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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삶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 그 경계에서

by 데일리아트

인간의 삶은 두 가지 극단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가장 고상한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손끝과, 가장 더럽다고 여겨지는 배변활동은 모두 같은 몸에서 비롯된다. 예술이 인간 정신의 최고봉이라면, 배변은 그 기초를 유지시키는 뿌리다. 나무가 뿌리 없이 자랄 수 없듯, 안정된 기반 없이는 예술도 불가능하다.


겉보기에 대립적으로 보이는 두 영역이 사실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깨달음은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일본 도코나메시에 위치한 ‘INAX 라이브 뮤지엄’은 바로 그런 통찰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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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AX 라이브 뮤지엄(출처 : 뮤지엄 홈페이지)


이 뮤지엄을 운영하는 곳은 일본의 요업 회사 ‘INAX’로, 본래 화장실 용품 제작으로 시작한 기업이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생활용품 제작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을 지원하며 미술관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 점에서 INAX 라이브 뮤지엄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창조적 영감이 만나는 특별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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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가 있는 광장, 자료관


뮤지엄 입구에 위치한 '가마가 있는 광장, 자료관'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다이쇼 시대의 대형 벽돌 가마와 하늘을 향해 뻗은 굴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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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관(하수관)을 만들던 가마


이 가마는 한때 이곳에서 하수도관이 만들어졌고, 도시의 위생을 책임졌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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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구조도


흙과 불, 물의 조화로 탄생한 이 관들은 인간의 삶을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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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토관


“이걸로 하수도관을 구웠다니, 가마의 크기가 장난이 아니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과거 장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하수도관의 과정과, 이를 옮기던 작업의 영상이 관람객의 시선을 붙든다. 토관 산업은 단순한 흙 조각이 아니다. 위생을 위한 필수품이자 현대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발명품이다. 규격화된 토관은 예측 가능성을 의미하며, 산업화와 도시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일본 근대화의 중요한 상징이다. 땅 밑에 깔린 하수도관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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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 박물관


다음으로 발길이 닿는 곳은 세계의 타일 박물관이다. 이곳은 가마전시장과 다른 분위기다. 전 세계에서 수집된 6000점 이상의 타일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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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입구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타일(이집트, BC 26C)


각각의 타일은 고유한 색과 패턴, 이야기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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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모스크 천장의 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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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erda seca타일(15세기)


어떤 타일은 일본의 전통적인 곡선미를 담았고, 어떤 것은 대담한 색채와 패턴으로 현대적 미감을 자랑한다. 타일이 단순한 건축 자재를 넘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타일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감정과 역사가 담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INAX 라이브 뮤지엄은 과거를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물은 단순히 생활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물은 영혼을 정화하고 몸을 리셋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이곳은 흙과 물, 불을 통해 일본의 생활과 문화를 재해석하며,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허문다. 욕실 용품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예술로 이어지는 이 과정은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사람들은 종종 예술이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INAX뮤지엄은 이런 편견을 부정한다. 예술은 우리 일상 속에 있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곳에 숨어 있다. 욕실의 타일 한 조각에도, 하수도관에도, 매일 밟고 지나가는 평범한 것들 속에도 예술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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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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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화장실의 소변기 :


뮤지엄을 나오는 길에 문득, 집에 있는 욕실 타일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 타일도 예술이 아닐까? 예술이란 그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삶이란 결국 평범한 것들로 이루어진 위대한 예술일지도 모른다. 이 작은 깨달음이 뮤지엄이 남긴 여운처럼 오래도록 가슴 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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