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득명, 가교보월(街橋步月), 1786, 종이,24.2×18.9cm,『 옥계사수계첩(玉溪社修禊帖)』 4폭 중, 삼성출판박물관 소장
설 지나고 처음 맞는 보름달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속절없이 세월은 흘러 가지만, 새해가 되어 처음 맞이하는 모든 것은 의미가 깊고 새롭다. 우리의 조상들은 특히 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매우 신비롭게 여겼다. 새해 첫 보름달을 우리 조상들이 그냥 보낼 리가 만무하다. 신년 첫 날에 뜨는 해를 보며 새로운 다짐을 했다면, 정월 대보름에는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혼자서 소원만 빌자니 너무 심심하다. 몸도 튼튼해야하지 않는가? 사람의 몸 중에서 제일이 다리이다. 다리를 튼튼해야 한 해 여기저기 다니며 놀기도 하고 사람들도 만날것이 아닌가. 그래서 정월대보름에는 천을 가로지르는다리(橋)를 밟아야 다리(脚)가 튼튼해진다는 세시풍속 <답교놀이>가 생겼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달도 보고 다리를 밟으면 더 없이 좋았을 것이다. 한양 어디에서 보면 가장 멋지게 보름달도 감상하고 답교놀이를 할까? 아마도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것이 좋겠다.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왕이 행차하는 지금의 남대문로, 그 중에서 청계천과 만나는 가장 큰 다리인 광통교로 사람들이 몰렸다.
1786년 정월 대보름에 이곳의 풍경을 전하는 책이 있다.『옥계사수계첩(玉溪社修禊帖)』이다. 화첩에는 <등고상화(登高賞華)>, <산사유약(山寺幽約)>, <설리대적(雪裏對炙)>과 더불어 김태한의 가교보월이라는 시가 전해진다. 이들은 옥계라고 부르는 서촌의 옥동(현재 옥인동)에 모여 <옥계시사>라는 문학동우회를 만든 중인들이다. 한양에서 제일 풍광 좋은 인왕산 자락의 맑은 계곡의 이름을 따서 옥계라는 동인회를 만들고, 틈만나면 백지를 앞에 두고 아름다운 시를 써내려갔다. 보름을 맞아 함께 광통교에 내려왔다. 가교보월(街橋步月)을 감상해 보자.
순라꾼도 밤경계를 풀어 노는 아이들 서로 부르고 金吾弛夜戒 遊子各相招
둥근 달 새해를 쫓아오니 맑은 빛 이밤이 제일이네 圓月從新歲 淸光最此宵
노래 소리 시내에 울려 퍼지고 수레와 말이 길과 다리를 둘렀으니 笙歌喧市陌 車馬擁街橋
아름다운 계절 만난 것 비로소 깨달아 우리도 즐거운 마음 가득하네 始覺逢佳節 吾曹樂意饒
- 김태한(金泰漢), <가교보월(街橋步月)>,『 옥계사수계첩(玉溪社修禊帖)』, 옥계시사, 1786
역대의 왕들도 보름을 맞아 흥겹게 노는 백성들의 낭만을 방해하지 않았다. 영조실록 1770년 1월 14일 정월대보름의 기록을 보면, 영조도 '백성들과 봄날의 뜻을 함께 하기 위해 야간 통행금지를 없앴다'는 기록이 있다. 이럴때 가장 흥겨워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늦은 밤에 순찰을 도는 순라꾼도 없으니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시끄럽게 떠든다. 둥근 달이 한 겨울의 캄캄한 밤을 아름답게 수를 놓고, 흥에 겨운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와 수근대는 소리들이 청계천 흐르는 물소리와 조화를 이룬다. 타고온 수레는 천변에 두고, 수레를 끄는 말들도 덩달아 아름다운 계절의 한 장면을 으룬다는 내용이다.
이 서책에는 임득명이 그린 아름다운 그림도 등장한다. 광통교에 몰려온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그림이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다르다. 사선적 구도가 우리의 전통화법과는 큰 차이가 있다. 천변의 집들이 위태할 정도로 사선형이다. 당시에 서양의 이런 사선형 구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광통교에 올라간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 없이 즐겼다. 아름다운 다리에서 보는 보름달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2025년에 보름에도 달 빛 아래 다리를 밟으며 소원하는 바를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