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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예술 21] 흑인의 저항 음악-재즈1

by 데일리아트

비밥 재즈 이전까지의 재즈 저항 음악


사회적, 정치적 불의에 맞서 부르는, 또는 연주하는 음악을 저항 음악이라고 한다. 저항 음악 하면 1960~70년대 미국의 팝가수 밥 딜런과 비틀즈 출신의 존 레논이 불렀던 반전 노래가 우선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비슷한 시기, 유신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불렀던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있었다. 그러나 여기 그 시작과 끝이 온통 저항의 의미로 가득 차 있는 음악 장르가 있다. 바로 재즈이다.


재즈의 탄생


재즈는 아프리카에서 신대륙으로 강제 이주된 흑인에 대한 억압과 차별의 역사 속에서 탄생했다. 즉흥 연주와 독특한 리듬, 그리고 블루노트, 블루스 스케일이라 불리는 우울한 음계가 만들어 내는 이국적인 선율은 기존 전통 음악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 음악은 20세기, 격동하는 미국 사회의 변화와 닮아 있었으며 동시에 그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의 이민자가 미국에 몰려들었고 그들이 가져온 다양한 문화가 뒤엉키며 재즈라는 특별한 음악이 탄생했다. 장소는 남부 최대의 교역항이었던 뉴올리언스였다. 아프로-아메리칸에 의해 시작된 이 음악은 기존의 그 어떤 음악보다 흥겹고 역동적이었다. 그러나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우울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15세기 말부터 시작해 17세기에 절정에 달하는 대서양 노예무역이라는 인류사상 가장 잔혹한 인간 착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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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d of Captives Driven Into Salavery /출처: 위키피디아



최초의 저항 음악, 블루스


노예로 팔려 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던 흑인들은 노래로 그 고통을 달랬다. 남부의 광활한 농장에서 일하며 불렀던 아프리카 전통 음악이 가미된 ‘노동요(work song)’와 기독교로 개종하여 자신들의 방식으로 찬송가를 불렀던 ‘흥인영가(spiritual)’는 여러 민족의 전통음악과 혼합되어 ‘블루스’라는 재즈의 원류를 탄생시켰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오데타 홈스(Odetta Holmes, 1930~2008)는 “블루스는 축하입니다. 슬픔을 그 음악에 넣으면 그렇게 변화하죠”라고 흑인의 삶과 블루스의 관계를 한마디로 정의했다.


초기 블루스는 음악 유랑자들에 의해 연주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확히 조율되지 않은 기타와 낡은 하모니카 하나로 길거리, 술집, 시장터를 떠돌아다니며 블루스를 연주했다. 코넷 연주자이며 훗날, ‘블루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W.C 핸디는 자서전 "Father of the Blues"에서 블루스를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투트윌러의 기차역에서 기타의 현을 칼로 비비며 연주하는 슬라이드 기타리스트의 음악을 들었다. 왜소한 흑인이 연주하던, 그때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주 이상한 음악이었다. 그 곡은 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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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 Handy(1873-1958), 코넷 연주자, 작곡가


‘Joe Turner Blues’



“You will be sorry, be sorry from your heart(당신은 미안할 거야, 진심으로 미안할 거야)


Some day when you and I must part (언젠가 당신과 내가 헤어져야 할 때)


And every time you hear a whistle blow (그리고 당신이 휘파람을 부를 때마다)


(중략)


You’ll hate the day you lost your Joe (당신은 당신의 조를 잃은 날을 미워할 거야)”


1800년대 후반 쯤, 아마도 미국의 가장 오래된 블루스 저항 음악이 아닐까 생각되는 ‘Joe Turner Blues’이다. 조 터너라는 백인 보안관이 흑인 남성들을 사슬로 묶어 강제 노역을 시키고 제방 건설 노동에 강제 동원한 사실을 노래한다. 가사는 연인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인종차별적 법 집행에 대한 항의를 담고 있다.



‘John Henry’ 작자 미상)


Well, John Henry was a little baby (글쎄요, 존 헨리는 어린 아기였습니다)


Sitting on his daddy's knee (아빠 무릎에 앉아서)


He picked up a hammer and (망치를 집어 들고)


A little piece of steel (작은 강철 조각을)


And cried, "Hammer's going to be death of me, Lord, Lord (그리고 외쳤습니다. “망치는 나를 죽일거야, 주님, 주님)


https://youtu.be/ydTRk1l0ZqI


출처: 유튜브 HYPSIS09


이 곡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비롯한 팝 가수와 수많은 블루스 뮤지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다. 존 헨리라는 흑인 노동자가 증기 드릴과 경쟁하여 승리하지만 결국 사망한다는 내용으로, 산업화와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외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미국 남부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힘든 노동에 시달리며 불렀던 노래들도 블루스의 기원이 되었다.



부당한 노동 조건과 대우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We Don't Have No Payday Here〉와 〈Take This Hammer〉 같은 곡들이 있다. 이러한 초기 블루스 곡들은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지속된 인종차별, 강제 노동, 불공정한 법 집행 등에 대한 흑인의 저항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가사는 대부분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은유와 암시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는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표현 방식이었다.


초기 재즈 시대의 저항 음악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빠르게 산업화하여 가던 북부지방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뉴올리언스를 비롯한 남부 지방 흑인의 이주를 장려했다. 백인 사회에 흑인이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시카고, 필라델피아, 뉴욕 등 대도시에는 흑인이 모여 사는 지역, 이른바 흑인 게토가 형성되었다. 남북전쟁 이후 노예 해방은 이루어졌지만, 흑백분리 정책인 ‘짐 크로법’이 발동하는 등 도시의 하층민으로 사는 흑인의 삶은 플렌테이션 노예보다 더 참혹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극작가이자 사회 비평가인 리로이 존스(LeRoi Jones, 아미리 바라카)는 자신의 저서 『Blues People』에서 "흑인 음악은 억압에 대한 저항과 고통의 표현 수단이었으며 노예 시대의 영적 음악부터 블루스, 재즈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음악을 통해 고통을 치유하고 상처받은 감정을 다스렸다"고 말했다.


1920년을 전후하여 대부분의 뉴올리언스 출신 연주자가 시카고에 정착했을 때, 여성 블루스 가수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들은 유랑 블루스 연주자들의 후예로, 도시 빈민가에서 핍박받는 흑인의 삶을 노래했다. 베시 스미스(Bessie Smith)도 ‘블루스의 여제’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Poor Man’s Blues〉와 같은 곡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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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or Man’s Blues’ 베시 스미스의)


Mister Rich Man, Rich Man (자 아저씨, 부자 아저씨)


Open up your heart and mind (마음과 생각을 열어)


Give the poor man a chance (가난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세요)


(중략)


Oh, workin' man's wife is starvin' (오, 노동자의 아내가 굶고 있어요)


Your wife is livin' like a queen (당신의 아내는 여왕처럼 살고 있어요)


Please, listen to my pleadin' (제발, 제 간청을 들어주세요)


'Cause I can't stand these hard time long (이 힘든 시간을 오래 견딜 수 없거든요)



‘블루스의 어머니’로 불리는 마 레이니(Ma Rainey)도 대담하고 도발적인 가사로 사회 규범에 도전했다. 그밖에도 아이다 콕스(Ida Cox) 메이미 스미스(Mamie Smith) 등도 당시의 사회적 문제들을 솔직하게 다룬 노래들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흑인 여성 가수가 주도했던 블루스 음악 신에서 찰리 패튼(Charlie Patton),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Blind Lemon Jefferson) 등 남성 가수도 당시 사회상을 고발하는 내용을 노래했다.


1920년대의 블루스 음악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의 현실을 반영하고,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그들은 인종차별을 비판했으며 위의 베시 스미스의 곡처럼 대공황 시기의 빈곤과 노동 착취에 대한 경제적 불평등을 호소했다. 또 여성 블루스 가수들은 당시 금기시되던 성적 주제들을 대담하게 다루어 흑인 여성운동의 포문을 열었다. 이렇듯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모두 블루스를 통해 그들의 삶에서 문화적 정체성과 자부심을 강화하고자 했다.



스윙 재즈 시대의 저항 음악


미국의 경제 부흥은 1930년대에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시행된 뉴딜정책과 마셜 플랜 등의 경제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시기는 스윙(Swing) 음악의 전성 시대이다. 화려한 춤과 흥겨운 멜로디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스윙 재즈 열풍을 일으켰다. 이렇게 세속적이고 향락적인 음악으로 비춰지는 스윙 재즈가 유행했지만, 그 안에서 재즈 음악의 저항 정신은 계속되고 있었다.


재즈를 불온한 음악으로 규정하고 춤과 음악 감상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나치 독일에서는 '스윙 키즈'라 불리는 청년들이 재즈를 통해 나치 체제에 대한 반항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는 나치 독일 시대 청소년들의 저항 정신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로 스윙 댄스와 관련된 문화는 자유와 개성 표현의 상징이 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자유부인’에 스윙 재즈와 춤이 삽입되어 1950년대 한국 사회의 급격한 문화적 변화와 영화 속 인물들의 일탈 등, 기존의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는 하나의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스윙 재즈 시대에는 폴 화이트먼, 베니 굿맨, 아티 쇼 등 백인 음악가들이 이끄는 재즈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흑인 뮤지션들이 백인 연주자들에게 갖는 우월감은 상당했다. 흑인 음악가들은 스윙재즈를 통해 그들의 문화적 자부심과 정체성을 표현했다. 밴드 리더인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플레처 헨더슨 같은 백인 못지않은 지적인 흑인 음악가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스윙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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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월 23일, 듀크 엘링턴은 뉴욕 카네기홀에서 역사적인 콘서트를 열었다. 이 콘서트에서 그은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45분짜리 대작 〈Black, Brown and Beige〉이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흑인들이 받았던 착취와 인권유린의 역사, 그리고 그들의 투쟁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듀크 엘링턴은 영국 잡지 ‘리듬’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아프로-아메리칸의 음악은 미국 관용어 이상의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미국 땅에 심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견뎌낸 플랜테이션 시절의 폭정에 대한 결과물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Black, Brown and Beige』의 첫 번째 섹션인 'Black'은 흑인 노예를 위한 곡으로, 노동요로 시작하여 슬픈 영가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두 번째 섹션인 'Brown'은 짐 크로 법이 시행되던 시대, 노예 해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희생한 흑인을 추모한다. 세 번째 섹션인 당시 곤경에 처한 흑인들의 생활을 그린 'Beige'에서는 아직 먹을 것도, 쉴 곳도 없는 가난한 흑인에 대한 절규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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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빌리 홀리데이의 의미심장한 곡 〈Strange Fruit〉이 그리니치 빌리지의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초연되었다. 당시 23세였던 빌리 홀리데이는 이 곡은 ‘개인적 항의’라고 운을 띄운 후 실내를 어둡게 하고 종업원의 움직임도 자제시킨 가운데 읊조리듯 부르기 시작했다.



Southern trees bear a strange fruit(남쪽 나무는 이상한 열매를 맺는다)


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잎의 피와 뿌리의 피)


Black bodies swingin' in the Southern breeze(남풍에 검은 몸들이 흔들리고 있어요)


Strange fruit hangin' from the poplar trees(포플러 나무에 이상한 과일이 매달려 있어요)


Pastoral scene of the gallant South (용감한 남부의 목가적인 풍경)


The bulgin' eyes and the twisted mouth (튀어나온 눈과 일그러진 입)


Scent of magnolias sweet and fresh(목련의 달콤하고 상큼한 향기)


Then the sudden smell of burnin' flesh (그러다가 갑자기 살이 타는 냄새가 나)


Here is a fruit for the crows to pluck (여기 까마귀가 따야 할 열매가 있네)


섬뜩한 이 가사는 백인들에게 린치를 당하며 죽어간 흑인들의 시체가 마치 과일처럼 매달려 있는 광경을 ‘이상한 과일’이라는 은유로 표현한 것이다. 이 곡은 그해 말 녹음되어 80년이 지난 지금도 저항 음악의 근간이 되고 있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 재건 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인종차별로 인한 흑인 희생자 수는 정확히 집계하기 어렵지만, 공식 집계된 린치 희생자만 6,400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발표되지 않은 살인, 폭행, 강간 등의 피해자를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블르스는 이런 삶을 살아낸 원동력이었고 그들이 내뱉은 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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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ie Holiday(보컬, 1915~1959/ 20호 Acrylic on Canvas 2024, 김정식)


-"2부. 비밥 재즈 시대와 포스트 비밥 시대의 저항음악"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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