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쉽게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분해되는데 최소 50년이 걸린다. 플라스틱의 분해 과정만 보더라도 개개인과 전체 인류가 지구 생태계에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서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흔적이 남지 않은 곳은 없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는 2004년12월 말 올해의 신년사에서 "우리는 실시간으로 기후 붕괴를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이 파멸로 가는 길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국가들은 2005년에 배출량을 극적으로 줄이고 재생 가능한 미래로의 전환을 지원함으로써 세계를 더 안전한 길로 인도해야한다." 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류 생존의 문제에 대해 예술계에도 꾸준한 논의가 있었다. ‘생태미술’, ‘환경미술’, ‘인류세미술’ 등으로 일컬어지는 생태계에 성찰을 요구하는 작업들이다. 아트선재센터는 지난달에 《언두 플래닛》,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을 열어 동시대 미술가 17명/팀의 작업들을 선보였다. 아트선재미술관은 과거 «서울 웨더 스테이션»(2022)을 열기도 했고 2012년부터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를 통해 DMZ 미술에 대해서도 연구해 왔다. 환경을 예술과 접목한 프로젝트를 꾸준히 개최한 미술관이다.
《언두 플래닛》은 기후변화와 생태계의 문제를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고찰하는 전시이다. ‘언두(Undo)’는 ‘원상태로 하다’로 정의되지만 ‘열다’, ‘풀다’의 의미를 가진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하며 미술관은 “예술을 매개로 지구라는 행성의 기억과 앞으로 우리의 실천으로 미래의 공동체가 기억하게 될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새롭게 도래할 생태계의 가능성에 대해 상상해본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환경문제 따른 실천적 과제에 대해 주목하여 전시를 꾸렸다. 프로젝트는 2023년 강원도 철원에서 진행한 장소을 중심으로 한 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 양혜규, 댄 리, 타렉 아투이, 홍영인, 이끼바위쿠르르(조지은, 고결, 김중원)이 참가했다. 이들은 각각 서울대학교 기후연구실, 철원석담짚풀전수회, 철원 소재 어린이 합창단 ‘평화를 부르는 아이들’, DMZ두루미평화타운 그리고 양지리마을공동체와의 협업을 통해 리서치 및 워크숍을 진행했다.
전시는 각각 작가 별로 ‘커뮤니티’, ‘비인간’, ‘대지미술’ 이라는 테마로 나뉜다. 작가 5인/팀을 포함하여 총 17명/팀의 작가를 만나볼 수 있다.
(참여작가) “나나 엘빈 핸슨, 낸시 홀트, 댄 리, 데인 미첼, 로버트 스미스슨, 사이드 코어, 시마부쿠, 시몽 부드뱅, 실라스 이노우에, 얀 보, 양혜규, 이끼바위쿠르르, 임동식, 타렉 아투이, 팡록 술랍, 하셀 알 람키, 홍영인”
"언두플래닛" 전시관경 1층, 사진출처: 아트선재센터
나나 엘빈 핸슨, "그라운딩스", 2024, 오른편 비디오 작업
전시장 1층에 있는 나나 엘빈 핸슨의 <그라운딩스>(2024)는 새로운 원격 탐사 기술에 사용되는 규암위 채굴 과정을 보여준다. 자원 추출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함께 발생하는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질문을 제기한다. 자원 추출과 지역 생태계, 원주민 인구, 경제적 이익 등의 문제에 대한 시사이다.
"언두플래닛" 전시관경 1층, 사진출처: 아트선재센터
임동식, 1980-1990년 드로잉 및 사진 기록
임동식, "거북이와 함께한 풀밭 산책", 2021-2023
"야투자연미술집", 1980-1987
<고개 숙인 꽃에 대한 인사>(2005), <거북이와 함께한 풀밭 산책>(2021-2023)은 한국자연미술가협회인 ‘야투’에 주요 일원이었던 임동식의 작업이다. 야투는 1981년에 결성된 한국 생태미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그룹이다. 전시에서는 야투자연미술집(1980-1987), 임동식 작가가 벌였던 사진, 드로잉, 스케치 기록들을 선보인다.
"언두플래닛" 전시관경 2층, 사진출처: 아트선재센터
시마보쿠, "세우기", 2017, 사진 연작
전시장 2층에서는 시마보쿠의 사진 시리즈와 비디오 작업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시리즈 중에서 <세우기>(2017)는 일본에서 지진으로 피해 입은 도후쿠 지역을 다룬다. 해변의 나무들을 세우는 작업으로 그 지역과 주민들이 함께 하는 장소 특정적인 작품이다. <눈사람 신혼여행>(2023)은 일본에서 관광명소였던 장소가 문을 닫고 골격만 남은 침대에 두 눈사람이 누워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방문했을 당시 도슨트의 설명 따르면 난방이 되지 않는 호텔 방에서 약 2달간 녹지 않고 유지되었다고 한다.
양혜규, "황색춤", 2024, 비디오
"황색 춤" (2024) 작업에 등장하는 김범의 "노란비명 그리기"(2012) 장면
양혜규의 <황색 춤>(2024)은 꿀벌 ‘봉희'를 통해 진행하는 비디오 작업이다. 남북을 넘나들며 꿀을 모으는 벌 봉희가 황색 비를 내리게 했다는 이유로 체포된다. 생화학 물질인 황색 비는 소련과 미국 사이에 있었던 ‘황색비’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인간과 비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주변 환경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봉희는 실제 양혜규 작가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작품에서 개념미술가 김범의 <노란비명 그리기>(2012)가 등장해 유쾌함을 선사한다.
로버트 스미스슨, "나선형 방파제(필름)", 1970 / 낸시 홀트, "태양 터널 (필름)", 1978
'대지미술'의 대표적 작가인 로버트 스미스슨과 낸시 홀트의 영상 작업도 설치되었다. 대지미술은 미술관을 벗어나 자연 안에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미술의 장르이다. 스미스슨의 <나선형 방파제>(1970) 영화는 대지미술 작업 과정을 담았다.
이끼바위쿠르르 "랩소디"(2024) 그래피티 작품 3점
이끼바위쿠르르, "랩소디", 2024, 비디오
이끼바위쿠르르는 <랩소디>(2024)에서 DMZ 부근의 포탄소리, 금지된 공간, 식생물들을 풀피리 소리와 함께 보여준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아트 콜렉티브 팀으로 시각연구밴드로 자신을 소개한다. 이들은 식물, 자연현상, 인류, 생태학과의 연계를 탐구한다. 전시장 3층에서는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에서는 버려진 돌과 버려진 풍경, 미륵보살상의 모습을 조망하는 작품을 선보여 소외되었던 기억을 상기시키는 작업이다.
《언두 플래닛》과 같이 기후위기, 생태계 문제들과 관련한 전시 기획들이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동시대 작가들의 '예술과 환경'을 접목시킨 작품들 그리고 전시 큐레이팅을 체험하면서 그들의 시선들을 마주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 한다. 또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실천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면 전시의 목적이 되는 것이라고 미술관에서는 밝혔다.
인간, 생태·환경과의 공존을 커뮤니티, 비인간, 대지미술로 풀어 낸다《언두 플래닛》 < 리뷰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