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호수에서 필자
월든 호수에 서다
누군가 부른다 너인가 ?
월든(Walden) 불어오는 모든 바람에 나부껴라!
만일 당신이 작가라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라
진정한 삶이 아닌 것은 다 베어버리고 삶이 아닌 삶을 살지 말라
행복은 나비와 같다 좆을수록 따돌린다
그러나 다른 일에 주의를 돌리면 그것이 와서 부드럽게 어깨에 앉는다
이 헤아릴 수 없는 명문장을 남긴 헨리 데이빗 소로우 (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태어난 소로우는 자발적 은둔과 고독을 원해 150년 전 호수 근처에 손수 오두막을 짓고 기거하며, 거의 2년 반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켜 ‘월든 숲속에서의 삶’을 썼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동상 앞에서
원래는 단절을 위해 들어간 것은 아니고, 아무런 방해없이 자신의 저술 작업에 집중하고 싶어서였다는, 고립에 관련된 일설들이 있지만 이 의도된 단절은 그를 자연 생태주의자, 철학자,사상가, 수필가로 이끌었다.
친히 지냈던 형의 죽음에 상실감을 느끼고 캠핑 여행에서 얻었던 경험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숲속 가장자리에 꼭 한 사람 누울 만큼의 협소한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의 생계를 유지한 그.
살아 생전 "덕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 " 는 중국 도인의 말을 좋아하여 자주 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월든 』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었다.
그는 고립 속에서 자신의 사유를 펼쳤으나 먼 동방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 사고에 공감하고 가르침을 얻었다.
고전을 읽는 것은 천재들과 노는 것이고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철학자와 노는 것이라는 말에 지배되어
나는 소로우와 놀았고 그가 남긴 명언에 빠져 월든 호수에 갔다.
그의 명문장 정신세계에 이끌려 찾은 콩코드의 오두막.
헨리 데이빗 소로우 ( Henry David Thoreau, 1817-1862)
지금 세워진 것은 정확히 얘기하면 그때의 오두막을 재현한 복제품으로 소로우가 떠난 후 집터만 남은 것을 복원시켰고 근처에 동상도 세웠다. 거의 발 디딜 틈 없이 좁은, 자신이 꼭 누울만한 크기의 형태인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던 문명의 소외지대에서 그가 간소한 삶을 실현시킨 것에 경이로울 따름이다.
' 뉴욕에 왔지만 살아있는 인간을 한 명도 못 만났다'고 갈파한 소로우는 월든 호수 주변의 동식물과 자연을 관찰하고 하루 네 시간의 산책 속에서 야생화 수집에 흠뻑 빠졌다. 사람보다 자연이 그를 구원한 듯, 한때는 사냥과 낚시도 좋아했던 모양인데...그 동물들이 죽어갈 때 본 단말마의 고통이 그를 채식주의자로 변모시켰고 이후 그런 취미에서 일절 멀어졌다.
또 흑인 노예제에 반대하여 도망쳐 온 흑인들을 자신의 오두막에 숨겨준 일화도 있는 만큼, 그는 박애주의자 실천주의자 였다. 허나 혼자 지내기도 비좁았을 조그만 터전 어디에 그들을 감출 수 있었을까!
엘렌 시월이라는 여성을 사랑했지만 평생 결혼은 하지 않았고 다만 그의 일기에 사랑에 관한 명문장은 남겨져 있었다
There is no remedy for love but to love more
사랑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은 더욱 더 사랑할 뿐
사랑에 대한 치료법은 없어 더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
얼마나 멋진 메시지인가?
만약 소로우가 지금 살아있다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젊은이들의 비혼 문제에 어떤 견해를 낼지? 하버드에서 수학했으나 문학인으로서 주목받지 못한 채 44세의 나이로 사망.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비로서 조명을 받고 사후 유명해진 소로우.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의 저술 월든은 이제 미국 고등학교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랄프 왈도 에머슨과의 교류는 19세기 미국 문학의 주요 사건인 초월주의 운동을 창시하는 계기가 됐으며, 1840-1844년 기간엔 초월주의 잡지 『 다이얼 』에 〈내 인생은 시였다〉, 〈여름비〉 등 무수한 작품을 게재케한 동인으로 작용하였고, 『월든』과 같은 시기에 쓰여진 <시민불복종운동>은 옳지 못한 정부와 사회에 반대하며 저항하고 맞설 것을 주장했으니, 간디, 마틴 루터 킹이 이 영향 아래 사회개혁에 나섰다.
보통 사람들은 시인의 이미지를 얼핏 부드럽고 유약한 것으로 떠올리나 소로우를 비롯한 실제 시인은 말랑말랑한 사람이 아니라 분노할 줄 아는 자이고 정의를 세우는 자이다.
다시 월든의 성찰과 실천이 이 시대에 살려지기를 불지펴지기를 염원하며, 소로우의 사유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지만 그가 특히 관심을 기울였던 제 피붙이에 대한 대접으로 돌아가보자.
일인칭이으로 불리는 나의 삶에서 혈육은 내 이웃보다 사소하지 않다고 쓴 그였다. 나는 그에 감응을 받아 곧장 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걸음을 떼었다.
상쾌한 햇볕과 가을 바람이 살갗에 달갑던 어느 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던 한 가을이 펼쳐지던 때이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어머니가 계시던 요양원에 하루 외출의 허락을 받아 뉴저지 베어 마운틴 헤시안 레이크로 어머니를 모시고 산책을 나섰다.
Bear Mountain State Park, Hessian Lake
좋다 해도 가을 날씨라 행여 감기에 드실까 담요를 준비하여 둘러드리고 따뜻한 둥굴레차도 큰 용량으로 준비, 이따금 목을 축여 드리며 천천히 호수와 숲길을 걷던 그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호수를 도는 휠췌어, 모처럼 밖에 나온 노모의 얼굴에 연신 웃음이 흘렀다.
월든의 교훈은 어디 있는가?
사랑하는 값과 같이 있다
원대함은 어디 있는가?
우리가 미는 어머니의 휠췌어에 있다
월든의 과제를 마치며 돌아오는 길 내가 애정하는 시인의 시 '호수'가 자꾸 읊조려지던 거,
불고 가는 바람에도
불고 가는 바람처럼 떨던 것이
이렇게 잠잠해질 수 있는 신비는 어디서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