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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예술 ⑮] 예술가 '아이웨이웨이'

by 데일리아트

아이웨이웨이(Ai Weiwei)
“예술가가 사회적 양심을 저버리고 인간의 기본 원칙을 저버린다면, 예술이 설 자리가 어디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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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웨이웨이(b.1957~)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동시대 작가이다. 사회운동가로 칭해질 만큼 작품과 자신의 블로그, 트위터 등을 통해 중국 정부와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문제에 뛰어든다. 사천성 대지진이 일어났던 2008년 수 만명의 생명들이 세상을 떠나갔을 때, 당시 건물의 부실공사로 인해 많은 피해자가 생겼음에도 이를 은폐하고자 했던 중국 정부와 학교에 대해 사회적 책임과 사건의 투명성을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사건의 진실을 찾고자 했다. 이로 인해 작가의 블로그는 폐쇄되고 81일 동안 감옥에 구금되었으며 중국 정부의 계속되는 엄격한 규제와 탄압을 받아야 했다. 미술계와 인권 협회에서는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과 함께 예술의 자유에 대해 많은 미술관과 미술인들이 중국 정부에 항의했다. 아이웨이웨이라는 사람에게 있어 정치는 문화대혁명을 겪은 세대로서 삶에서 떼놓을 수 없는 필수불가별한 존재로 작용했고 그의 삶은 예술과 정치로 맞닿아있다. 그는 사천성 대지진 사건으로 인해 블로그가 폐쇄되기 전까지 꾸준히 자신이 진행하는 작업들을 날마다 백여장 올리며 하루 10만명의 방문자가 입장하는 대형 블로그를 꾸렸다.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 리스트는 그의 블로그를 두고 “우리 시대 최고의 사회적 조각”이라 이야기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아가는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아이웨이웨이는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2290_5874_166.jpg "원근법 연구" 시리즈 중 한 작품으로 자금성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고 찍은 사진


아이웨이웨이는 “반체제 예술가”라 언론에서 소개되어지기도 하는데, 작가는 이러한 표현에 대하여 “자신이 행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은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현 시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 말했다. 1957년생인 그는 어린 시절 문화대혁명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겪은 세대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중국 문학의 유명 시인인 아이칭으로 작가가 유년시절부터 겪어야했을 고초는 청년을 지나 현재 예술가 아이웨이웨이라는 사람이 형성되기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반공주의자로 고발당한 아버지에 의해 어린 작가와 가족들은 신장으로 추방당했다. 흙을 퍼먹을 정도로 힘든 시절이었다고 회고했으며 16년의 신장 생활 끝에 1976년 문화 대혁명이 끝난 후에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2290_5867_4929.jpg "원근법 연구", 1995‒2011


2290_5856_3829.jpg 2023년 4월 4일 영국 런던 디자인 박물관 전시 관경


<원근법 연구>는 중국 천안문, 미국 백악관, 프랑스 파리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등 전 세계 여러 도시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려 사진을 찍은 작품이다. 퍼포먼스의 시작은 1995년에 6·4 항쟁이 벌어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천안문을 향해 가운뎃손가락 날리는 사진을 시작으로 이어졌다. 권위의식, 위계, 권력, 주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을 표출한다.

2290_5873_1427.jpg "한나라 도자기를 깨트리다", 1995


2290_5875_1941.jpg "코카콜라 항아리", 2015


한나라 시대의 도자기를 깨는 일련의 사진 작품은 작가가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중국을 상징하는 도자기를 깨트리고, 색을 칠하며 코카콜라 로고을 역사적인 도자기에 쓰는 것이 그의 예술이었다.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전통의 파괴와 함께 의미화한 것이다. 이러한 오브제를 이용한 작업은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불러일으키는 상징적인 요소이다. 그가 문화대혁명을 겪은 세대로서 공동의 집단 기억을 통해 사회, 역사 속에 공유된 개인의 성찰을 녹여냈다.

2290_5864_4541.jpg "조명",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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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0_5866_4839.jpg "곧바로", 2009


아이웨이웨이는 2008년 8월 사천성 대지진 당시 사상자의 정보를 은폐하려는 중국 정부에 맞서 '시민조사단'과 함께 서명운동을 벌이다가 중국 공안원에게 의해 구타당한다. 2011년 9월에는 북경 공항에서 납치되어 80일 동안 감금된다. 사천성 대지진은 약 7만 여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학교 건물이 무너져 많은 어린 아이들이 죽었는데, 이는 질 낮은 콘크리트 사용한 것이 재난의 원인이었다. <조명>은 2009년 8월 12일 관련한 활동을 함께 했던 사람 탄줘린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사천성 청두에 갔을 때에 경찰에게 둘러쌓인 자신의 모습을 찍어 제작한 것이다. <곧바로> 는 지진으로 폐허가 된 지역의 철근들을 모아 망치질로 곧게 펴서 모은 것이다. 추모적인 작업으로 고통과 상처에 대해 기록, 잊고 싶은 트라우마를 오브제를 통해 구체화 시켜 새롭게 기억하도록 한다. 작가는 블로그에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생명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책임을 지기 위해서, 그리고 생존자들의 잠재적인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시민조사를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는 죽은 어린이들 한명 한명의 이름을 찾아낼 것이며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라고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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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0_5872_5540.jpg "기억하기", 뮌헨 주립 현대미술관 하우스 데어 쿤스트 설치 작업, 2009


작가는 당시 자신의 블로그에 이메일과 연락처를 남기도록해서 참가를 모집했고 '시민 조사단'을 통해 총 사상자 수와 희생자 이름을 기록했다. 일반 대중들을 참여시켜 은폐하려한 학교와 정부에 대응했다. 실제로 2009년3월 20일 그의 블로그에 올라온 사천성 원촨의 어느 어머니가 보낸 ‘그녀는 이 세상에서 7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她在这个世界上开心的生活过七年)’라는 편지 내용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2009년 독일 뮌헨에서 9,000개의 원색 배낭들을 이용해 만든<기억하기(Remembering)〉는 사천성 대지진을 추모하며 잊혀지지 않도록 사건을 되새기게 했다. 아이웨이웨이는 자신의 예술을 통해 사회에 목소리를 내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실천적인 방안을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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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0_5877_237.jpg "코로네이션", 2020년 8월 20일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링크: https://youtu.be/uL4X26wEDQw


그는 코로나로 인하여 전세계가 혼란에 빠졌을 당시 중국의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코로네이션(Coronation)>을 제작했다. 영화의 제목은 코로나의 나라라는 뜻이며 2020년 우한 도시 전체가 봉쇄된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를 담았다. 코로나19 환자 발생 초기 중국 정부의 은폐, 준비되지 않은 의료시스템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에 대해 비판하며 3개월간 지속된 도시 봉쇄와 단절, 그로 인해 버려지고 잊힌 사람들을 조명했다.


가장 중국적이면서도 중국에 반(反) 하는 작가인 아이웨이웨이는 중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하는 작가이다. 도자기, 해바라기씨, 골동 의자 등 중국적인 색채를 지닌 기성품을 통해 사회의 억압과 권위의식을 깨트린다. 문화대혁명과 베이징의 봄, 중국의 문화사의 변동기 속에서 중국의 민주적 자유를 갈망해왔다. 현재에도 미디어나 대중문화에 있어 엄격한 통제를 가하는 중국 정부는 예술 작품에도 감시와 검열을 통해 통제한다. 지금에야 작가는 높은 명성과 함께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을 오가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예술 활동을 해 나아가지만, 많은 중국의 예술가들은 계속해서 공산당의 통제 속에서 활동을 이뤄가고 있다. 아이웨이웨이는 “예술가가 사회적 양심을 저버리고 인간의 기본 원칙을 저버린다면, 예술이 설 자리가 어디있을까?”라고 반문한다. 예술가의 혁신적인 발상에서 출발한 예술을 통한 소통은 어떤 소통의 창구보다 커다란 영향력이 있다. 아이웨이웨이가 보여주는 '행동하는 예술가'로서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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