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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Dec 26. 2024

성탄절 아침에 보는 '플란다스의 개'와 루벤스의 성화

집에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에는 <황금박쥐> 같은 만화영화를 옆집 친구 집에서 눈치를 봐가며 보았다. 부모님이 어렵사리 장만한 흑백 텔레비전이 안방을 떡 차지하고 난 뒤에는 많은 만화영화를 보며 동심을 키웠다. <아톰>이나 <로봇 태권브이> 같은 작품이 오후 5시만 되면 여지없이 흑백텔레비전에서 흘러 나왔다. 이런 작품들이 우리나라에서 만든 영화가 아닌 'Made in Japan'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참 허탈했다. 아마 누구도 그랬을 것이다. 대부분의 어린이가 그랬듯이 중독성이 강한 만화영화를 외면하기는 힘들었다. 보통 만화영화는 선과 악의 대결 구도가 필수적이라 무척 폭력적인데 유난히 마음을 따듯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었다. <플란다스의 개>이다.

'플란다스의 개' 일부 장면. /출처: 후지tv


<플란다스의 개>는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지역의 이야기이다. 축구 국가대표 설기현이 소속사가 있던 곳인,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야기이다. 지금도 눈에 선한 것이 우유배달 소년 네로와 그의 충견인 파트라슈가 아름다운 풍광 속으로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다. 줄거리를 회상해 보자.

'플란다스의 개' 일부 장면. /출처: 후지tv


네로는 친구이자 풍차 오두막집 외동딸인 아로아의 초상을 그리며 화가의 꿈을 품는다. 네로가 가장 소망하는 것은 안트베르펜 대성당 중앙 계단에 걸린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것이다. 네로는 널빤지와 목탄으로 할아버지와 파트라슈를 그려 '루벤스탄신 기념 회화 콩쿨'에 출전한다.


열심히 할아버지와 일상을 살아가는 네로에게 시련이 찾아 온다. 풍차 오두막의 방화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유일한 생계 수단인 우유배달도 못하게 되고 집세를 내지 못하게 되자, 집주인은 야박하게도 이들을 거리로 내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원한 보호자로만 알고 있던 할아버지도 자신의 곁을 떠나 네로는 사고무친의 신세가 된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험한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경우가 있다.


눈보라치던 크리스마스 날, 네로와 파트라슈는 허기를 면하기 위해 아로아의 아버지인 코게츠와 마을사람에게 식량을 구걸하지만 방화범으로 몰린 네로를 맞아주는 사람이 없다. 매정하게 길거리로 내 몰린다. 방화범에게 줄 음식이 없다는 것이다. 눈보라 속에 헤매는 어린 소년과 충견의 모습이 애처롭다, 하늘은 누구의 편인가. 영화를 보며 눈시울이 뜨거울 즈음, 하늘이 도왔는지 충견 파트라슈는 눈발 속에서 현금다발을 발견한다. 원래 충직한 개는 늘 어려움속에서 화마에 휩싸인 주인을 구한다든지, 위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법이다. 그 현금 다발은 방화범의 누명을 씌운 아로아의 아버지 코게츠의 지갑이었다. 정직한 네로는 지갑을 주인의 집에 놓아 두고 크리스마스에게만 특별히 관람이 가능한 루벤스의 성화를 보러 성당에 들어간다.

출처 후지tv


크리스마스 밤, 제단 내 성화를 비추는 달빛을 통해 네로는 평생의 꿈인 화가 루벤스의 그림을 본다. 네로는 더 바랄 게 없다며 파트라슈를 끌어안은 채 눈발이 날리는 취위 속에서 잠이 들고 눈발 속 차가운 시신이 된다. 동네 사람들은 방화범 찾고 네로를 찾아 나서지만 차디찬 시신으로 변한 뒤였다.


이런 꿈 같은 이야기를 일본 만화인 줄도 모르고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한 그림이 화가 루벤스의 성화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만화영화의 서사는 너무도 슬프고 아름답다. 부모가 없는 소년, 할아버지와 착한 손자, 그 소년을 따르는 충견의 이야기, 지금 이런 만화를 만들어도 누구나 스토리에 빠져들 만하다.


그러나 이 서사에서 가장 마지막 결정점에는 루벤스라는 화가, 그리고 그 화가가 그린 그림이다. 영국 소설가 위다(1839~1908)가 쓴 이 만화 원작은 백여 년 전 영국의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고, 수십 년 전 이것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일본의 문화적 역량을 가늠하게 한다. 이 소설은 영국이나 벨기에에선 지명도가 낮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를 끌자 배경이 되는 지역에 기념비와 동상이 세워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루벤스는 누구이고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림은 어떤 그림이었을까? 이 성화의 제목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1611)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루벤스의 작품보다도 네로가 가장 보고 싶어한 그림으로 더 유명하다.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611


그림의 중앙에는 십자가의 무거운 형을 마쳐 죽음으로 변한 예수님이 대각선으로 묘사된다.몸이 무거운 예수님을 주변 사람들이 바치기에 좀 벅차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예수님이 가장 아꼈던 사도 요한인데 그는 무게를 감당하지는 못하는 자세이다. 좌측 푸른 옷을 입은 여인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이고 왼쪽 상단의 붉은 모자를 쓴 남자는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다.


죽은 예수의 몸은 육체적인 생명이 없으나 이들을 아꼈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십자가에서 신비롭게 내려온다.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루벤스의 그림은 십자가의 고통스런 죽음을 맞고 내려오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네로는 이 그림을 보고 자신도 삶 이후의 생명에 소망을 두지 않았을까?

루벤스,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1611


 안트페르펜 대 성당 중앙 제단에는 이 그림외에도 루벤스의 걸작 4 편이 걸려 있다. 이 중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1611)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오늘은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이다. 평화와 구원을 위해 죄 많은 세상에 구세주가 되셨다. 세상은 힘들고 팍팍하고 뜻대로 되는 것 같지 않지만 넓게 보고 멀리 보면 사필귀정이고 순리대로 돌아간다. 땅에는 평화! 하늘에는 영광!


성탄절 아침에 보는 '플란다스의 개'와 루벤스의 성화 < 미술일반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출처 : 데일리아트 Daily Art(https://www.d-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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