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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작가 ②] 거꾸로 사는 돌- 이끼바위쿠르르

by 데일리아트

첫 국내 개인전 "거꾸로사는 돌" 1월 26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이끼바위쿠르르」에 대해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무슨 뜻이며 무슨 말인지도 감이 안 올 수 있다. 심지어 이끼바위쿠르르의 전시라고 하면 외국작가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고결, 김중원, 조지은으로 구성된 시각연구 밴드이다. 아티스트 콜렉티브 믹스라이스(Mixrice)의 멤버로 잘 알려진 조지은을 추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지은은 제주에서 나고 자라 튜터링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고결, 그리고 2014년부터 몇 번의 협업을 거쳐온 김중원과 함께 2021년에 이 그룹을 결성했다. 특히 미술계에서 통용되는 조합 '아트 컬렉티브'가 아닌 '시각연구 밴드'로 스스로 정체성을 정했다. 즉 연구와 조사를 통해 시각적인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조직임을 좀 더 직관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2306_5914_5856.png 이끼바위쿠르르, "열대이야기" 일부


그룹의 이름은 이끼가 덮인 바위를 뜻하는 “이끼바위’와 의성어 ‘쿠르르’를 의미한다. 조지은에 따르면 땅과 공기 사이 좁은 경계에 살며 환경에 적응하는 이끼를 좋아해서 이끼가 낀 바위로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식물과 달리 높이 자랄 수는 없지만, 습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서식하는 이끼. 우주공간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이끼의 생태적 특징은 작가의 작업 태도와도 밀접하다. 시각연구 밴드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다양한 분야를 교차할 수 있는 학제적인 시각 작업을 마치 밴드와 같이 자유로운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농부, 해녀, 학자 등 여러 사람들과 만나 그들 삶의 방식을 통해 식물, 자연현상, 인류, 생태학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한다. 이것을 유기적으로 조합하여 문화적 혹은 회화적 측면을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통합시킨다.

2306_5915_011.png 이끼바위쿠르르, "해초이야기" 일부


2306_5916_114.png 이끼바위쿠르르, "해초이야기" 일부


이끼바위쿠르르는 결성 1년만인 2022년에 해외에서 주목받았다.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치러지는 현대미술제인 ‘도큐멘타’에서 이름을 알렸다. 2022년의 '도큐멘타 15'에서 유일한 한국팀이 이끼바위쿠르르였다. 이들은 비디오 내러티브 작품과 일부 설치 작품들을 결합한 <열대이야기>와 <해초이야기>를 출품하여 태평양전쟁과 식민주의의 잔재를 탐구했다. <열대이야기>는 전쟁에 의해 파괴되거나 전쟁의 요충지로 건설된 장소들을 다룬다. 이 장소들은 전쟁이후 다시금 자연으로 뒤덮인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에 의해 파괴된 자연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시 공간을 잠식하는 순환현상을 이미지화 하고 있다. <해초이야기>는 <열대이야기>에서 드러난 전쟁을 겪은 섬들과 상처와 그들의 역사를 위로하는 노래로 제작되어 제주도 ‘하도’ 마을의 해녀들과 그들의 노래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2306_5913_5728.png 전시 포스터


이끼바위쿠르르의 첫 개인전 <거꾸로 사는 돌>이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이들의 작업은 채집을 하러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모습, 작업에 담을 장소를 탐사하고 조사를 하며 직접 발로 뛰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공개하는 작품은 ‘미륵’에 에 집중하고 있다. 전시의 제목 <거꾸로 사는 돌>은 2채널의 비디오로 약 1년 동안 전국 60여 곳을 다니며 미륵을 카메라에 담아낸 작업이다.

2306_5918_550.jpeg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 2024, 2채널 비디오, 4K, 사운드, 10분 50초 / 사진: 원정민


미륵은 미래를 상징하는 부처이다. 미래에 출현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이 반영된 미륵신앙은 현실에 지친 민중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 까닭에 미륵석상은 오래전부터 마을 곳곳에 퍼져 인간의 삶 속에 깊이 자리 잡는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 버려지고 방치된 미륵과 주변의 횡량한 풍경은 오히려 오랜 과거를 품은채 존재하고 있었다. 버려진 미륵의 시점에서 바라본 쓰레기장, 공장, 논과 밭 등의 풍경들을 원경으로 포착하여 장면을 산수화처럼 표현했다. 미륵을 둘러싼 현시대의 산수화는 우리가 익히 아는 전통적인 산수화의 아름다운 자연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의 오랜 예술적 지향점인 환경과 생태에 대한 고민을 확인할 수 있다.

2306_5921_747.jpeg 이끼바위쿠르르, "부처님 하이파이브", 2024, 시멘트, 철, 38×19×70cm / 사진: 원정민


2306_5920_716.jpeg 이끼바위쿠르르, "더듬기", 2024, 한지에 숯, 15점, 420×140cm, 390×95cm,390×95cm, 210×140cm, 195×95cm, 145×175cm / 사진:


전시장 입구에 있는 <부처님 하이파이브>는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위로한다는 의미의 수인(手印)을 연상하게 하는 두툼한 손바닥 구조물이다. 손이 잘린 미륵의 잃어버린 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손뼉을 마주 부딪쳐 상대방과 서로 공유된 감정을 나누는 하이파이브처럼, 부처의 손을 눈으로 마주하며 전시실로 진입한다. 미륵불 위에 한지를 덧대고 숲으로 더듬어 문지른 드로잉인 <더듬기>는 미륵을 훑고 어루만진 결과이다. 석상의 재료인 화강암과 요철로 인해 도드라지게 표현한 손의 주름과 귓바퀴의 모양, 의상의 굴곡, 온화한 표정은 미륵상을 촉각적으로 보이게 한다. 미륵의 촉각적 표현으로 인해 관람객은 종교적 존재와의 접촉을 상상하며 버려진 미륵과의 새로운 교감을 한다.


이밖에도 동양화 산수 개념에 주목하여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괴상하게 생긴 돌들을 만들어낸 풍경인 <우리들의 산>, 폐허 속 춤을 추는 쓰레기들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 <쓰레기와 춤을> 까지 이끼바위쿠르르의 최신 작업들을 1월 26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방치되고 버려진 존재들로부터 생태적 풍경과의 연결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수준은 미술에 대해 관심은 상당하나 아직 현대미술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아직도 대중은 함축하고 은유하는 미술에 어려움과 벽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환경과 생태를 순수하면서도 매력적으로 해석하는 이끼바위쿠르르의 작업들을 접한다면, 현대미술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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