 것. 월전 장우성이 남긴 길을 따라, 오늘의 작가들은 각자의 언어로 그 전통을 새롭게 해석한다. 전통의 붓끝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현대의 손길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순간, 그림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 새로운 울림을 전한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내년 2월 9일까지 월전 장우성의 작품과 그의 작품을 재해석한 현대 한국화 분야 작가 59인의 작품 60여 점을 선보이는 《시정화의 時情畫意: 월전을 그리다》전을 개최한다.
‘시정화의(時情畵意)’란 ‘오늘날의 현실을 그림에 담아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대 한국화의 성립과 전개에 있어 주춧돌 역할을 했던 월전 장우성(1912-2005) 작품 세계의 특징을 함축하는 말이다. 월전은 조선시대 회화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이를 현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결과 문인화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사실성과 장식성을 더하고 추상미술까지 염두에 둔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월전의 그림은 그 자체로도 유의미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영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익히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20세기 후반 월전과 그의 작품은 전통을 지키면서도 당대성을 잃지 않은 선구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로 인식되면서 주목받고 또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는 당시와 후대의 다른 작가들에게도 영감을 제공한 바 있다. 오늘날 한국화 작가들은 연배에 따라, 활동 지역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지만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월전으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다. 《시정화의 時情畵意》전은 바로 그러한 월전에 대한 오늘날 작가들의 인식과 영향, 그리고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모색의 결과물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실로 다양하다. 인물화, 산수화와 같은 기존 장르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작품도 있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많다. 수묵채색화의 전통에 근거하면서도 작가 각자의 구상과 노력이 녹아있는 작품들이다. 이는 오늘날 한국화의 다양성과 다변화를 반영하는 것임과 동시에 월전과 그의 작품이 한 시대에 머물지 않는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또한 이번 전시는 여러 연령대의 한국화 작가들이 다양한 화풍으로 그린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측면에서 한국화의 현 지점을 보여주는 의미도 지닌다.
현대 한국화의 심장을 잇다 - 월전을 그린 59인의 예술적 공명 < 전시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