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처럼 사소한 것들>, 차를 마시다, 생각을 하다.
작년(2024년) 새해 벽두, 찬 바람이 몸 속을 파고들 때 나는 이 소설을 만났다. 아직도 작품을 읽었던 순간이 생생하다. 미술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를 기다리며 썰렁한 미술학원 복도에서 얼굴은 상기되고 가슴이 한껏 부풀어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렸다. 생소한 작가였지만 소설을 읽고 나서는 바로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의 팬이 되었고 작년에 읽은 문학 작품 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으로 이 소설을 꼽는다.
소설은 2021년에 출간되었고 그 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소설은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나는 문학작품을 읽을 때 인물, 스토리, 스타일도 살펴보지만 인물들이 먹는 음식, 차, 커피 이런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본다. 특히 개인적으로 차에 대해서 취미를 가지게 되면서부터는 차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무슨 차를 마시는지, 왜 마시는지, 어떻게 마시는지 추측을 해보는 재미를 가지게 되었고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으면서는 아일랜드의 차 문화가 엿보였고 또한 차를 통해 주인공 펄롱의 마음을 더 헤아려볼 수 있어서 이 소설이 더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소설을 주목해 보자.
가끔 펄롱은 이렇게 아일린 곁에 누워 이런 작은 일들을 생각했다. 어떤 때는, 종일 무거운 짐을 날랐거나 타이어가 펑크 나서 길에서 시간을 버렸거나 비를 만나 흠뻑 젖었거나 한 날에는,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한밤중에 깨어 아일린이 곁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걸 느끼며 누워 있다 보면 생각이 빙빙 맴돌며 마음을 어지럽혀 결국 아래층으로 내려가 주전자를 불에 올리고 차를 끓여야 했다. 펄롱은 찻잔을 손에 들고 창가에 서서 거리를 내려다보고 멀리 보이는 강을 바라보고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일을 구경했다.’ 21~22쪽
소설 속 초반에 펄롱은 한밤 중에 잠에서 깨어나 뒤척이다가 결국 몸을 일으켜 차를 끓인다.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인들보다 더 차를 마신다. 세계 1위 소비국인 터키인 다음으로 일인당 차소비량이 많은데 하루에 3~4잔이나 마신다. 그렇다면 거의 물처럼 마신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무래도 추운 날씨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차 회사들이 다양한 종류의 블렌딩차나 가향차를 만들어서 파는 것과는 달리 아일랜드의 차회사들은 그렇지않다. 그저 한 두가지를 만들어 슈퍼마켓에서 판매한다. 물처럼 일상에서 편리하게 소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펄롱은 아내와 딸 다섯을 두고 있는 가장이다. 넉넉하지도 궁핍하지도 않게 딱 그만큼의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고 살고 있다. 소설 속 시대와 공간 배경인 1985년의 아일랜드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라 주변을 둘러보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참 많았다. 펄롱도 운이 좋지 못하면 쉽게 그들처럼 될 것이라고 불안해한다. 밤중에 차를 마시면서도 이 혹독한 시기, 이웃과 뒤처지지 않고 납작 엎드려서 지내보겠다고 결심을 한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을 해내면서도 아무런 생각없이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에게 생각이란 것은 우리 가족의 안위만을 위하지 않고 다른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거였다. 빌 펄롱을 보면서 사상가 한나 아렌트가 얘기한 '생각없음'의 대명사로 독일의 학살 주범 '아이히만'이 떠올랐다. 빌 펄롱은 그와는 딱 반대되는 '생각있음'의 대명사인 것 같다.
그도 남들처럼 '계산'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는 어떤 차가 어울릴까? 그의 생각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차가 좋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빌 펄롱에게는 어떤 특정한 차가 좋다라기 보다는 누구랑 마시느냐가 중요하게 보인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네드를 찾아가는 그를 보았다. 자신의 마음 속 두려움을 잠재우고 확신을 줄 사람인 네드랑 함께 마시는 차가 빌 펄롱에게는 가장 좋은 차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일랜드에는 Lyons와 Barry’s Tea가 가정에서 즐겨 마시는 브랜드인데 아마도 빌 펄롱도 네드도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마셨을 것 같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도 만들어졌는데 혹시 영화 속에서 어떤 브랜드를 마시는지, 티백을 몇 분 정도 담글지 궁금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쁜 홍차잔이 아니라 보통의 머그컵에 마실 거라는 것이었다. 그는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머그컵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아일랜드인들은 일상에서 차를 물처럼 마시기 때문에 머그컵을 주로 사용한다는 생각을 가져온 것이다.
소설에서도 그랬지만 영화에서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누구와 마시느냐가 차를 마실 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차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마시고 먹는 식음료는 다 그렇지 않을까 싶다. 수녀원장이 대접하는 차에서는 어떤 음미도 대화도 불편하다. 풀세트의 찾주전자, 찻잔, 차접시는 나이 든 수녀가 들기에는 무거울 뿐이고 관계에 더 긴장감만 돌게 할 뿐이다.
아일랜드는 차와 술의 인심이 후하다고 한다. 차가 서로 사귀고 돌보는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잔에 값비싸고 귀한 홍차를 대접받더라도 돈과 권력으로 나를 구속하고 억압하는 자의 차는 떫고 쓰기만 할 것이다. 사랑과 존중과 환대로 나를 맞이해주는 자라면 머그컵일지라도 값싸고 흔한 차일지라도 향긋하고 달 것이다. 지금 당신은 누구와 차를 마시고 싶은가?
[이은영의 작품 속 차 이야기 ①]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펄롱이 마신 차?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