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고영애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60곳을 프레임에 담아 소개한다. 뉴욕현대미술관부터 게티센터, 바이에러미술관, 인젤홈브로이히미술관 등 현대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12개국 27개 도시에서 찾은 미술관들을 생생한 사진과 맛깔스런 건축 이야기로 안내한다.
두 개의 선으로 상징된 유대인박물관의 전경 (사진 고영애)
유대인박물관 건설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철저한 역사의식에서 출발되었다. 유대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유대인박물관에 이러한 역사의식을 담았고, 박물관 디자인에도 유대인의 흔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리베스킨트는 유대인의 흔적을 유대인 거주지에서 찾아, 거주지를 선으로 연결하여 표현하였다. 거주지에 살던 사람들은 과거에 베를린에 살며 핍박받았던 유명한 유대인 작가, 작곡가, 예술가, 과학자, 시인 등이다.
건축디자인에서의 날카로운 선들(Lines)은 유대인 다윗 왕을 상징하는 별의 이미지이며, 별이 움직이는 형태로 표현하였다. 유대인박물관의 두 개 건물은 두 개의 선을 상징한다. 한 선은 관계를 의미한다. 관계는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문화 교류로 로마시대부터 현대까지의 2000년 역사와 삶, 문화 예술을 보여주는 곳이다. 다른 한 선은 부재(不在)를 의미한다. 부재는 홀로코스트 타워의 텅 빈 공간을 상징하며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이와 같이 여러 의미를 담은 유대인박물관은 소장품보다 건축물로 더 유명하다.
입구에 그려진 유대인박물관의 지도 (사진 고영애)
박물관 출입구부터 모호하였다. 박물관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먼저 옛 박물관 건물로 들어가야만 했다. 지하에 있는 통로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도록 연결해두었기 때문이다. 리베스킨트는 일부러 출입구를 지하에 숨겼다고 하였다. 이는 두 개의 건물로 대변되는 두 개의 선을 연결하는 것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건축가의 의도였다. 통독의 도시, 베를린에 유대인의 뼈아픈 역사를 영원토록 숨겨둔다는 의미다.
유대인박물관의 건축 개념인 ‘선들 사이에서(between the lines)’는 일종의 건축 시나리오다. 건축가 리베스킨트는 이 시나리오를 두 개의 박물관 건물에 상징적으로 담아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박물관 내부의 동선과 공간 구축에도 적용시켰다. 이 시나리오는 각 3개의 공간 안에 서로 다른 3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 공간은 ‘연속의 계단’으로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이 계단을 내려가면 박물관의 전시 공간으로 연결된다. 두 번째 공간은 베를린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올리브 정원’을 의미한다. 마지막 세 번째 공간은 죽음으로 몰아간 ‘홀로코스트 보이드(Holocaust void)’다.
49개의 기둥을 세워놓은 올리브 정원 (사진 고영애)
입구로 들어서니 곧바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이 계단은 비좁고 어두웠다. 깜깜한 계단은 벽 틈 사이로 들어온 희미한 빛이 전부였다. 사선으로 기울어진 창과 중첩된 구조물로 된 좁은 계단을 내려가니 좁고 긴 두 개의 복도가 나타났다.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 무작정 걸었다. 전시장으로 가는 긴 통로와 올리브 정원으로 나가는 통로가 나왔다. 올리브 정원은 두 번째 출구로 이어지며 유대인박물관 입구이기도 하다.
올리브 정원에는 49개의 기둥 사이마다 올리브 나무를 심어 놓았다. 올리브 나무는 희망과 평화를 의미한다. 마지막 49번째 기둥은 이스라엘에서 직접 가져 온 흙으로 만들어 깊은 의미를 두었다. 이 올리브 정원은 베를린에서 추방당했던 유대인들을 기억하기 위해 ‘추방의 정원’ 또는 ‘망명의 정원’이라고도 부른다.
메나쉐 카디쉬만의 조각 '낙엽'이 깔린 홀로코스트 보이드 (사진 고영애)
계단을 올라가면 세 번째 공간인 죽음으로 가는 길, ‘홀로코스트 보이드’가 나온다. 공간 바닥에는 이스라엘 작가 메나쉐 카디쉬만(Menashe Kadisgman)의 작품 <낙엽(Shalechet)>을 깔아 놓았다. <낙엽>은 수없이 희생된 유대인 얼굴을 형상화한 강철 조각들이다. 작가는 관람객이 <낙엽>을 밟고 지나갈 때, 강철 조각들의 마찰음을 통해 유대인들이 좁고 깊은 공간에서의 처절했던 비명소리를 떠올리게 하였다. 나치에게 학살당했던 유대인들의 죽음을 기억하며 추모하는 장소였다. 텅 빈 그 공간은 여러 의미의 상징성을 담은 장소였다.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졌다.
복도는 곧게 뻗어나가다 조각조각 흩어지는 방식으로 구획되어 있다.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관람객을 위해 안내 직원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안내원이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유대인들이 아무 곳으로도 탈출할 수 없었던 무섭고 두려웠던 그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유대인들 유물 전시 공간 (사진 고영애)
복도의 벽 디자인 곳곳에서 유대인들이 처했던 두렵고 공포에 떨었던 상황이 그대로 전해졌다. 유대인박물관 디자인의 개념 ‘선들 사이에서’의 의미가 확연히 느껴진 공간이었다. 칼로 난도질한 듯 가늘고 긴 불규칙한 창문들은 수용소에서 대량학살된 유대인들의 불안, 공포, 죽음과 오버랩되었다. 어두운 철재로 된 미로와 같은 좁은 복도를 지나니 소장품 전시실이 나왔다.
유대인박물관의 소장품은 학살된 유대인들의 사진이나 영상물을 비롯해 그들이 가스실로 끌려갈 때 입었던 피 묻은 옷, 신발 등의 개인 소유물이었다. 소장품들을 전시해 보여줌으로써 그때의 참상을 기리는 데 의의를 두었다. 공간 곳곳에서 유대인이 겪은 고통과 공포의 감정 표현에 충실하고자 애쓴 유대인 건축가의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철골빔으로 리모델링된 카페 내부 공간 (사진 고영애)
처음 그곳을 방문하였을 때는 공간디자인의 선적인 요소가 너무 강하고 복잡하여 커다란 감동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두 번째 방문 때는 건축디자인의 개념 ‘선들 사이에서’의 의미를 건물 외부의 벽체와 내부 공간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다. 건축적 미를 추구하기보다는 수많은 유대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공간이었다.
박물관을 나와 카페에 들렀다. 옛 박물관 건물 2개동 사이를 하얀 철골빔으로 리모델링하여 카페로 사용하고 있었다. 동시에 공연장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비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었다. 카페 앞 정원 잔디에 드러눕거나 앉아서 일탈을 누리는 관람객들과 하나 되어 베를린 오후를 만끽하였다. 까만 앞치마를 두른 노란 눈동자가 유독히 큰 미소년이 만들어준 카모마일 티와 애플파이는 여행의 나른함을 달래주는 청량제였다.
유대인박물관 정원 (사진 고영애)
고 영 애
오랫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촬영하고 글을 써온 고영애 작가는 서울여대 국문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졸업했다. 한국미술관, 토탈미술관 등에서 초대 전시회를 열었고 호주 아트페어, 홍콩 아트페어, 한국화랑 아트페어 등에 초대받아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미술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글과 사진을 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잡지에 건축 여행기를 썼다.
이 연재물은 그의 책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 중에서 <데일리아트> 창간을 기념하여 특별히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을 골라서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그가 15년 넘도록 전 세계 각지에 있는 현대미술관들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기록한 ‘현대미술관 건축 여행기’다.
고영애 글/사진,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 헤이북스
[고영애의 건축기행] 독일 유대인박물관 Jüdisches Museum Berlin < 문화일반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