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이다. 내가 마주하고 서 있는 곳은 어느 집 현관문 앞. 주변을 둘러본다. 낯설다. 내가 사는 곳은 아니다. 다시 문을 본다. 방금 전에는 보이지 않던 종이 한 장이 현관문에 붙어 있다. 거기에는 요즘 내가 붙들고 있는 시가 쓰여 있다. 1969년에 출간된 시집 『민감한 길』에 수록된 시 「한 잔 쟈스민 차에로의 초대」 이다. 고개를 끄덕인다. 독일어로 쓰여 있지 않고 한글로 쓰여 있어 다행이다.
한 잔 쟈스민 차에로의 초대
들어오세요, 벗어놓으세요, 당신의
슬픔을. 여기서는
침묵하셔도 좋습니다
나는 문을 두드려 이 초대에 응할 것인가? 나는 차를 마시며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고, 내 슬픔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뱉고 싶은 사람인데. 특히나 낯모르는 이에게 하는 하소연은 더 용감해지는데. 나는 거부할 것이다. 자명하다. 하지만 저 시가 현관문 앞에 붙어 있는 맥락을 이해하면 선택은 달라진다. 한국에 번역된 시 아래에는 각주를 달아놓았다.
"강성의 프로파간다 언어가 난무하는 사회주의 국가 동독에서 이 낮은 목소리의 시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저항의 표지로 쓰였다. "
구동독 시절 사람들은 체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저항의 표시로 이 시를 집의 문 앞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시인은 결국 대학에서 쫓겨났고 1977년 서독으로 망명했다. 억압적이고 비인간적 체제를 찬양해야 하는 슬픔. 그 슬픔을 이제는 그만 내려놓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탄압이 있었을 것이고 두려웠을 것이다.
나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초대에 응할 것이다. '그러자, 우리 같이 말해야 하는 입을 다물자. 은은하게 퍼지는 차 향을 맡으며 부드럽고 따뜻한 차의 맛이나 느껴보자. 목소리 높여 찬양하느라 쉬어 버린 목을 쉬게 하고 뻗뻗하게 굳어버린 어깨를 이완시키자.' 찻자리는 수다의 자리여서 혹했던 나에게 침묵의 자리로도 가능함을 일깨워주었다.
그런데 궁금하다. 그토록 많은 차 중에 왜 쟈스민차일까? 쟈스민차가 어떻게 이 시에서 상징으로 쓰여지게 되었을까? 시인 라이너 쿤체와 그가 이 시를 발표했던 시기를 알면 내가 품었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을까? 나는 세 가지 정도의 상징성을 발견했다. 희소성, 교류성, 아름다움.
희소성부터 이야기해보자. 이 시는 라이너 쿤체가 서독으로 망명하기 전 동독에서 1969년에 출간된 시집 『민감한 길』에 수록되어 있다. 발표된 시기인 1960년대 동독은 어떠했을까? 1961년에 서독으로 탈출하는 시민들을 막기 위해서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고, 1968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프라하의 봄'이 일어났을 때 소련과 함께 바르샤바 조약군을 지지할 정도로 사회주의 체제는 엄격했고, 서방과의 교류는 단절되었고, 경제는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시기에 쟈스민차는 소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나마 1966년 문화대혁명이 있기 전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적게나마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특권층만이 향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라이너 쿤체는 사회주의 체제에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저항을 했던 시인이기에 쟈스민차를 소비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차를 어떻게든 경험했을 때 차를 좋아하는 동독사람들이 생각났을 것이고, 함께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좋은 건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중국도 차 산업이 나라에서 직접 관리하도록 국유화되고 1966년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차 산업도 탄압을 받았지만, 그래도 쟈스민차의 고향인 푸젠성 지방을 중심으로 여전히 소비가 이루어졌고 어느 정도 수출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과 소련이 서로 분쟁하며 각자의 노선을 따라가자, 당연하게도 소련의 동맹국인 동독과 소련의 적대국으로 돌아선 중국과는 거의 교류하지 않게 되었다.
유럽으로 쟈스민차가 알려진 시기는 19세기 후반이라고 하는데 만약 서로 교류하지 않았다면 쟈스민차가 알려질 수 있었을까? 나는 쟈스민차가 교류의 상징으로 보인다. 베를린 장벽으로 서방과의 교류는 단절되고 중소 분쟁으로 중국과의 교류도 단절된 채, 소련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동독 체제를 비판하고자 하는 마음이 쟈스민차에 담겨 있으리라고 본다.
쟈스민차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향기가 아닐까? 가향차로 대표적인 차는 바로 이 쟈스민차와 얼그레이를 꼽는다. 쟈스민차의 영감을 받아 영국의 백작 그레이가 얼그레이를 만들었다고 하는 설도 들어본 적이 있다. 이 향기로운 차를 가공하고 차를 마시기까지의 과정은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 쟈스민차를 이 시에서 상징으로 쓴 이유는 쟈스민차를 단지 음료로서 여기기보다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대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쟈스민차를 만드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정통 방법이 최고급 쟈스민차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쟈스민 꽃 향을 찻잎에 잘 흡수시키기 위해서 쟈스민차용 찻잎을 따로 가공한다. 이 찻잎을 '짜오베이(Zao bei)'라고 하며 스타일에 있어서는 녹차에 가깝다. 이 찻잎은 녹차, 홍차, 백차, 황차, 흑차 등 다섯가지 차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다. 최고 품질의 짜오베이는 이른 봄에 수확되어 1차 가공된 상태로 쟈스민 꽃이 피는 여름까지 보관되었다가 꽃이 피면 같이 섞어 향을 흡수시키는 '음화(窨化)' 과정으로 쟈스민차를 완성한다.
이 음화 과정이야말로 행위 예술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홍차 수업』에 소개된 음화 과정을 옮겨본다.
"이 음화과정은 실내에서 찻잎과 꽃잎을 함께 섞어 큰 더미를 만들어놓으면 이 더미에서 열이 나며, 이 열기로 인해 꽃잎이 활짝 피면서 꽃향을 방출하면 찻잎은 이 향을 흡수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12시간 정도 걸린다. 도중에 한 번 정도 더미를 풀어헤쳐 찻잎과 꽃잎을 쉬게 하기도 한다.
12시간 지난 뒤 꽃잎을 제거하고 일정 시간 찻잎을 쉬게 한 뒤 새로운 신선한 꽃잎을 가져와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원하는 향의 강도에 따라 반복 횟수는 다르겠지만 대체로 횟수가 많을수록 고급 차이며 7~8번까지 되풀이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최고급 쟈스민차를 만드는 데는 가공 작업이 한 달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 - 『홍차 수업』 중
음화과정은 섬세함을 요구하고 과정도 복잡하며, 맛과 향을 조화롭게 하는 데는 많은 경험과 기술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행위 예술 같고 완성된 쟈스민차는 예술 작품같다.
중국 식당에서 마시는 쟈스민차는 아무래도 음화과정이 7~8번까지 반복된 고급 쟈스민차는 아니지만 나는 그 쟈스민차도 사랑한다. 중국인들도 고급 쟈스민차보다는 일반 등급의 쟈스민차를 더 많이 마시고 기름진 음식의 소화를 돕는다. 일반 등급의 쟈스민차는 짜오베이가 단지 여름에 수확한 것이고 음화 과정도 한두 번 한 것이지만 맛과 향에서 충분히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이제 라이너 쿤체는 저 시를 발표했을 때와는 달리 쉽게 쟈스민차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만나러 가는 많은 이들이 고급 쟈스민차를 선물하지 않을까? 나라도 큰 고민 없이 라이너 쿤체에게는 쟈스민차를 선물로 줄 것이다. 라이너 쿤체의 시들을 한국에 번역한 전영애 교수도 그를 만나러 갔을 때 선물로 쟈스민차를 준비했다. 이제는 분단 국가가 아닌 통일된 독일에는 다양한 차 브랜드들이 있고 그 브랜드들에서 쟈스민차도 판매하고 있다.
10년 전 자료이긴 하지만 2015년 차 소비량은 영국이 약11만톤, 독일이 약 1만 9000톤으로 물량으로는 영국이 약 6배 더 많지만, 소비자가로 환산한 총액은 오히려 독일 시장이 더 크다. 어떤 자료에 따르면, 독일이 영국보다 평균적으로 일곱 배 더 비싼 차를 마신다고 한다. 영국인들이 음용하는 차의 95% 가량이 값싼 티백인 반면, 독일인들은 잎차 음용률이 60% 이상에 달한다. 또한 독일인 음용자들은 다양한 스페셜티 티를 선호할 뿐만 아니라 가공 과정이나 생산지, 차를 우리는 법 등에 관해서도 매우 관심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차를 구입할 때도 직접 차 전문점으로 가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문기영, 『홍차 수업 2』, 글항아리)
쟈스민차를 시적 상징으로 쓸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독일의 이런 차 문화 배경도 한 몫 했으리라 여겨진다. 글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마음 한편으로 속상하다. 독일은 통일을 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아직 통일이 잘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차 한 잔 마시자"며 약속을 잡는 문화가 있다. 윤슬이 반짝이며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찻집에서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이은영의 작품 속 차 이야기 ②] 당신의 슬픔을, 여기서는 침묵하셔도 좋습니다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