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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속 총 이야기] 고야의 그림에 등장하는 총

by 데일리아트


총은 생명을 빼앗고, 미술은 기억을 남긴다. 그 기억속에서, 고야는 총을 든 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하는 순간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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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1808년 5월 3일, 1814 /출처: 프라도미술관


미술은 아름다움을 담는 예술이지만, 때로는 가장 잔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의 <1808년 5월 3일>은 전쟁의 광기를 목격한 화가가 붓으로 새긴 죽음의 기록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희생자의 얼굴뿐, 그들을 겨눈 차가운 총구는 감정도 망설임도 없이 생명을 빼앗는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살육의 도구가 미술 작품 속에서 이렇게나 강렬한 상징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이 그림은 1808년 스페인 독립전쟁 중 프랑스군의 무자비한 학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프랑스군이 사용한 총기는 그 자체로도 19세기 전쟁과 폭력의 상징이다. 그 총이란 무엇이며, 고야가 이를 어떻게 작품 속에서 해석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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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프 보나파르트 /출처: 위키백과


1808년 5월 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프랑스군에 맞선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스페인 왕위를 강제로 빼앗고 자신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Joseph-Napoléon Bonaparte, 1768~1844)’를 왕으로 앉혔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돌과 칼을 들고 프랑스군에 저항했지만, 프랑스군대의 조직적인 공격 앞에 처참히 진압당했다.


다음 날인 5월 3일, 프랑스군은 마드리드 외곽에서 대규모 보복 처형을 감행했다. 무장하지 않은 스페인 시민들은 벽 앞에 무릎을 꿇었고, 그들을 향해 프랑스군이 일제히 총을 겨누었다.

프랑스군의 총, '샤를르빌 머스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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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서 두번째 라이플이 '샤를르빌 머스켓' /출처: 무기(사이언스북스)


그림 속 프랑스군이 사용한 총기는 1777년형 ‘샤를르빌(Charleville) 머스켓’이다. 이 총은 프랑스군이 18세기 후반부터 사용했던 표준 보병 화기로, 강력한 화력을 가졌다. 사거리는 약 50m에서 최대 100m가량이다. 요즘의 자동화기와 달리, 당시는 숙련된 병사라도 1분에 2발정도 사격이 최대치였다.


제한된 사격속도로 인해 이 총의 가장 큰 특징은 집단 사격을 전제로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머스켓은 명중률이 낮아, 개별 사격보다는 병사들이 일렬로 서서 동시에 발사하는 전술이 일반적이었다. 고야의 그림 속에서 이 총은 전투가 아니라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학살하는 도구로 변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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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보병 /출처: Men at Arms(플래닛미디어)


《1808년 5월 3일》에서 고야는 총을 쥔 프랑스군을 철저히 비인간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그들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고, 얼굴이 보이지 않으며, 한 덩어리의 검은 그림자처럼 서서 기계적으로 총을 겨누고 있다. 반면, 스페인 민중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극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이 대비는 총이 인간성을 지운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총을 쥔 병사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길 뿐이다. 전장의 무기가 국가 폭력의 도구로 변할 때, 총은 그저 살육의 기계가 된다.


고야의 이 작품이 지금까지 강렬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저 한 장의 전쟁 기록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총은 무기가 아니라, 폭력과 억압의 상징이다.


고야는 이 총을 통해 말한다. 전쟁은 영웅적인 것이 아니며, 총은 인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목숨을 빼앗는 것이라고. 그리고 역사는 이를 반복해서 증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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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프랑스 제1기병연대 군복 /출처: SOLDIER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총성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그림 속에서처럼, 무자비한 총구 앞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했던 이들이 존재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그림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 총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미술 속 총 이야기] 고야의 그림에 등장하는 총의 기종은?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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