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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화가 열전①] 빛과 색채의 화가 클로드 모네 2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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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요트 경기', 1872년 경. / 출처 : 위키피디아


프랑스로 돌아온 모네, 아르장퇴유에 정착하다.


전쟁 이후 프랑스로 돌아온 모네는 1871년 아르장퇴유에 정착한다. 아르장퇴유는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15㎞ 떨어진 작은 도시로 센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1851년 철도의 개통과 산업 발전에 따라 아르장퇴유는 당시 사람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명소로 널리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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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 '선상작업실의 클로드 모네', 1874년. / 출처 : 위키피디아


많은 인상주의 예술가들도 이곳을 찾아 요트 경주와 보트 타는 사람들을 비롯한 야외 풍경을 그렸다. 물을 좋아하는 모네에게 아르장퇴유는 더 없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는 이곳에 7년간 머물면서 약 17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특히 그는 배 위에 선상 작업실을 만들어 가까이에서 물을 바라보며 물의 움직임과 빛의 반사 등을 자세히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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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 1873년. / 출처 : 위키피디아


제1회 인상주의 전시와 수집가 에르네스 오슈데와의 만남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가 열리고, 이 전시에 모네와 부댕, 세잔, 드가, 르누아르, 시슬레, 피사로 등이 참여했다. 모네는 <인상 해돋이>와 <카퓌신 거리> 그리고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 등을 출품하였다. 이때 백화점을 운영하던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에르네스 오슈데(Ernest Hoschedé, 1837-1891)가 <인상 해돋이>를 800프랑에 구매하였다. 에르네스 오슈데는 화상 뒤랑 뤼엘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모네를 지원할 수 없게 되자 그에게 작품을 의뢰하며 지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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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모네, '생 라자르역, 도착한 기차', 1877년. / 출처 : 위키피디아


생 라자르 역, 연작의 시작


한편 모네는 다수의 연작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빛과 색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같은 장소에서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빛과 색채의 움직임을 오랜 시간 관찰하여 화폭에 담아내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네의 연작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 바로 <생 라자르 역>이다. 이 작품은 그가 영국 런던에서 보았던 윌리엄 터너의 작품 <비, 증기 그리고 속도: 대 서부 철도>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 모네는 기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역장에게 부탁하여 기차역을 폐쇄하고 그림을 그렸을 만큼 기차는 그에게 흥미로운 모티프였다. 1877년에 열린 제 3회 인상주의 전시에 출품되기도 한 <생 라자르 역> 연작은 훗날 근대화의 상징이자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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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카미유', 1876년. / 출처 : 위키피디아


인상주의와 일본 목판화


19세기 중반 일본은 문호를 개방하고 서구의 국가와 교류하였다. 이 과정에서 1862년의 런던 박람회와 1867년 파리박람회 등을 통해 일본의 예술품들이 서구에 소개되었고, 많은 서양 사람들이 일본문화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 당시 인상주의 예술가들도 일본문화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 특히 우키요에라고 불리는 일본의 목판화에서 엿보이는 대담한 색채와 비대칭적인 구도는 인상주의 예술가들에게 흥미로운 요소가 되었으며, 우키요에에서 영감을 받아 드가를 비롯한 인상주의 예술가들도 파격적인 구도를 지닌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모네 역시 일본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그는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카미유를 모델로 하여 그림을 그렸으며, 생의 말년을 보낸 지베르니에 일본식 정원을 꾸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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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 '베퇴유 교회', 1878년. / 출처 : 위키피디아


베퇴유에서의 시련과 카미유의 죽음


모네가 아르장퇴유에서 머무른 마지막 몇 년 동안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먹을 것을 살 돈이 없을 만큼 생계의 어려움을 겪었던 모네는 아내 카미유가 둘째 아들 미셸(Michel Monet, 1878-1966)을 출산한 1878년 아르장퇴유를 떠나 베퇴유의 작은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모네가 베퇴유로 이사를 할 당시, 그의 후원자였던 에르네스 오슈데 역시 파산하게 된다. 파산한 이후 오슈데가 벨기에로 도망을 가자, 갈 곳이 없어진 그의 아내 알리스 오슈데(Alice Hoschedé, 1844-1911)와 아이들은 모네와 카미유의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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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카미유의 임종', 1879년. / 출처 : 위키피디아


이 시기 설상가상으로 카미유의 건강이 악화 되었다. 둘째 아들 미셸을 임신했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져 갔다. 이때, 함께 살던 알리스가 카미유를 간호하며 돌보았지만, 그녀의 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끝내 회복하지 못한 카미유는 1879년 자궁암으로 생을 마감한다. 모네는 슬픔을 누르며 붓을 들고 카미유의 마지막 모습을 작품으로 남겼다. 작품 속의 어두운 색채와 거칠고 빠른 붓질에서 당시 모네의 슬픈 심정을 엿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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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디에프 근처의 절벽', 1882년. /출처 : 위키피디아


또 한 번의 이사와 여행


카미유의 죽음 이후인 1881년 모네는 파리에서 20㎞ 떨어진 소도시인 푸아시로 이사를 하게 된다. 때마침 경제 사정이 나아진 화상 뒤랑 뤼엘이 그가 이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네는 자신의 새로운 거처를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당시 모네는 노르망디 지역의 항구 마을인 디에프를 비롯하여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다양한 풍경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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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베르니 정원의 모습. / 사진 제공 : 한정혜 작가


생의 마지막 집, 지베르니


여행 이후에도 여전히 푸아시에 만족하지 못했던 모네는 결국 1883년 지베르니로 거처를 옮긴다. “저에게 지베르니는 너무나도 멋진 곳입니다.”라는 모네의 말처럼 지베르니는 모네에게 예술적 영감의 장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수련> 연작을 비롯한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특히 이 시기에 모네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지베르니 안에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한편,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온 알리스 오슈데의 남편 에르네스 오슈데가 사망하자, 1892년 둘은 재혼을 하고 정식 부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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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루앙 대성당', 1892-1894년. / 출처 : 위키피디아


명작의 탄생


1890년대는 모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루앙 대성당>, <포플러 나무>, <수련> 등의 작품이 그려진 시기다. 그중에서도 30여 점의 <루앙 대성당> 연작은 같은 모습의 성당을 빛의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색으로 표현하여, 같으면서도 다른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그만큼 빛의 변화에 따른 풍경의 변화를 자세하게 담고 있는 이 작품은 빛과 색채의 변화를 탐구하기 위해 모네가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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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1917-1920년. / 사진 : 박정현 이 작품은 지난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다.


백내장이 찾아왔지만, 붓질은 계속된다.


<수련>은 모네의 작품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대표작 중 하나다. 그는 1890년대부터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30년에 걸쳐 총 250여 점의 <수련> 연작을 그렸다. 모네가 이 작품을 작업할 당시인 1912년 그에게 백내장이 찾아왔다, 병으로 인해 눈이 흐려졌지만 그래도 그는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백내장으로 인한 증상 때문에 잘 볼 수 없었던 탓에 그가 말년에 그린 <수련>의 모습은 형태가 뭉개진 것처럼 표현되어 있어 마치 추상화처럼 보인다. 이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붓질을 멈추지 않았던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86년이라는 긴 삶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모네의 마지막을 간직하고 있는 지베르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소로 불리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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