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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취정의 올 댓 민화 ⑤] 을사년 벽두에 보는 뱀

by 데일리아트

뱀 : 불사(不死)와 재생(再生)의 상징


2025년은 을사년이다. 을사년은 육십간지의 42번째로 청색의 '을(乙)’과 뱀을 의미하는 ‘사(巳)’로 ‘청사(靑蛇)의 해', 즉 '푸른 뱀의 해’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민화에 등장하는 뱀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화, 전설, 민담에는 유난히 뱀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뱀은 성장할 때 허물을 벗는다. 그래서 뱀은 재생이나 영원불멸의 존재로 여겨졌다.


그때 마침 담 구멍에 있던 뱀이 저승차사인 까마귀의 적패지를 받아 꿀꺽 삼키고 들어가버렸다. 그래서 뱀은 죽는 법이 없어 아홉 번 죽었다가도 열 번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 제주도 차사본풀이 중에서


불사의 상징이기도 한 뱀은 독이 있다. 2,700종의 뱀 가운데 4분의 1은 독이 있어 뱀에게 물린 사람은 치명적이다. 그러나 뱀의 독은 약이 되기도 한다.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는 뱀은 그래서 신비롭다. 그리스의 의신 아스클레피오스를 상징하는 지팡이에 뱀이 감겨 있다. 서양에서는 일찍이 뱀의 독이 약이 되는 신비한 효능에 주목한 것이다.

2227_5586_416.jpg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한 마리의 뱀이 감고 있는 지팡이를 짚고 있다. /출처 : 의협신문


2227_5588_426.jpg 1996년 제정돼 현재 사용중인 네 번째 휘장 /출처 : 의협신문


대한의사협회도 이 지팡이를 휘장의 문양으로 사용하고있다. 뱀의 독은 이제 우리나라의 의사협회에서도 사용하는 만큼 그 효능에 대해서 주목하는것은 아닐지….


다산의 상징, 뱀


뱀은 한꺼번에 백 마리 이상을 부화시킨다. 이러한 뱀의 생태적 특징 때문에 뱀은 다산의 상징이 되었다.


"붉은 새가 글을 물어 침실의 지겟문에 앉으니, 이것은 그 성자(聖子)가 혁명을 일으키려 하매, 하늘이 내리신 복을 보일 것이니. 뱀이 까치를 물어 나뭇가지에 얹으니, 이것은 성손(聖孫, 태조)이 장차 일어나려 하매 그 아름다운 징조가 먼저 나타난 것이니." 『용비어천가』 7장에 나오는 말이다. 도조(度祖)로 추존된 이성계의 조부 이춘(李椿)이 군영에 있을 때 두 마리의 까치가 군영 안의 큰 나무에 앉았는데, 멀리서 활을 쏘아 한 살로 두 마리를 모두 떨어뜨렸다. 이때 큰 뱀이 나타나 까치를 물고 다른 나무에 얹어놓고 먹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성손은 이춘의 손자, 곧 태조 이성계를 말한다. 따라서 이 일화는 이성계가 나라를 세울 것이며 그 징조가 미리 나타났음을 말하는 부분이다.


우리의 옛 고분벽화에도 뱀이 출현한다. 수호신으로 뱀이 표현된 예이다. 사신도에 등장하는 '현무'가 그것이다. 남방의 수호신이 '주작'이라면 '현무'는 북방의 수호신이다. 주작은 뱀의 형태를 지닌 상징적인 동물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일원의 종교적 관념에 따르면 북방에 생명의 시원이 있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허물을 벗어 새롭게 태어나고 겨울잠을 자기 위해 일정 기간 종적을 감추는 뱀을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 재생, 영생의 상징으로 보았다. 이런 이유로 뱀을 무덤의 수호신, 지신, 죽은 이의 재생과 영생을 돕는 존재로 생각했다.

2227_5589_4256.jpg 강서대묘 현실(玄室) 북벽의 의 '현무도', 고구려 6세기 후반~7세기, 철선묘 기법, 석벽에 채색.


거북이나 뱀의 세부 표현은 유연한 듯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으로 고구려인의 힘이 느껴지는 걸작이다. 뱀의 유려한 몸과 율동을 그리는 몸짓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 민족의 미의식은 이렇게 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민화에서 그려지는 그림 소재들을 보면, 그 뜻도 좋고 모습도 장식적이거나 어여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뱀에게 좋은 미사와 의미를 추가하더라도 생김새가 곱지는 않은 것이 동서양 사람들의 공통되는 의식이다. 그래서인지 민화에서 뱀이 그려진 예는 십이지신을 묘사한 그림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뱀이 그려진 그림으로 <하락도12폭병풍(河洛圖十二福房機)>을 들 수 있다.

2227_5592_458.jpg ‘하락도12폭병풍(河洛圖十二福房機)’, 20세기초, 종이에 채색, 전체 1584x520cm, 각 150.5×37.6cm. /출처: 조선 병풍의 나라 2, 20쪽.


'하락'이란 고대 중국의 전설 하도 낙서(書)를 합쳐 일컫는 말이다. 하도는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등에 지고 나온 그림이며, 낙서는 낙수(홍가)에 나타난 신령한 거북의 등에 쓰여 있었던 글을 뜻한다. 3~4폭에는 십이지도상이 그려졌는데, 열두 동물이 원을 중심으로 둘러 있는 형세이다.

2227_5593_4610.jpg ‘하락도12폭병풍(河洛圖十二福房機)’ 부분


2227_5594_4634.jpg ‘하락도12폭병풍(河洛圖十二福房機)’ 부분


이 글에서는 주로 뱀의 상징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푸른 뱀은 지혜와 변화의 상징으로, 새로운 시작과 기회의 해이다. 원칙을 세우고 지켜나가겠다는 김구의 의지가 담긴 그의 휘호,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이 떠오른다.

2227_5595_4719.jpg 김구.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출처: 『태극사상연구소(hansasang.org)』.


'불변응만변'은 김구 선생이 1945년 해방을 맞아 귀국하기 전날 저녁 에 쓴 글이다. 독립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한 시점에 원칙을 세우고 지켜나가겠다는 김구의 의지가 담겨있다. 2025년 을사년을 맞이하며,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을사늑약을 불법적으로 강제로 체결했던 을사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을사년, 즉 법과 원칙이 통하는 을사년이 되기를 바란다.


다음 6회에서는 민화 속에 핀 연꽃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227_5596_4817.jpg 부분, 20세기, 지본채색, 84×32cm. /출처: 『민화본색 1』169쪽.


김취정 민화학회 이사 chwi21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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