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철은 예술가이자 글쓰기를 사랑하는 작가이다.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글로 자신의 생각을 담는다. 그의 작품에는 함축적인 시의 조형 언어가 들어있는데, 그의 작업을 한국적 개념미술로서 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예술은 시와 같이 짓는 것’이라 생각하여 "시인들이 종이와 연필 한 자루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언제나 내게 경이로운 일이었다”. "조각은 왜 저런 상태가 되지 못할까"가 의문이었다고 말했을 만큼 작품에 시적 여운을 표현하려 한다.
안규철(1955~)은 1980년대에 중앙일보의 「계간미술」기자로 7년간 활동했다. ‘현실과 발언’에 참가하여 민중미술 운동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문제를 담은 작품들을 작업했다. 이후, 독일에서 7년간의 긴 유학 생활을 하고 돌아와 각종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또한,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학과 교수로 오랜 기간 재직했다. 여러 권의 책을 쓰기도 했는데 자신의 작업들에 관해 담은 책으로『사물의 뒷모습(안규철의 이야기로 그린 그림)』(현대문학, 2021), 『아홉 마리 금붕어와 먼 곳의 물』(현대문학, 2013), 『안규철 43 테이블, 테이크아웃드로잉』 (2008), 『그 남자의 가방』(현대문학, 2001) 이 있다. 책에서는 작가의 노트와 함께 그가 가진 예술에 대한 생각들을 펼쳐볼 수 있다.
그의 대표 작업 중 하나인 두 개의 문과 화분에 꽂힌 나무 의자로 구성된 설치작품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1991)은 작가가 유학을 결심하기 시작했을 무렵 가졌던 작가 자신의 고뇌를 담은 작업이다. 두 개의 문 중 하나에는 ‘인생’(Leben)이라는 문구가 또 다른 하나에는 ‘예술’(Kunst)‘이라고 써져있다. ‘인생’이라 쓰여져 있는 문에는 손잡이가 없어 갈 수 없게 제작되었고 ‘예술’이라 쓰인 문에는 손잡이가 다섯 개로 들어가기가 어렵다. 화분에 꽂혀져 있으나 나무가 아닌 의자는 혼란스러운 무명 작가로서 자신의 상태를 보여준다. 한때 나무였을 의자가 의자로서의 기능을 잃고 변형된 모습은 ‘인생’과 ‘예술’ 사이에서 갈 길을 잃은 작가의 처지를 비유한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을 확장시켜 작가가 또 다른 텍스트를 부여하는 작업은 유쾌하게 다가오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을 보는 이에게 작품 속 철학적인 의미을 떠올리게 하고 고심해보도록 한다.
이번에 스페이스 이수에서 열린 《안규철의 질문들-지평선이 없는 풍경》에서는 작가의 신작 총 8점이 전시되었다. 작품이 설치된 전시공간은 서초구에 위치한 이수 그룹 사옥 내의 1층 로비로 이수 그룹은 2020년부터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여러 다양한 전시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3년만에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이며 신작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작가의 여러 설치, 회화, 조각 등의 작업들이 전시 공간을 채웠으며 인터뷰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번 전시의 부제인 ‘지평선이 없는 풍경’은 이중적이고 함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지평선이 존재하지 않는 너머의 세계를 말한다. 지평선은 하늘과 땅을 나누는 경계로서 지선이 실제 존재할 수도 있고 혹은 지평선 너머의 장소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작가는 관람자가 ‘지평선이 없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 작품 속에 담긴 질문들에 대해 살펴보고 저마다의 응답을 내릴 수 있게 제시한다.
전시장 한 가운데 커다랗게 있는 <나선형 벽>(2024)은 계속하여 돌아가지만 종점에는 도착할 수 없는 설치작업이다. 벽을 따라가나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전시 제목에서의 지평선의 의미처럼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 개의 수평선>(2024)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 작품으로 세 개의 다른 수평선이 각각 기울여져 놓여 있고 작품 앞의 바닥에 기울여진 받침대가 위치한다. 우리는 기울어진 받침대에 서서 수평선을 바르게 보려고 하는 시도를 하며 그림 속 삐뚤어진 수평선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작가는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자의적인 필터를 통해 볼 수밖에 없고, 주어진 세계를 넘어서는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을 잃어버렸다. 새로운 출발은 이 절망적인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지평선은 없다. 우리는 지평선을 다시 만들 것이다”라고 이번 전시의 작품에 대해 서술했다.
이외의 작품으로 표지판을 통해 예술로 향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예술로 가는 길>, 서로 맞지 않은 열쇠를 지닌 <일곱개의 상자>, 화이트 큐브에서 미술가들이 행해 온 목록을 새긴 <24개의 도발> 등이 있다. 이러한 작업에서 작가는 끊임없는 질문을 던짐으로서 현재보다 한층 더 넓은 영역으로의 사고의 확장을 바란다.
"나는 주변의 사물과 텍스트를 가지고 사소하고 어이없는 농담을 하는 데 관심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몰두하는 중요한 일들에 무관심하거나 이러한 현실의 위중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거꾸로 우리의 삶을 그렇게 생존과 추락의 갈림길로 내모는 이 압도적 현실에 순순히 투항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심각한 미술에 반대하지 않고 감각적인 구경거리로서의 미술에 반대하지 않으나, 그것들이 과연 우리 삶의 다른 가능성들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고 있는지 의심한다. 나는 전형적이고 예측 가능한 반응과 해법에 안주하는 예술에 반대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제안하는 작품 속의 '의도된 실패들'을 통해 여러 갈래의 '지평선'을 마주하게게 만듬으로서 예술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해준다. '의도된 실패들'을 통해 맞이하는 수많은 질문들은 자신만의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지평선’을 찾아가는 여정으로서 생각된다. 안규철의 작품 속 담긴 서사적 내러티브는 시와 닮아있다. 그는 '가벼운 조각'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가 채택한 미술에서 언어는 우리에게 멀지 않은 사소하고 친숙한 방식으로서 우리가 일상 속 미쳐보지 못한 삶의 이면을 드러낸다. 안규철 작가는 끊임없이 쓰고 그리며 자신의 조형언어로 예술이 세상 속에 가질 수 있는 힘에 대해 모색하고 있다.
시를 짓는 마음으로, 안규철의 언어 < 리뷰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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