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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시대 읽기⑤] 1956년 작, 한형모 감독

by 데일리아트

영화로 시대읽기 - 1956년 작,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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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포스터


오늘 소개할 영화는 1956년 개봉한 한형모(1917~1999) 감독의 「자유부인」이다. 영화의 원작은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6일까지 총 21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한 소설가 정비석(1911~1991)의 동명 소설 「자유부인」이다. 소설은 사회에 충격과 논쟁을 불러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는 서울 개봉관객수 10만 8,000명을 동원해서 그해 흥행1위를 기록했다. 이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당시 금기시 되던 유부녀의 일탈, 특히 사회에서 최고의 도덕성을 유지해야 할 대학교수와 그 부인의 탈선을 그렸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욕망을 과감하게 그린 것은 그럭저럭 넘어가더라도 왜 그 대상이 대학 교수의 부인이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일탈의 끝은 가정으로의 회귀였다. 이는 당시 보수적 사회규범을 반영한 결말로 보여 지지만 영화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성, 이를 통한 주체성이 중심적 스토리로 표현된다. 그러나 사회는 아직 여성의 자유와 욕망을 받아들인 수 없었다. 검열기관에서는 키스신을 문제 삼아 필름 30미터에 달하는 일부 장면을 삭제했고, 상영을 금지시키기 했다. 원작자 정비석은 반공법 위반혐의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2007년 자유부인은 등록문화유산 제 347호로 지정되며 가치가 재조명 되었다. 한국영화 100선에 오른 작품이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점은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스크린과 비디오방을 점령한 부인 시리즈의 원조 격이라는 것이다. 애마부인 젖소부인 등 수많은 부인시리즈들이 등장하더니 나중에는 김밥부인 만두부인 등 셀 수 조차 없는 시리즈들이 비디오방을 가득 메웠다. 내용보다도 제목이 더 선정적인 이 영화가 개봉한 1956년이면 6.25전쟁이 끝난 지 불과 3년이 지났을 뿐이다. 부인이 자유롭다는 이야기는 결국 가정에서의 자유, 남편과의 관계에서의 자유가 아닌가. 이 시대에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영화 내용을 살펴보면 그리 파격적이지도 않고 외설적이지도 않다. 그냥 가정에서 한 남자에게 종사하는 조선시대의 유교적 관념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 외간 남자와 춤바람 난 정도의 자유이다.


1960년대 후반까지 우리의 생각을 덮치고 있던 전쟁의 공포와 상흔이 이 영화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시종 유쾌하게 흘러간다. 서울을 비추는 앵글은 이곳이 언제 전쟁의 참혹한 상처가 있었느냐는 듯이 활기차게 서울의 이곳저곳을 훑는다. 영화의 주요 대사에는 불과 3년 전에 끝난 전쟁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서울의 모든 건물은 온전히 복구되었고 사람들의 모습도 활기차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서울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욕망으로 바뀌어 표출되는 정말 자유로운 공간인가.


<영화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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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영과 남편 대학교수 장태윤


평범한 주부 오선영(김정림 분)의 남편은 대학교수 장태윤(박암 분)이다. 아들 하나를 둔 평범한 가정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교수는 사회의 지도급 인사인데 아내가 갑자기 무료한 시간이 지겹다며 양품점에 나가 일하겠다고 선언하고 남편은 이를 마지못해 승낙한다, 선영은 여학교 동창 최윤주(노경희 분)를 만나 명사부인들 사교모임인 '화교회'에 드나들기 시작한다. 이런 모임이 어색한데 2차로 열리는 댄스파티에 선영은 춤을 출줄 모른다고 거절하고 빠져 나오지만 무언가 호기심이 댕긴다. 선영은 한태석 사장(김동현 분)의 양품점에 입사하고, 우연히 남편의 대학교 제자이며 옆집 청년인 신춘호(이민 분)를 만나 마음이 끌린다. 그는 음악에도 조회가 깊고 춤도 잘 춘다. 거기다 젊고 잘생기니 슬슬 호기심이 동한다. 선영의 남편 장교수는 타이피스트 박은미(양미희 분)를 만나 사원 강의를 부탁을 받는다. 때는 컴퓨터가 없어 모든 것을 타이핑에 의존하던 시대이다. 장교수가 사원들의 한글 교습을 기꺼이 승낙한 이유는 박은미의 외모와 젊음에 마음이 동하기 때문이다. 선영은 양품점에서 의외로 활약이 대단하다. 무역상인 백광진 사장(주선태 분)을 단골로 만들어 고가의 물건을 판다. 백사장의 정체가 모호하다. 돈을 받고 물건을 떼어주는 무역업을 한다고 하지만, 그는 돈을 항상 선불로 받지만 물건을 제 때에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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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영과 춘호


선영의 학교 동창 윤주는 춤은 잘 추지만 의외로 순진하다. 백사장이 큰 돈을 만지게 해 준다는 말에 속아 사기를 당한다. 선영보다도 자신이 매사에 한 발 앞서 간다고 생각하는 윤주는 선영에게 춤을 못 춘다고 놀리고, 이에 자극을 받은 선영은 춤을 배우러 옆집 청년이자 남편의 제자인 춘호를 찾아 춤을 배운다.


장교수는 밖으로 돌아 집안일과 하나뿐인 아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부인이 마땅치 않다. 양품점 한사장은 선영에게 흑심을 품는다. 선영은 춘호와 댄스홀에 출입하며 점점 춤바람에 빠져든다. 그녀의 변화가 눈에 띄게 달라 진다. 옷차림의 변해 한복 대신 양장을 입는다. 선영은 한사장에게 화교회 댄스파티에서 자신의 파트너가 되어 줄 것을 부탁한다. 선영에게 마음을 빼앗긴 한사장에게는 부인(고향미 분)이 있는데, 그 부인은 장교수에게 익명으로 편지를 보내 선영의 타락하는 과정을 수시로 알려준다. 엉터리 무역업자 백사장은 사기죄로 경찰에 붙잡히고, 윤주는 백사장과의 사기로 괴로워하다가 댄스파티에서 약을 먹고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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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수와 타이피스트 박은미


댄스파티에 가지 않고 호텔로 발걸음을 한 선영과 한사장은 호텔에서 아슬아슬한 놀이에 빠져가지만 한사장의 부인에게 모든 것이 발각된다. 낭패한 선영은 옆집 청년 춘호에게도 망신을 당한다. 갈 곳이 없고 외톨이가 된 선영은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가정으로 복귀한다.

(영화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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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한형모


영화 감독 한형모는 만주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영화 「집 없는 천사」의 미술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하고 자유부인으로 대표적인 흥행감독이 되었다. 당시 주류 영화는 춘향전과 같은 시대극인데 현대적 장르로 영화를 만들어 제작비(2,300환)의 3배가 넘는 수익(7,000환)을 올려 현대극의 상업적 가능성을 열었다.


교수 남편 역할로는 박암, 사기꾼 사장 역으로는 주선태, 대학생 역으로는 이민이 출현한다. 문제는 여주인공인 오영란의 역할에 맞는 배우를 찾을 수 없는데 있었다. 마침내 신신 백화점 내의 바에서 일하는 여성 댄서를 김정림을 등장시켜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댄서였다고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교수와 아슬아슬한 사랑 게임으로 등장하는 배우 양미희는 영화 촬영 후 몇 편의 작품에 출연하다가 나중에는 종적을 감추었다. 강원도의 외진 곳에서 생선 장사를 하기도 했다.


한편 영화 에서는 가수 전영록의 어머니이자 배우 황해의 아내인 가수 백설희가 등장하여 '아벡크 토요일'을 부르고, 댄스홀 장면에서는 당시 최고의 댄서 나복희가 출연하기도 한다. 영화는 각종 유행어도 양산했는데 극중 사기꾼인 백광진이 '최고급'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영화의 제작자 중 한 명이 청계천에서 기계를 만들던 사람이라 한형모 감독이 직접 그린 모형을 바탕으로 이동차와 크레인을 만들어 촬영에 활용했다. 1969년 강대진 감독이 자유부인을 리메이크해 발표했고,박호태, 박재호 감독 등이 다른 버전의 자유부인을 만들었다.


https://youtu.be/FkAbVQhfpmw

출처: 유튜브 한국고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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