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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에게 들려주는 서울이야기 ⑪] 낙산공원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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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 후 세웠다. 1392년에 개경에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한양으로 천도한 이후, 1395년 종묘와 사직, 그리고 새 궁궐인 경복궁을 영건했다. 그리고 1396년 1월부터 한양에 도성을 쌓는 일을 시작하였으니, 한양 도성은 600년 동안 서울을 지켜온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손자와 두 번째로 찾은 한양 도성 길은 흥인지문(동대문)에서 시작하여 낙산을 지나 혜화문까지 이어지는 2.1km의 낙산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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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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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공원의 한양도성길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와, 성벽이 예술이네요.”


성곽 아래를 나란히 걷던 손자들 중에 큰 손자(형주)의 말을 듣고 난 깜짝 놀랐다. 설마 예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작은 손자(주원)의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구름이 성벽에 걸려요. 좋은 그림이 나올 거 같아요.”


요즘 아이들은 우리가 자라던 시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똑똑하고 영리하다. 하긴 지금과 어느때를 비교하겠는가. 배를 곯지 않기만 해도 행복해 하던 보릿고개의 삶이 아니었나.과거를 자꾸 회상하는 것을 보면 내가 늙긴 늙은 모양이다. 과거는 늘 미화된다고 하지만 어두운 과거는 단절시키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짐짓 역사적 내용을 꺼내들어 할아버지로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다.

“서울의 사방은 자연 요새인 내사산(內四山)으로 둘러싸고 있다. 동으로는 낙산, 서쪽은 인왕산, 남쪽은 물론 남산이고, 북은 북악산이란다.”


한양 도성은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이 내사산의 능선을 연결하여 쌓은 약 18.2km의 성곽이다. 성곽을 쌓은 후 네 개의 큰 문과 네 개의 작은 문을 내었다. 큰 문은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숙정문(북대문)이며, 네 개의 작은 문은 홍화문(혜화문, 동소문), 광희문(수구문), 소덕문(서소문), 창의문(북소문)이다. 그리고 중간 중간 문이 없는 곳에는 '암문'을 내어 사람들이 겨우 드나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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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길을 산책나온 시민들을 그린 손자의 그림


한양 도성의 4대문 중 동쪽의 흥인지문(동대문)은 태조 7년(1398년)에 완성했다가 단종 6년(1453년)에 고쳐지어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의 사다리꼴 모양의 우진각 지붕이다. 성문 바깥쪽에는 도성의 8개 문 중 유일하게 반원 모양으로 쌓은 옹성이 남아 있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그 바깥쪽에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 시설을 말한다.


흥인지문 공원 언덕길을 따라 3분 정도 오르면, 잘 조성된 성곽 길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는 비교적 완전한 모습의 성곽을 볼 수 있다. 한양도성 옆으로 난 길을 걷다 보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환상적인 서울의 동북쪽 전경도 볼 수 있고 계속 직진하면 낙산공원으로 연결 된다. 이 구간은 도심 속에서 서울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고스란히 만날 수 있는 산책길이다.


이 길은 걷기에 무리가 없어 어린 손자와 걷기에 부담이 없다. 완만하고 한적한 도심 속 숲길을 20분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낙산 공원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훼손된 것을 2002년에 복원하여 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다. 원래 이곳에는 시민아파트가 있었다. 현재 근린공원에 잇던 27개동의 동숭동 시민아파트가 있었다. 김현옥 서울시장 시절인 1969년에 건립되었는데 너무 낡아서 1997년에 주민 보상 이후 철거되었다. 이 자리에 낙산 근린 공원이 조성되었다.


낙산공원은 파리의 몽마르트언덕과 높이도 비슷하다. 낙산공원이 125미터,몽마르트언덕이 129미터이다. 근대화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지어진 아파트를 철거하고 시민들의 문화와 쉼 터로 재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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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24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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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공원에 잇던 시민아파트 모습, 출처: 인생여행의 현장 에세이


공원길 곳곳에는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낙산 전시관과 함께 편의시설도 갖추어져 있어 서울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해가 질 무렵 산자락 정상의 낙산정에서 한눈에 펼쳐지는 서울의 야경은 특히 아름답다. 젊은이들이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낙산 공원은 어린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로 귀양을 가고 나서 왕비였던 정순왕후가 매일 올라 영월 하늘을 바라보다가 생을 마쳤다는 슬픈 이야기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주변에는 정순왕후와 관련된 유적들도 많이 자리하고 있다.


낙산정을 지나면서 태조 이성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성계는 고려 말에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바로잡고 조선을 건국하여 정도전을 비롯한 유능한 인재를 등용했다. 조세를 개혁하고 국방력을 강화하는 등 뛰어난 리더십으로 조선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왕이다.


“임금이 되면 좋을까?”


“난 그림 그리는 게 더 좋아!”


낙산 공원을 산책하고 집에 돌아온 손자들은 한양 도성 길을 걸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그림으로 그리며 즐거워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손자들과 함께 했던 한양도성의 추억은 오래도록 나의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

낙산으로 오르는 한양 도성 길은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나오면 흥인지문(동대문)을 만날 수 있고 우측으로는 공원길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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