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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에게 들려주는 서울이야기 ⑥]청계천

by 데일리아트

도심 속 시민들의 휴식처 – 청계천(a resting Place for Citizens in the City Center – Cheonggyecheon River)

2283_5817_4430.jpg 청계천에서 두 손자와 함께


오늘은 청계천이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놀라고 즐거워하는 장소가 어디일까? 여행객들에게 조사를 하면 1위로 꼽히는 곳이 경복궁이요, 두번째가 명동이다. 경복궁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나라와 동양의 정체성이 가장 드러나는 곳이고, 명동은 도심에서 쇼핑하기가 제일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계천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제일로 꼽지 않았을까?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하천을 외국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가고싶은 서울의 여행지로 경복궁과 명동보다는 못하지만 청계천이 자주 거론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손자들을 데리고 청계천으로 향했다. 청계천은 서울의 가장 중심부에 있어서 어디에서 가더라도 제일 쉽게 근접 가능한 여행지이다.


청계천에 이르니 손자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아, 물고기다!”


작은 천에 불과한 청계천에서 사는 물고기가 손자들에게는 무척 신기한 모양이다. 이곳에서 물고기가 산지는 얼마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와 그 이전부터 내사산에서 발원한 물길이 이곳으로 모여들었지만 근대로 내려오면서 청계천은 참 많은 변화를 겪은 곳이다. 나는 손자들과 함께 청계 광장에서 청계천 3가까지 도심을 가로지르는 물길을 따라 걸으며 청계천의 내력과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들의 관심은 할아버지의 말보다는 맑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과 냇가에 박혀있는 징검다리에 정신을 빼앗겼다. 이곳에 물고기가 언제부터 살았을까? 사실 복개되었다가 2005년에 복구된 청계천은 참 더러운 하천이었다.


종로와 중구의 경계를 흐르는 길이 10.84Km의 청계천은 서울 분지 내의 모든 물이 모이는 곳이다. 이곳에 모인물은 동쪽으로 흐르며, 왕십리 밖 살곶이 다리 근처에서 중랑천과 합쳐지면서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합류한다.

2283_5819_4525.jpg 광통교


자연적으로 조성된 하천인 건천(乾川 : 마른 내)이어서 평상시에는 도성 내에서 나온 더러운 물들이 모두 고여 흘러 매우 불결했다. 상수도가 아니라 하수도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물난리를 겪었다. 이에 태종(재위 1400~1418년) 때에 처음으로 치수 사업을 시작하고, 영조(재위 1724~1776년) 때에는 하천을 준설하고 석축을 설치하면서 유로를 변경하는 등 본격적인 개천 사업을 시행하여 물의 흐름을 직선화시켰다. 영조는 청계천 준설공사를 성공리에 마쳐서 기념하는 그림이 남아있다.

2283_5903_4827.jpg 수문상친림관역도 부산시립박물관 소장


(1760년 3월 10일 영조가 오간수문에 나가 숙원사업이던 청계천 준설작업을 하고 인부들을 격려 했다)

나는 손자에게 청계천 바닥에 쌓인 오물을 처리하기 위한 준설작업에 몇 사람이나 투입된것 같냐고 물어보았다. 형주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한 오백명정도가 일하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나는 정확하게 몇 명인지는 잘 모르지만 기록에 의하면 아마도 20만명은 되었을 거라고 말해주자 손자는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림속에서 사용한 도구는 삽이 고작이고 더러 하천에서 나오는 오물을 나르는 소가 있을 뿐이다. 지금이야 포크레인등의 중장비로 파고 오물을 트럭에 실어나르면 수월하겠지만 조선시대에는 모든 것을 사람의 노동력에 의지해야 했다.


이렇게 영조에 의해서 청계천이 정비되고 청계천에는 송기교(松杞橋), 모전교(毛廛橋), 광통교(廣通橋), 장통교(長通橋), 수표교(水標橋), 하랑교(河浪橋), 효경교(孝經橋), 마전교(馬廛橋), 오간수교(五間水橋), 영도교(永渡橋) 등 10여 개의 다리가 만들어졌다. 다리는 단순히 물을 건너는 역할만이 아니라 약속과 모임의 장소이자 쉬어가는 쉼터이다. 정월초하루에는 광통교에서 다리 밟기와 같은 민속행사가 벌어졌다. '다리'를 부지런히 건너야 내 몸의 '다리'가 튼튼해 진다는 어쩌면 아재개그와 같은 믿음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의 유대관계는 얼마나 끈끈해졌겠는가. 이렇게 청계천은 조선 시대부터 한양 도성의 중심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가 어우러진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2283_5820_4610.jpg 나의 그림


2283_5821_4623.jpg 손자의 그림


복개되기전 도로의 아래에는 악취가 심한 물이 흘렀다.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복개 공사는 1962년에 동대문 오간수문까지 완료되었고 1976년 청계고가가 생기면서 복개가 완료되었다. 서울시장으로 재임한 이명박은2005년에 들어와서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복원 정비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현재의 청계천은 종로구 서린동 동아일보사 앞 청계 광장에서 시작된다. 청계 광장의 상징물은 거대한 다슬기 모양의 조형물인 스프링(Sping)으로,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인 클래스 올덴버그와 코셰 반 브루겐 부부의 공동 작품이다. 이 작품이 놓이고 작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를 않았다. 청계천의 역사성에 비하면 너무 생뚱 맞다는 논란이었다.

2283_5822_4644.jpg 복개하기 전의 청계천 모습


도로로 쓰였던 청계천 물길이 복원을 통해 도로를 걷어내자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말로만 듣던 청계천이 실제로 물이 흐르던 하천이었던 것이다. 그 뒤부터 청계천은 시민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데이트 명소는 물론, 역사교육장, 중년들이 걸으며 신심을 단련하는 곳이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흐르는 물은 사대문에서 발원한 물이 모여 만든 하천이 아니다. 지하수와 한강 하수를 전기 펌프를 이용하여 끌어와서 인공적인 방식으로 흐르게 한다. 현재 청계천의 하수는 평균 수심 40cm로 항상 깨끗한 수질을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있어, 각종 물고기들이 살고 백로와 왜가리 등 새들도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다. 청계천 물길 양옆에 조성한 산책길은 주변 직장인을 비롯한 서울 시민의 휴식과 힐링의 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물길을 따라 조선 시대 문화와 유적, 근현대 역사가 곳곳에 어우러져 있는 청계천은 이제 서울 시민이 사랑하는 서울 도심 속의 걷기 좋은 명소가 된 것이다.


서울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4번 출구나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로 나와 청계 광장 쪽으로 오면 청계천 산책로가 시작된다. 복원된 청계천 길은 5.84km이기 때문에 산책로 중간에 나 있는 30여 개의 진입로를 통해 접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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