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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칼럼] 길 위에 서는 일은

by 데일리아트

꽤 춥다


설경을 보기 위해 예약해 둔 장소를 날씨 탓에 취소하고


대신 마치 그곳에 간 것처럼 가고자 했던 풍경의 환상을 눈감고 떠올려 본다


여행은 천천히 가는 독서라니 좋지 않은가!



여행의 경험을 자산과 동일시 해온 나는 수시로 이곳 저곳 잘 떠나곤 했는데


이런 나의 잦은 이동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부러움도 주는지


그렇게 하려면 건강 시간 돈이라는 세 요소의 필요 충분 조건이 주어져야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의문에 간단 명료한 답을 줄 수 있다


물론 웬만큼의 역량은 갖춰야겠지만


원하는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음 속 선명한 우선 순위를 빨리 확보하여 다른 소망 앞에 먼저 둔다


그러면 일이 쉬우져 그냥 출발하는 것이다


하나만 채택하여 오롯이 즐기는 것


소소한 것일지라도 길위에 서는 일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에 의지함이 크다



떠남에서 얻은 신생은 행복과 동의어인데


이 행복의 초대를 누가 거절 하겠는가


사람을 찾기보다 하늘의 구름을 보겠거니


나무를 믿겠거니



내 서정의 바탕이 된 이 땅에서의 추수들


계절 음식 사람


기억이여 내 옆에 있으라


너는 내 부름에 응답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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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늘 이야기를 너무도 좋아해


맑게 개인 여름 하늘에 느릿느릿 흘러가던 하얀 구름


아무리 오래 쳐다보아도 조금도 싫지 않던 구름의 운무


10월의 하늘은 또 얼마나 높고 푸르렀는지


그 해거름에 기러기떼 열지어 어디론가 날아가고 어둠속에서 귀뚜라미도 울었다



하늘에서 빙빙 돌던 솔개가 잽싸게 내려와


마당에서 놀고있던 닭을 낚아채 치솟던 일


놀라움에 입을 벌릴 틈도 없이 닭을 문 솔개는 먼 창공으로 사라져갔다


순식간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일


겨울의 혹한기에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쫙 쫙 달라붙던 맹추위와 눈보라


공해가 없던 시절 엄지 두어 개 합한 굵기의 천연 고드름을 따먹던 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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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키우던 개 메리와 사람보다 더 진한 사랑과 소통을 나누었다


내일 모레 글피 곧 보름이 오네


목숨의 근간이 되는 음식


그 중에 보름 상차림만큼 끌리는 것이 또 없다


집안 어른들은 어디서 그렇게 붉은빛 나는 팥을 구해 오셨을까


잘 쪄 놓은 찰밥을 김에 싸거나 피마자잎에 둥글려 따뜻한 두부국과 함께 곁들였지



그 시절 풍습으로 찰밥서리가 있었는데


공들여 쪄놓은 작은 시루를 아이들은 통째로 가져가 버렸다


흔했던 찰밥서리에 도둑을 맞고도 나무라지 않았던 인심


너무 염치 없었던지 그나마 큰 시루는 손을 타지 않아 무사했던 보름 저녁


그날의 정갈하던 밥상 옛맛을 찾아 헤매는 내게


얼마 전 오랜 벗이 말했다


일년만에 터줏대감 체인지



여기 저기에서 가져온 음식맛집의 명함들을 건네주니


자신은 이제 물러서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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