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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4. 2024

시연 참관기[방송작가 이경화]

길위의 미술관(나혜석 편)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가슴 울렁거리게 하는 시연
최은규 해설사가 시연 참여자들에게 나혜석의 삶과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길 위의 미술관..’ 참 운치있는 기획이었다.


거기에다 나혜석이라니...! 참으로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초대가 아니던가.


모든 스케줄을 뒤로 접고 초대의 날을 기다렸다.


정동길 시청 광화문을 따라 걸으며 그녀 나혜석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 떠올려졌다. 계속 또 알고 싶은 여성, 나혜석. 참 묘한 인연도 있구나 싶다.


방송원고를 쓰는 직업으로 살다보니 머리가 단순하게 아플 때가 많다. 원고 마감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날이 종종 생긴다. 이런 때는 다음날 해가 뜨지 않기를 바라는, 죽고 싶을 만큼의 두통이 스멀스멀 시작 돼서 아주 괴롭다. 20여 년 전쯤인가 나혜석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녀의 삶을 어떻든 결론 내야 일이 끝나는데 그것이 내심 이레 저레 마땅치 않아 골치 아팠다. 더 좋은 찾지 못한 자료가 어디 있을 것이라는 희망고문만 해 대다 결국 알려진 자료만의 익숙한 결과물로 일을 마무리 해야 했고, 두통은 쉽게 가라않지 않아서 내내 무거웠던 기억이다.


이번 나혜석의 기획에 함께 하면서 그때의 부족했던 기억을 호출해 내고 잘 다듬어 ‘재저장’ 할 수 있어 좋았다.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길 위의 미술관에 초대를 해주신 명지대 미술사학도이신 최봉금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초여름 한낮의 꿈처럼 엊그제의 일정들이 벌써 아름다운 그림으로 내 기억 곳곳에 자리잡아버렸다. 좋은 시간들이었다. 나이 60줄이 되도록 구부리고 앉아 하는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어쩌다 직업 아닌 일로 나돌아 다닐 일이 생기면 하루가 선물처럼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림만 생각하고 보내는 하루라니! 게다가 나혜석. 세상에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나들이인가. 30분 일찍 출발장소인 정동교회에 도착해서 나혜석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교회 안을 서성여도 보았다. 흠.. 기대되는 하루. 햇빛이 한여름처럼 따가워도, 평발이 아파도 다 괜찮다고 어깨까지 들썩이며 시작된 여정이었다.


실은 여고시절의 반 친구 5명이 다 미대를 갔고, 언니가 미대를 다니고 있던 터라 잘하면 나도 미술을 전공할 뻔 했다. 언니 화실에는 입시생이라도 되는양 자주 가서 그림 그리는 내 자리도 딱 정해져 있었다. 게다가 언니가 읽다 덮어둔 이중섭이란 화가를 알게 되면서 조숙하게도 멋있다고 몰래 연모하기도 했으니 그림만 잘 그렸으면 나는 미대생이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림 그리는 데는 별 소질이 없었다. 언니가 그랬다. 너는 안되겠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니 화가는 못되겠고, 그냥 그림 좋아하는 고급 독자가 되는 거야. ‘고급 독자’. 고급?이라는 말이 마음에 확 들어왔다. 화가는 될 수 없으니 그림과 화가를 고급지게 좋아하는 독자가 되라는 말인가 보다. 언니의 위로의 말에 내심 한껏 기뻤다. 그림 좋아하는 태를 맘껏 낼 수 있는 게 고급 독자라고 스스로 정했고, 바로 그림 그리기를 접었다. 내 집처럼 드나들던 화실 가는 발길도 끊었다. 그 후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그림에 대한 선망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시인, 소설가보다도 화가라고 하면 한번 더 쳐다보고 관심있게 대한다. 고급 독자란 이런 건가?


<데일리아트>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한다. 세계가 다 어수선해서 이제 웬 만큼의 큰 기사에도 놀랍지 않고 덤덤한 게 일상인데 왜 데일리아트의 창간과 ‘길 위의 미술관’ 같은 기사는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것일까. 더 자극적인 볼거리, 들을 것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하물며 내가 쓸 원고까지 대신 해줄 기계도 나온 마당에. 기계는 어디까지 인간을 대신해 줄 수 있다는 것일까. ‘길 위의 미술관’ 첫 주자로 나혜석을 기획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초여름 도심 나들이에 여심을 자극하기에 그만이었다. 나혜석의 스토리텔링을 내 지인의 사연인 듯 또는 긴장감 있게 전달해준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미술사학도이신 최은규 선생님의 도슨트는 정말 최고였다. 마이크 없는 진정성 있는 전달력에 깊이 빠져들 정도였다. 나도 여건이 된다면 함께 섞여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해보고 싶다. 한번도 보지 못한 나혜석의 그림 몇 점도 자료나마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번의 짧은 여정은 새삼 서울 도심에 남아있는 근대화의 흔적들이 더 이상 훼손되지 말고 보존되야 하고 그에 최선을 다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문화재가 시대에 맞게 탈바꿈 되어야 한다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후대에게 말하고 싶은 많은 것을 문화재가 대신해 줄 수 있지 않은가. 이유야 어떻든 시대의 흔적을 지우는 것에는 인색함이 맞다. 끝.


-방송작가 이경화


방송작가 이경화는 KBS 다큐멘터리 작가이다. 최근 작품으로는 세계서점기행 <장동건의 백투더북스>를 기획하였고, 휴즈턴 국제영화제 백곰상,방송콘텐츠대상 등을 수상한 명망있는 작가이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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