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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애의 건축기행] 독일 슈테델 미술관

by 데일리아트

"프랑크푸르트의 자존심"
- 건축가: 구스타브 파이힐(Gustav Peichl)의 설계, 슈나이더+슈마허(Schneider+Schumacher)의 신관 증축
- 주소: Schaumainkai 63, 60596 Frankfurt am Main, Germany
- 홈페이지 www.staedelmuseum.de


사진작가 고영애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60곳을 프레임에 담아 소개한다. 뉴욕현대미술관부터 게티센터, 바이에러미술관, 인젤홈브로이히미술관 등 현대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12개국 27개 도시에서 찾은 미술관들을 생생한 사진과 맛깔스런 건축 이야기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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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델 미술관의 전경(왼쪽은 구스타브 파이힐 설계의 신관, 중앙의 잔디로 덮어놓은 증축관, 오른쪽은 구관) (사진 고영애)


마인 강가를 따라 서 있는 13개의 다양한 건축양식의 박물관과 독특한 미술관들은 프랑크푸르트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은 삶의 질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프랑크푸르트는 옛부터 경제·금융 중심지로서 유럽중앙은행이 위치한 국제적인 도시이며 세계 금융계의 대부인 로스차일드(Rothschild, Nathan Mayer)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문호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하며 서정적인 청년기를 꽃피웠던 예술의 도시다.


교통의 허브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무역의 메카로 오랜 세월을 군림하며 세계 부호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일찍이 미술 컬렉션에 눈을 뜬 기업가들이 많이 살았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도시 곳곳에는 다양한 미술관들이 숨어 있다. 시민들은 비교적 개방적이고 친절하였다. 아마도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민주적인 전통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리라. 프랑크푸르트에 살고 있는 3분의 1 정도의 인구는 타국에서 온 방문자들이다. 방문자들은 어디를 가든지 그들 언어로 소통할 수 있으며 자신들 나라의 음식을 제공해주는 레스토랑을 도시 전역에서 만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가 부상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마인 강가에 자리한 독특한 미술관과 다양한 박물관 건축 때문이다. 중앙역을 빠져나와 카이저 거리에서 택시로 마인 강가의 박물관 거리까지 한숨에 달려 슈테델 미술관 앞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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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델 미술관 (사진 고영애)


슈테델 미술관은 2015년 창립 200주년을 맞았던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유서 깊은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프랑크푸르트의 은행가이며 무역 상인이었던 슈테델이 죽기 전 1816년에 자신의 전 재산을 시에 기탁하며 세워졌다. 처음 출발은 슈테텔 재단으로 시작되었고 1878년에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슈테델 미술관을 짓게 된다. 그 후 프랑크푸르트 시가 연합해 1906년에야 비로소 시민들에게 개관되었다. 현재의 미술관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건축가인 구스타브 파이힐에 의해서 1991년 설계되었다.


2012년 새로이 증축된 슈테델 미술관 신관은 지하에 전시장을 둔 새로운 개념의 미술관이다. 현대건축가의 대부분은 자신의 건축 스타일을 외관으로 드러내는 형태에 집착하지만 독일 출신의 건축가 그룹 슈나이더+슈마허는 형태의 미보다는 실용을 추구하였다. 실용주의 철학을 미술관 전시 공간에 불어넣었다. 이상적인 아이디어였다. 증축된 전시장 공간 위를 잔디로 덮어 놓은 독특한 디자인은 개관할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슈테델 미술관 신관의 건축비 50퍼센트 비용은 미술을 사랑하는 프랑크푸르트 시민들과 기업, 각종 예술재단들이 캠페인을 벌여서 충당하였다고 하니 신관은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의 후원으로 지어진 시민미술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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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개의 LED 램프를 설치해놓은 신관 전시실 (사진 고영애)


증축된 슈테델 미술관 신관은 기존 미술관 뒤편 지하에 3000제곱미터의 전시 공간을 확보한 최대이자 최초의 지하 미술관이랄 수 있다. 여러 차례의 확장으로 인해 발생된 기존 건물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기존 건물의 역사적인 의미를 중시한 설계안이 채택되었다. 역사에 대한 존중은 건축에서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숙지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이 설계안은 역사성과 동시대성 을 조화롭게 풀어낸 디자인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예를 들면, 중정을 둘러싼 건물 외부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지하에 엄청난 크기의 전시 공간을 배치한 것이다. 지하 전시장 중정을 덮고 있는 천장에는 무려 197개의 원형 창을 설치하여 지하 전시장으로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유도하였다. 밖에서 바라보았을 때, 넓은 잔디밭 사이로 가지런히 드러난 원형 창은 하나의 패턴을 만들어 훌륭한 디자인 효과를 얻었고, 산책로로도 이용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렸다.


전시 관람을 마친 후 미술관 뒤쪽 잔디밭을 산책하였다. 미술관 정면에서 바라볼 때와는 두 건물의 느낌이 전혀 달랐다. 우윳빛 대리석의 절제된 조형미를 드러낸 모던한 신관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구관 건축디자인과 동떨어진 두 개의 개별적인 건물이 서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뒤편에서의 느낌은 증축된 미술관의 녹색 정원으로 인해 두 건축이 한결 어우러져 보였다. 증축된 공간이 연결 고리 역할을 충분히 다하였다. 197개의 원형 창들로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증축 공간은 지면 위에 올라선 어떤 건축보다도 시적이었다. 디자인 효과와 내부의 원형 창 기능을 동시에 살린 ‘실용주의’ 건축 철학을 유감없이 드러내주었다. 뒤뜰은 산책 공간의 기능을 겸하는 힐링의 공간이었다. 신관의 조형미와 구관의 단조로움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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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전시 공간에서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사진 고영애)


내부 전시 공간의 천창에 설치된 둥근 LED 램프는 태양열 컨트롤 시스템을 두어 열이 새는 것을 막아준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LED 램프는 각각 개별 조절이 가능해 작품에 따라서 필요한 만큼만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완벽한 기 능을 갖고 있다. 곳곳에서 독일 출신 건축가답게 합리적이면서도 꼼꼼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지하 전시 공간은 새하얀 칠로 인해 지하라는 어두운 통념을 보완해주었고, 계단과 천장도 온통 하얀색으로 덮어 넓은 공간을 창출했다. 900평에 이르는 넓은 지하 공간의 버팀목 역할을 오로지 12개의 가는 기둥으로 감당하였다 하니, 첨단 공법에 놀라울 뿐이다. 첨단 공법으로 인해 실내 공간은 넓어 보였고, 197개의 원형 램프 사이로 들어온 빛만으로도 실내는 충분히 밝았다. 또한 전시 성격에 따라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모듈러 월 시스템(Modular Wall System)을 두어 어떤 전시 기획도 가능하다. 최근에 지어진 대부분의 미술관은 이처럼 불확정적인 공간에 가변형 칸막이를 자유자재로 사용해 편리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경제적인 효과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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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델 미술관의 내부 공간 (사진 고영애)


슈테델 미술관의 소장품은 2900점의 회화를 비롯해 600점의 조각, 500점의 사진, 드로잉과 판화 10만 점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량으로 가히 유럽 최고 미술관 중 하나로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14세기 초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거쳐 컨템퍼러리 작품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소장품은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수작의 컬렉션을 자랑한다. 독일 회화의 거장 루카스 크라나흐를 비롯해 보티첼리, 렘브란트, 모네, 피카소 그리고 프랜시스 베이컨과 막스 베크만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독일 현대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블루칩 작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 안드레아 구르스키 등 대가의 작품들도 소장되어 있었다.


많은 작품들을 감상하며 유독 눈길을 끈 작품은 <캄파냐에서의 괴테(in the Campagna)>이었다. 신고전주의 대가인 요한 티슈바인(Johann Tischbein)의 작품인데, 그 앞에서는 한동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이 작품은 1788년 이탈리아 여행 중인 괴테의 모습을 담은 유화다. 독일 문학의 최고봉을 상징하는 괴테는 당시 베스 트셀러가 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하우스에서 원고의 초고를 집필하여 유럽 전역을 들썩였다. 학창 시절 베르테르와 롯데의 낭만적인 사랑에 푹 빠졌던 추억이 되살아나 잠시 괴테를 오마주하였다. 폐허가 된 고대 유적에 앉아 먼 곳을 응시하는 괴테의 우아한 자태는 흡사 소설 속 주인공 베르테르를 보는 착각마저 일으켰다. 괴테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명문 가문 출신으로 패션에도 뛰어난 감각을 지녔고, 그가 입었던 노란색 바지와 푸른 연미복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베르테르 패션을 유행시키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읽은 감수성이 예민했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사랑을 죽음으로 승화시킨 자살이 유행처럼 번져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그 당시 모방 자살이 늘어나기도 하였다.


고 영 애


오랫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촬영하고 글을 써온 고영애 작가는 서울여대 국문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졸업했다. 한국미술관, 토탈미술관 등에서 초대 전시회를 열었고 호주 아트페어, 홍콩 아트페어, 한국화랑 아트페어 등에 초대받아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미술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글과 사진을 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잡지에 건축 여행기를 썼다.


이 연재물은 그의 책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 중에서 <데일리아트> 창간을 기념하여 특별히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을 골라서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그가 15년 넘도록 전 세계 각지에 있는 현대미술관들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기록한 ‘현대미술관 건축 여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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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애 글/사진,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 헤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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