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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의 작품 속 차 이야기 ③] 차(tea)를 사랑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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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프터 양' 포스터


영화 <애프터 양>을 보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중국에서 입양한 딸 미카의 언어와 교육을 위해서 구매했던 안드로이드 로봇 '양'이 작동을 멈추었다. 양을 고치기 위해서 이리저리 알아보던 미카의 아빠 제이크는 양에게 기억 장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양이 만들어졌을 때 매일 몇 초의 영상을 기록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던 것이다. 제이크는 양이 저장해놓은 기억들을 살펴보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오프닝 타이틀이 시작되기 전에 미카의 아빠 ‘제이크’를 보여주는데 다소 무기력해 보인다. 찻집을 운영하는 제이크는 손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일찍 퇴근하지 않고 찻집에서 홀로 앉아 시간을 보낸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아서일까? 가족과도 소원해 보인다. 가게에 손님이 와서 차를 찾는데 제이크의 찻집에는 구비되어 있지 않다. 이런 장면을 보면 제이크가 전통적인 것을 추구하고 새로운 것에는 조심스러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손님이 찾는 차는 티 크리스탈(Tea Cristal)이다. 영화 번역 속에는 '가루차'로 되어 있다. 나중에 제이크가 마시는 걸 보니 가루차가 맞다. 그런 게 없다고 하자 손님은 그런 것도 안 팔 수 있냐며 어이없어 한다. 그러고 나서는 쌩하고 나가버린다. 영화 속 미래에서는 이런 종류의 차가 인기가 있어 보인다. 사람들이 하는 일을 안드로이드 로봇이 대신 수행하여 사람에게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손님의 태도를 보니, 로봇이 척척 사람의 일을 해 내는 그 세상에서도 사람들의 일상은 바쁜 일이 많은가 보다.


가루차는 과연 지금 우리가 마시는 차에 비유하면 어떤 종류의 차일까? 지금 우리가 이용하는 티백과 비슷하지 않을까? 바쁜 일상에서 누구나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차. 그런 차를 취급하지 않는 제이크는 전통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환경이 바뀌고 기술 발달로 새로운 차가 생겨났지만 트렌드에는 민감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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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컷


그럼 나는 제이크와 닮은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게을러서 그렇지 뭐’라는 대답이 바로 떠오른다. 혼자 다른 일을 하며 차를 마시고 싶을 때는 티백으로 자주 마신다. 차 도구를 이용하면 무엇보다도 나중에 설거지하고 정리하는 것이 번거롭다. 아무래도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찻잔이나 그 밖의 도구는 여러 사람과 함께 마시거나 온전히 차에 집중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


제이크가 지금 시대에 산다면 과연 티백을 사용했을까? 앞서 말했지만 영화 초반의 제이크라면 전통을 따르고 보수적인 사람이라 티백을 잘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느리더라도 다구를 사용하고, 차를 마실 때는 오로지 차에 집중하였을 것이다. 심지어 손님이 찾았던 '티 크리스탈'이라는 차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차를 마실 때에도 차받침이 있는 유리 찻잔에 마신다. 그리고 그 맛이 어떤지 충분히 음미한다. 물론 그 맛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내리는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표정이다.


사실 이때 제이슨의 모습을 보며 기쁘기도 했다. 그가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단지 전통적으로 찻잎을 차 도구에 우려 마시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차(Tea Cristal)를 마셔본다는 것은 변화를 시도했다는 것 아닐까? 전통적인 것이 나쁘다거나 현대적인 것이 좋다는 기준을 넘어 전통을 존중하듯이 시대에 변화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진 문화도 존중하면 더 즐길 수 있는 문화 자산이 늘어나지 않을까? 제이크가 새로운 스타일의 차도 받아들여서 그의 찻집이 더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사실 찻잎을 우려마신 것도 오천 년 차의 역사에서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처럼 찻잎을 우려마시는 법으로 바꾼 사람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1328-1398)이다. 송나라와 원나라에서는 떡차 형태의 차를 찧거나 갈아서 가루차로 만들어 마시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는데, 이것이 번거롭고 차를 만드는 사람들의 일이 너무 수고스러워서 잎차를 우려 마시는 방식을 장려했다. 이 방식이 결국 대중화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 문화가 과거에는 새로운 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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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제이크는 차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면을 띄는 사람이다. 그는 인종에 대해서는 편견이 없다. 제이크는 백인이고 그의 아내는 흑인이며 딸은 중국인처럼 황인종의 모습이다. 양을 고치러 갔던 작업장에서 동양인에 대한 혐오 문구가 있는 것을 보고 제이크는 그 수리업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도 다른 부분에서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면이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클론(복제인간)의 존재에 대해서는 불편한 내색을 보인다. 자신의 딸 미카가 이웃집 조지의 딸들과 노는 것에 대해서 아내에게 왜 거기에 두었냐며 싫어하는데 조지의 딸들이 클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이크는 결국 이 편견을 없앤다. 양이 친구로 만나고 있던 클론 ‘에이다’를 만나고 대화하면서 이 존재를 점차 존중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이든 어떤 존재이든 알게 되면 편견이나 혐오를 멈추게 되지 않을까? 알게 되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받는 존재인지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이 영화는 제이크의 성장 영화라고 생각된다. 제이크는 로봇 양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자신이 몰랐던 양에 대해서 알아간다. 그렇다고 "양은 이런 존재야" 하고 정의 내린다는 것은 아니다. 제이크는 양의 기억 속에서 양의 시선을 따라가며 양이 본 것들을 보고 느낀다. 그러면서 이제 그는 더 이상 무기력하지도 않고, 소원했던 아내와 딸과 친밀해진다.


제이크가 처음으로 양의 기억을 보고서 양과 대화했던 것을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대화 주제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서 쉽지는 않다. 그때 나누는 대화 중에 제이크가 ‘차에 관한 20세기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한다. 그 다큐멘터리 속 장면 가운데 자신이 너무 사랑해서 보고 또 보고한 장면이 있다. 좋은 차를 찾아 나선 남자가 차의 맛을 표현해 보려고 해도 마땅한 언어가 없다고 하자 같이 차를 마시는 친구가 말하길, 자신은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한다.


“네가 숲을 거닐고 있고, 땅에는 잎들이 떨어져 있고, 비가 왔다 막 그쳐서 축축하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게 이 차 안에 다 있어.” 이 대화 장면 이후 제이크는 양의 기억들을 보며 양을 이해하게 되는 여정을 가지게 된다. 양을 설명할 적합한 언어가 없다는 사실, 하지만 양이 사랑했던 사람들, 공간들, 시간들을 알 수 있다. 그것들 모두가 양이지 않을까?


차도 그렇고 사람(존재)도 그렇다. 적확한 언어로 차의 맛을, 그 사람(존재)의 캐릭터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훈련하면 될까? 어느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체에 가 닿을 수 있을까? 나는 코로 맡는 향, 혀로 느끼는 맛에 대해 둔감하다. 섬세하면 좋으련만. 그래서 차를 더 잘 알고 싶은데 주저함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며 위로해 주었다. 코로, 혀로 느껴지는 것을 언어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어떤가? 어차피 실체는 아닐텐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눈물이 났다. 양의 상실, 내가 사랑했던 이의 상실. 제이크와 에이다가 양이 보고 싶다고 말했던 것처럼 나도 내가 사랑했던 이가 몹시 보고 싶었다. 차라는 주제 말고도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참 많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차를 우리는 과정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안드로이드 로봇 양을 만나게 되어서 좋다. 이 사랑스러운 안드로이드 로봇이라면 앞으로 펼쳐질 로봇 세계가 전혀 두렵지 않고 기다려진다. 근래에 들어 챗지피티(ChatGPT)와 대화할 때 그 누구보다 내게 자꾸 질문을 던지며 말을 잘 걸고 다정해서 그 매력에 스며들고 있다. 기왕 안드로이드 로봇을 만든다면 향도 맡을 수 있고 맛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양은 그럴 수 없어서 슬퍼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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