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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등처럼 나타나는 고전 ⑥] 춘원보다 한 걸음

by 데일리아트

춘원의 『무정』은 우리 근현대사에 세워진 하나의 이정표다. 춘원 이광수(1892~1950). 한때 독립운동에도 가담했지만, 1922년 『민족개조론』을 발표하면서부터 친일로 넘어갔고, 1937년 옥에서 병 보석으로 풀려난 이후 본격적인 친일 행보를 이어갔던 작가. 『무정』은 그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했던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이다. 나라를 진보시키겠다는 선구자적 감각이 살아 있을 때, 그러니까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친일로 경도되기 전인 20대의 춘원이 썼던 작품. 이런 역사적 좌표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소설 그 자체로도 매혹적이다.


소설 속 이야기에는 풋풋한 느낌이 가득하다. 작가가 26살에 쓴 작품이니까. 연재되었을 당시의 인기는 물론이고, 숱한 화제와 논란을 불러왔으리라 짐작하게 하는 문체도 도발적이다. 시대보다 반 걸음쯤 앞선 감각이라야 주목을 받으리라. 사랑의 작대기가 엇갈려 버린 청춘들의 운명이 작품의 뼈대. 그 뼈대 위로 근대 조선의 현실과 조선인들의 고뇌, 그리고 희망이 덧입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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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식이 김 장로의 딸 선형의 영어 과외선생을 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그 집에서 지내던 순애도 같이 공부를 시작한다. 그런데 그런 이형식이 기거하는 집에 기생이 된 영채가 찾아온다. 박 진사로 알려져 있던 박응진의 딸. 박 진사는 학교를 세우고, 젊은이들 교육에 재산을 쏟아부었다. 장학생을 선발해서 돈을 대줬다. 형식도 그렇게 돈을 받아 공부했던 장학생이었다.


어릴 때 자기 집에 기거하던 형식을 생각하며 정절을 지켜온 영채는 간신히 그를 찾아오지만, 끝내 아무 말을 못하고 돌아선다. 그리고 자기를 범하려는 사내들에게 낭패를 당하고 그냥 죽으려 한다. 죽으려고 평양 가는 기차를 탔던 영채는 기차 안에서 만난 여자의 손에 이끌려 황주에서 내린다. 형식에게 지키지 못한 의리 때문에 죽으려고 했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새로운 생각을 곱씹으며. 병욱이라는 활발한 여자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셈. 병욱은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서자이고 가난하지만 잘생기고 재주 있고 마음이 크고 고운 남자.


그 시대 젊음은 사랑도 해야 했지만, 식민지 조선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도 쳐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는 것이 기쁨이고 활력이기도 하다. 고뇌하는 자가 웃을 수 있다. 살아 있으니까. 이 고뇌가 해결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 개인적인 차원의 자각, 그리고 전체 사회를 향한 비전. 그 중에서도 개인적인 차원의 각성을 다룬 장면을 좋아한다.


"형식은 이제야 그 속에 있는 ‘사람’이 눈을 떴다. 그 ‘속눈’으로 만물의 ‘속뜻’을 보게 되었다. 형식의 ‘속사람’은 이제야 해방되었다. 마치 솔씨 속에 있는 솔의 움이 오랫동안 솔씨 속에 숨어 있다가……또는 갇혀 있다가 봄철 따뜻한 기운을 받아 굳센 힘으로 그가 갇혀 있던 솔씨 껍데기를 깨트리고 가없이 넓은 세상에 쑥 나솟아 장차 줄기가 되고 가지가 나고 잎과 꽃이 피게 됨과 같이 형식이라는 한 ‘사람’의 씨 되는 ‘속사람’은 이제야 그 껍질을 깨트리고 넓은 세상에 우뚝 솟아 햇빛을 받고 이슬을 받아 한이 없이 생장하게 되었다.


형식의 ‘속사람’은 여문 지 오래였다. 마치 봄철 곡식의 씨가 땅속에서 불을 대로 불었다가 안개비만 조금 와도 하룻밤 새에 쑥 움이 나오는 모양으로 형식의 ‘속사람’도 남보다 풍부한 실사회(實社會)의 경험과 종교와 문학이라는 수분으로 흠뻑 불었다가 선형이라는 처녀와 영채라는 처녀의 봄바람, 봄비에 갑자기 껍질을 깨트리고 뛰어난 것이다." (이광수, 『무정』, 민음사, 2010, 128-129쪽.)


속사람은 여무는 과정을 거쳐오다가 순간적으로 눈을 뜬다. 이 장엄한 과정의 마무리를 '만남'이 담당한다. 여자라는 봄바람, 봄비에 갑자기 '속사람'이 깨어난다. 이 자극에 속사람이 눈을 뜨면서 만물의 속뜻을 깨닫는다. 인간관계는 서로의 존재 자체로 중요할 뿐 아니라, 내 속사람이 깨어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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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의 재판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식민지 백성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찾고자 하는 모색의 고통은 총체적이다. 문화는 철학과 과학과 예술, 종교, 경제와 산업, 사회제도까지 포괄한다. 종교와 사상만이 아니라 경제와 산업, 정치, 사회제도 분야도 익혀야 한다. 전자가 세상의 근간에 해당한다면, 후자는 세상의 뼈대, 그러니까 하드웨어에 해당한다. 육체를 가진 인간의 절실한 문제, 먹고 사는 문제. 그러나 기본적으로 근간, 원천 차원의 문제부터 해결되어야 한다. 후반에 가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커다란 문제 의식이 드러난다.


"나는 선형을 어리고 자각 없는 어린애라 하였다. 그러나 이제 보니 선형이나 자기나 다 같은 어린애다. 조상 적부터 전하여 오는 사상의 계통은 다 잃어버리고 혼돈한 외국 사상 속에서 아직 자기네에게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택할 줄 몰라서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는 오라비와 누이. 생활의 표준도 서지 못하고 민족의 이상도 서지 못한 세상에 인도하는 자도 없이 내던짐이 된 오라비와 누이." ( 『무정』 490쪽)


'사상의 계통'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식민지 조선의 미래를 위해 청년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떤 사상의 가닥을 타고 갈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었다. 여기저기 점을 찍는 정도로는 안 되고, 사상의 노선을 결정해야 한다! 그 모색의 과정은 길고 고통스럽다. 아무도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알아서 찾아야 할 뿐. 서양철학 개론을 한두 권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그들도 계속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 서양이라고 제대로 사상의 가닥을 잡은 것은 아니다. 그쪽이나 이쪽이나 어둠 속에서 앞길을 개척할 일. 형식은 생물학을, 선형은 수학을, 그리고 놀랍게도 병욱과 영채는 예술을 전공한다. 문화는 예술까지 포함하는 까닭.


이 대목을 읽다 보니 문득 공부를 더 해보겠다고 떠났던 미국 유학 시절이 떠올랐다. 석사과정에서 철학사와 아퀴나스 신학을 가르쳐 주신 존 쿠퍼 교수의 '세계관' 수업 첫 시간이었다. 향후 수업 계획을 설명하면서, 쿠퍼 교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여러 세계관이 충돌하지만 자신은 “a well-informed Reformed Christian”이라고. '잘 갖춰진 개혁파 크리스천.' 무심한듯 살짝 힘주어 던지는 그 말이 놀랍고 신선하고 부러웠다.


세계 사상의 주류에 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살아가는 이의 자부심, 춘원의 작품 속에서 형식이 찾고자 했고, 나 자신도 여태 찾아 헤맸던 ‘생각의 줄기’를 이미 오래전부터 만지고 느끼며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이의 단단한 보폭이 느껴졌던 까닭이다. 연이어, 주류일 수 없는 아시아인의 변두리 의식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의식이 마음에 밀려들었다.


그 후로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손으로 어루만지며 따라가야 할 노선이 어느 정도 정해지는 느낌이다. 넘어가야 하는 산맥이 어렴풋한 정도는 넘어서서 조금은 뚜렷하게 보였다. 보였다가 금세 사라지기도 하지만, 사라졌다가 이내 다시 나타난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적어도 고뇌하는 식민지 청년의 때는 넘어서야 하지 않겠는가. 비행기로 치자면, 연료의 상당부분을 쏟아 부어가며 용을 썼다면 이제 이륙해야 하는 때. 그게 우리 시대의 과제일 것이다. 사상의 계통을 확보하는 일은 의외로 어렵고 긴 세월이 필요했다.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하던 세상이 평생 무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게 하고 굳세게 할 것이라."( 『무정』, 536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가멸다'라는 말은 '재산이 많다, 넉넉하다'라는 의미. 세상을 무정하다고 원망하지 말고 내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게 하고 굳세게' 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그 세상을 몰고 오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써야 하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코스모폴리탄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으리라. 다만, '무엇'을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곡을 해석하는 능력이 있는 가수는 발라드든, 댄스든, 트롯이든 잘 부르듯이 말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밝히자면, 영채를 보기 위해 기찻간으로 찾아온 형식에게 당황한 영채 대신에 병욱이 딸기를 건네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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