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어느덧 3월에 이르렀다. 1월이 한 해의 첫 시작이라면 3월은 움직임의 첫 시작이다. 학업과 직장생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본격적인 움직임을 3월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3월에 모든 일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일까? 바로 3월이 사계절의 첫 단계인 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만물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하는 3월, 꽁꽁 얼어붙은 겨울의 기세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3월이다.
3월을 상징하는 아이콘은 바로 ‘태양(太陽, Sun)’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태양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태양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새로움이라는 산뜻하고 설레는 마음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것은 ‘삼족오(三足烏)’이다. 세 발 달린 까마귀를 뜻하는 삼족오는 삼국시대 고분벽화부터 궁중, 불교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 속에 등장한다.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 · 옥토끼와 함께 짝으로 등장하는 삼족오는 불교문화 속 ‘약사여래(藥師如來)’ 부처님과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부처님의 협시인 ‘일광보살(日光菩薩)’ · ‘월광보살(月光菩薩)’과 함께 표현되어 보살을 상징하는 ‘화신(化身)’이라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신령스러운 태양조의 탄생
중국 한(漢)나라 때 편찬된 『춘추(春秋)』 「원명포(元命苞)」에는 “해에는 삼족오가 있고 달에는 두꺼비가 있다.”라는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삼족오는 동양에서 매우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성스러운 새이다. 까마귀를 모티프로 탄생한 삼족오는 검은빛을 지니고 있어 ‘현조(玄鳥)’, 혹은 태양을 의미하는 ‘태양조(太陽鳥)’라고도 불린다. 삼족오가 태양을 상징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는데 아득히 먼 옛날 동아시아에서 신성시되던 새와 태양의 숭배 사상이 합쳐진 결과라는 주장이 가장 대표적이다.
각저총 천장 벽화의 삼족오와 두꺼비(고구려 4-5세기)
사람들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가 천상계를 드나든다고 생각하였고, 천상계에 사는 신의 뜻을 전달하는 메신저로 인식했다. 가슴 깊이 품고 있던 ‘천상계(天上界)’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새를 신격화한 ‘토테미즘(Totemism)’의 관념까지 발전시킨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신성시된 태양과 가장 가까운 존재 또한 새이니 삼족오가 태양을 상징하게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천성 출토 화상석에 표현된 신목과 현조(중국 후한대)
이에 여러 기록에는 까마귀, 혹은 삼족오가 태양이나 제왕과 관련된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다. 『초사(楚辭)』와 『열자(列子)』에 등장하는 ‘천제(天帝)’의 아들인 열 개의 태양은 바로 열 마리의 삼족오였으며,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東明聖王)’의 아버지이자 태양신이었던 ‘해모수(解慕漱)’가 쓴 관은 새 깃털로 장식된 관모, 즉 까마귀 깃털로 만든 ‘오우관(烏羽冠)’이었다.
기마인물벽화편에 표현된 오우관(고구려 5-6세기)
지혜의 상징
서양문화 속 까마귀는 어둠을 상징하기에 마녀와 악마의 상징 등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동양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동양에서 까마귀는 지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까마귀는 조류 가운데 가장 지능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현대과학의 결과로도 증명되었으며, 신문 기사와 뉴스, 유튜브 등 대중매체에는 똑똑한 까마귀에 관한 소식을 줄곧 찾아볼 수 있다.
돈황석굴에 표현된 사슴왕 본생 벽화(중국 위진남북조)
이에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까마귀가 똑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의 전생 일화가 수록된 『본생담(本生談, Jataka)』에는 사슴왕 시절의 석가모니 부처님 스토리를 찾아볼 수 있는데 사슴왕에게 조언하거나, 위험한 일을 예견하는 역할을 까마귀가 맡고 있다. 모든 숲의 우두머리였던 사슴왕은 우연히 급류에 휩쓸린 사냥꾼을 발견한다. 이에 사슴왕이 사냥꾼을 구하려고 강가에 뛰어들려고 하자, 까마귀가 날아오더니 “저 인간은 분명 폐하를 배신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사슴왕은 까마귀의 말을 듣고 고민했지만, 불쌍한 마음이 들어 결국 사냥꾼을 구하게 된다. 이후, 사냥꾼은 까마귀의 예언대로 사슴왕을 배신하였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혜로운 까마귀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때는 신라 소지왕(炤知王) 시절, 소지왕이 ‘천천정(天泉亭)’이라는 곳으로 행차하고 있었는데 그 앞에 쥐와 까마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쥐가 소지왕에게 말하길, “지금부터 까마귀를 따라가시오.”라고 했다. 우역곡절 끝에 소지왕은 어느 한 연못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거문고 갑을 쏘라.”라는 글귀가 적힌 쪽지를 주었고, 이에 거문고 갑을 화살로 쏘니 왕비와 은밀한 관계를 일삼은 승려가 있었다고 한다.
사금갑조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경주 서출지
현재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확인되는 이 이야기는 일명 <사금갑(射琴匣)>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2009년 배우 강동원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전우치>의 모티프가 되었다. 더불어 위 기록은 신라 불교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례인 동시에 까마귀가 권력자의 조력자 역할을 할 정도로 영특하고 지혜로운 동물이라는 부분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칼럼니스트 김용덕>
문화유산 연구자이자 전시기획자. 경주대학교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울산대곡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연구원과 통도사성보박물관, 옥천사성보박물관 학예연구사, 안면도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재직했으며, 2021년 제2회 한국민화학회 학술논문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강사와 독립 큐레이터, 오컬트·추리·스릴러 전문 창작 레이블 괴이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미술 속 동물 이야기 ①] 새로운 아침을 열다- 세 발 까마귀 삼족오(三足烏)-1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