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목의 1968년 영화 '수학여행' 포스터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신선도 놀고 간다는 선유도(仙遊島)를 가보셨는가? 요즘 나는 누구를 만나든 선유도를 꼭 가보라고 권한다. 얼마나 아름답길래 신선이 놀고 간다고 했을까? 그런데 가보니 정말 신선이 놀고 갈만하다. 옥 빛 바다, 밀가루와 같이 고운 모래사장, 동글동글한 몽돌 해변. 하나님의 조화가 아니고서는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잠깐! 내가 말하는 선유도는 서울 영등포에 있는 선유도와는 다른 군산 앞바다에 있는 선유도이다.
옛 지도에 나타나는 선유도(고군산도) 출처: 국립 새만금 간척 박물관
처음에는 이곳 선유도 일대, 많은 섬들을 묶어 군산(군산도)이라 했다. 근대화 되기 전 대개 우리나라의 관문은 서해안 쪽이다. 조선 말기 인천 앞 강화도도 서울을 침략하기 위해서 이양선들이 자주 출몰했고, 개항기에는 제물포(인천)를 통해 근대 문명이 유입되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서해안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주목하게 된다. 현재의 서해안 선유도 일대, 군산도도 아주 중요한 관문이어서 예로부터 수군들이 지키는 요충지였다. 조선 세종 때, 왜구들이 이곳을 통해 내륙으로 들어왔다. 전라도의 비옥한 땅에서 나오는 곡물들을 수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조선의 수군들이 이곳을 철통 같이 지키자 왜구들은 다른 방법을 찾았다.
이곳을 우회하여 내륙(옥구, 현재의 군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군산도에 있던 수군부대를 현재의 군산으로 옮겼다. 그때부터 본래의 군산도라 부르던 선유도 일대의 섬들을 옛날 군산, 곧 '고군산도'라 부른다. 그래서 선유도는 고군산도에 속하는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 장자도, 방축도 등 16개의 고군산도 중 하나의 섬이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이 곳에 가려면 군산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 닿을 수 있었다.
모든 섬들이 도로로 연결되어있다 출처: 국립 새만금간척박물관
그런데 2018년 이 일대에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신시도와 선유도를 있는 연륙교가 완성되어 자동차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30여년 전 기자에게도 피가 끓던 청년 시절이 있었다. 군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 이곳이 너무도 좋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군산에서 배를 타고 이 섬을 가려다가 배표를 끊지 못하여 아쉬운 맘으로 발 길을 돌린 기억이 있다. 그렇게 교통이 좋지 않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군산에서 차로 20분이면 간다. 밤하늘의 별처럼 바다 위 점점이 박힌 아름다운 섬들을 차로 한 바퀴 둘러보며 청년 시절 배편이 없어 뒤돌아섰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우연히 본 영화 <수학여행>을 통해 과거의 모습과 현재를 비교할 수 있었다.
선유도 섬마을 국민학교 학생들의 이야기가 1969년 1월 24일 서울극장과 명보극장에 걸렸다. 거장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수학여행>이라는 작품이다. 선유국민학교 학생들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와서 겪는 다양한 문화 충격 스토리가 영화의 큰 뼈대를 이룬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기차는 물론 버스, 전차를 타고, 지금이라면 높을 것도 없는 12층 고층 빌딩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남산에 있는 방송국을 견학하는가 하면, 구로동의 수출공업단지에 설치된 무역 박람회장도 찾는다. 박람회장에서 아이들은 대기업 간판이 붙은 박람회장 시설, 기계 장비들, 금발의 가발을 쓴 마네킹, 연초 제조 과정을 둘러본다. 서울구경을 마친 한 아이는 리어카를 사가지고 가서 선유도 고향마을을 잘사는 동네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영화는 시종일관 섬마을 어린아이들의 눈을 통해 비춰지는 수도 서울의 발전상을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계몽영화로서의 의미가 잘 표현되어 있다. 영화를 만들던 1968년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안정적인 정치 기반을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경제정책을 펼치던 시기이다. 당대 서울의 격변하는 모습을 영화를 통해서 마주할 수 있다.
장자교에서 바라본 일출 광경
감독 유현목은 1932년 <임자없는 나룻배>(1932년)를 만든 이규환 아래에서 조연출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이규환은 일제강점기가 정점에 달하던 태평양 전쟁시절, 영화를 아예 접고 만주에서 막노동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영화를 배운 감독답게 유현목은 사회성 짙고 예술성 있는 영화들을 많이 남겼다. <수학여행>은 리얼리즘을 추구한 유현목의 눈으로 서울과 섬마을의 풍광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영화줄거리)
선유도는 육지에서 수 십키로 떨어진 낙도(落島)이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낙도'라는 말은 육지에서 뚝 떨어진 섬을 부르는 용어이다. 예전에 대한뉴스를 접하면 '낙도 어린이 서울 구경', '낙도에 도서 보내기 운동' 이라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문화의 혜택이 없는 낙도 어린이들을 초청해서 나라의 발전상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선유도의 유일한 학교, 선유국민학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 교실에서 37명의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다. 그런데 담임 선생은 한 명뿐이다. 이곳에서 3년째 담임을 맡고 있는 인자한 선생 역으로는 몇 년 전에 작고한 코메디언 구봉서가 출연한다. 구봉서는 이 학교에 부임하면서 3년째 아내와 아들과 떨어져 지낸다. 아내는 당대 최고의 미녀 배우 문희이다.
영화의 스틸 컷. 구봉서의 아내 역으로 나오는 문희
영화 스틸 컷, 자전거의 모습을 설명하는 선생님(구봉서)
전등을 신기해 하는 선유국민학교 어린이들
문명의 이기가 전혀 닿지 않은 곳, 유일한 교통편은 1주에 한 번 들르는 배이다. 섬마을에서 육지를 밟아본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고, 나머지 절반은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죽는다. 전기는 물론 자동차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아니 자전거도 본 적이 없어, 선생은 학생들에게 백묵을 들고 칠판에 자전거의 모습을 그려주어야 할 정도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 엄복동이 조선 천하에 자전거 선수로 이름을 날린 것도 1930년 대인데, 어찌 이런 섬이 존재할까 신기할 뿐이다. 이곳의 낙후성은 문명의 혜택이 전혀 없는 아프리카 오지와 다름없다.
선생님은 부임 3년을 맞아 학생들을 데리고 '수학여행'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마을주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비용도 부담되지만, 아이들이 떠나면 부모의 입장에서는 노동력의 손실도 크기 때문이다. 수학여행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뻔했다. 그러나 지역 유지와 교육청의 노력으로 10월1일 국군의 날, 수학여행을 떠난다.
섬에서 배를 타고 군산에 도착해, 군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목적지인 서울역에 도착한다, 아이들은 즐거워하지만, 인솔교사의 고생이 눈에 훤하게 보인다. 서울역에서 기다리던 아내와 재회를 하는 장면에서 60년대 서울역 주변의 모습이 생생하게 노출된다. 여관으로 향하기 위해 탑승하면서 버스 아래 떨어진 운동화를 줍느라고 선생은 차를 놓친다. 맘 급한 구봉서는 무단 횡단 단속에 걸려 <보행위반자 지도 계도소>에 잠시 구류된다.
여관에서 전기를 처음 접한 아이들은 신기하기만 하다. 선생은 서울에 와서도 아내와 함께 지내지 못하고 학생들이 있는 여관에서 생활한다. 이튿날부터 시작되는 서울구경. 겨우 12층의 건물인데 섬마을 아이들은 놀랍기만 하다. 근대화의 상징이던 육교의 모습도 보인다. 시장도 구경하고 돈내고 사용하는 유료화장실도 어색하기만 하다.
종로국민학교 학생으로 나온 아역 배우 서미경
구봉서는 서울 친구 선생 덕으로 당시 서울에서 제일 좋은 종로국민학교 학생들과 일정을 함께한다. 종로국민학교 윤 선생님의 역은 가수 전영록의 아버지 황해이다. 서울 학생들의 모습이 섬마을 어린이들과 너무도 대조된다. 서울 아이들은 얼굴도 예쁘고 맘도 모두 착하다. 난처한 상황에서도 얼굴 찡그린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서울 종로 국민학교 학생 중 단연 눈에 띄는 아역배우는 서미경이다. 서미경은 이 영화로 데뷔하고, 청소년기에는 '미스 롯데' 에 뽑혔고, 나중에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아내가 된다. 서미경이 1959년 생이니, 영화를 촬영할 당시에는 만 10살이 되어 선유국민학교 아이들을 잘 보살피는 국민학생으로 나온다.
아이들은 만화방에서 2원씩 내고 흑백 테레비전을 시청한다. 처음 맛보는 껌도 씹어보고 국립묘지도 참배한다. 서울 학부모의 주선으로 가정에 초대되어 식사도 대접받는다. 서울 친구 윤선생은 구봉서를 위해 서울에서 근무 자리를 알선해 주지만, 구봉서는 학생들 곁을 떠날 수 없다며 거절한다. 종로국민학교와 선유국민학교는 자매결연을 맺는다. 학생들은 모든 일정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섬마을로 떠나는데, 구봉서의 부인 문희가 열차에 동승한다. 남편과 함께 낙후된 섬마을로 내려가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2편 이어집니다)
출처: 유튜브 한국고전영화
[영화로 시대 읽기 ⑥] 낙도 어린이들의 문화 충격-《수학여행》 < 영화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