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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진실은 사라진다

by 데일리아트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 제주4·3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작품과 기록.. 예술과 기록이 만나는 지점에서 질문을 던지다


기억은 멈추지 않는다. 어제의 사건은 오늘의 인식 속에서 다시 쓰이고, 누군가는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를 발굴하며 과거를 새롭게 조명한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어버리는가? 그리고 그 기록들은 우리의 현재를 어떻게 형성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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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재단_1960년 5월 결성된 4·3사건진상규명동지회 제주대학 학생 7인(고순화고시홍, 채만화, 양기혁, 박경구, 이문교, 황대정)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은 오는 7월 27일까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주제기획전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를 개최한다. 전시 제목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35-475)의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경구에 착안한 것으로 기록이 현재진행형의 과정임을 강조하는 의미이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의 기관 의제인 ‘행동’과 연계하여 아카이브 기반의 미술과 민간 아카이빙 활동을 연결하며, 기록의 사회적 가치와 실천적 기제를 조망한다. 특히 아카이브가 단순한 과거의 보존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과정임을 강조하며, 동시대 미술에서 기록이 어떻게 새롭게 해석되고 조직되는지를 탐색한다.


전시는 ‘지연하는 기억(Deferred Memory)’, ‘목격하는 기록(Witnessed Record)’, ‘던져지는 서사(Projected Narrative)’라는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참여 작가는 권은비, 김아영, 나현, 문상훈, 윤지원, 이무기 프로젝트, 임흥순, 타카하시 켄타로 총 7인/1팀이며, 제주4·3평화재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등 협업 기관의 자료와 함께 전시가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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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_딜리버리 댄서의 구_2022,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2000년 전후 한국의 기록 분야와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는 아카이브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기조가 형성되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희생과 인권 침해에 대한 진상 규명 운동과 함께, 공적 기록에서 포착되지 못한 사적 기록의 가치가 재평가되었다. 또한, 기존의 아카이브를 비판하고 대안적 실천을 시도하는 흐름이 등장했다. 동시대 미술은 이러한 아카이브에 대한 비평적 이론을 수용하며, 기록을 새롭게 생성하고 재조직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공론장을 형성해왔다.


특히, 디지털 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의 확산으로 정보 생산이 즉각화된 오늘날, 기록과 기억의 관계는 더욱 복합적인 문제를 던진다. 정보의 유통이 활발해지면서도 동시에 삭제와 왜곡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최근의 국내외 갈등, 참사, 사회적 문제들은 ‘현재를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과제를 제기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기록의 행동주의를 다각도로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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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녑사업회_옥중편지,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첫 번째 파트 ‘지연하는 기억’에서는 기록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경험과 인식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프로이트의 ‘지연된 사후작용’ 개념과 연결되는 이 파트는,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경험에 따라 변화하고 확장됨을 시사한다.


두 번째 ‘목격하는 기록’에서는 억압된 사건과 대상이 기록을 통해 현재화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기존 역사 서술이나 진상 규명을 넘어, 기록을 공유하는 공동체적 경험이 정서적 연대와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낸다. 이 파트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오랜 기간 침묵을 강요받았던 제주4·3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룬다. 제주4·3평화재단과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기록을 통해 제주4·3 진상규명의 흐름과 재일 제주인의 삶을 조명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최초의 증언자를 추적한 사진 작업을 통해 다시금 우리의 시선 속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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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재단_1988-1989년 제주신문 「4·3의 증언」 취재수첩_001,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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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하시 켄타로_곁에 머문 부재,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마지막 ‘던져지는 서사’에서는 아카이브가 단순한 과거의 표상이 아니라 권력 구조와 선별 과정을 내포하는 제도적 장치임을 비판적으로 조망한다. 이 파트는 국가와 민족 개념, 플랫폼 노동, 재난과 참사라는 이질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기존 기록이 포착하지 못한 영역을 파고든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는 기록이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강조한다. 기록은 단순한 과거의 보존이 아니라 현재의 인식과 감각에 따라 새롭게 의미를 갖는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시각에서 사건과 대상에 대한 섬세한 접근과 입체적인 관계를 통해, 아카이브를 정적인 보관소가 아닌 사회적 기억을 갱신하는 실천적 공간으로 조명한다. 전시는 7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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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_무제 현대 사진_2022,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기록되지 않은 진실은 사라진다, 지워진 역사와 억압된 기억을 복원하는 전시 < 전시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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