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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시대 읽기 ⑦] 1956년 식 낭만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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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마의 휴일' 포스터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로마의 휴일>을 예전 '주말의 영화'에서 본 기억이 있다. 로마라는 낯선 곳에서 벌어지는 공주와 신문 기자의 사랑 이야기는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갓 사춘기에 접어든 나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당대 최고의 미녀 오드리 헵번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폭이 넓은 스커트 차림으로 로마 시내를 활보하는 장면. 이런 멋진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그레고리 펙은 모든 남자의 로망이었다. 이 영화는 195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의 후보에 오르고, 무명에서 스타덤에 오른 오드리 헵번은 그 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 후 황량해진 세계인의 마음을 위로해 줬다. 오드리 헵번은 자선 운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세기의 연인으로 불리는 것은 로마의 휴일에서 보여준 그녀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한 몫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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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휴일' 포스터


로마의 휴일이 상영되고 나서 3년 뒤인 1956년, 우리나라에서도 <로마의 휴일>과 이름이 비슷한 <서울의 휴일>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나중에 공포물을 개척한 이용민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아마도 서울이라는 이름이 붙은 첫 영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후에 서울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도 등장했다. 1961년 이형표 감독의 <서울의 지붕 밑>, 김지미가 열연한 <서울로 가는 길>, 1970년 김수용 감독의 <저것이 서울의 하늘이다>로 해서 <서울이여 안녕>, <서울이 좋다지만> 등등, 제목이 다소 선정적인<서울은 여자를 좋아 해>도 있었고, 제목이 다소 비감한<서울에서 제일 쓸쓸한 사나이>도 있었다.


서울을 주제로 한 노래로 대표적인 것은 1969년 길옥윤이 작사, 작곡하고 그의 아내였던 패티김이 부른 <서울의 찬가>다. 이 노래는 당시 서울 시장이던 김현옥이 길옥윤에게 서울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태어났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그리워라 내 사랑아 / 내 곁을 떠나지 마오 / 처음 만나고 사랑을 맺은 / 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 /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


노래는 유쾌하고 흥겨운데, 가사를 살펴보면 별 내용이 없다. 그냥 서울에서 오래 살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노래가 만들어진 1969년은 서울에 도로가 뚫리고, 육교와 고가가 건설되었으며, 하루가 다르게 고층빌딩이 들어섰던 시기이다. 내가 어릴 적 어디를 가도 서울의 찬가가 흘러나왔다. 정말 서울이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었나? 고층 이래 봤자 지금은 높다는 축에도 못 드는 12층 정도였고, 막 들어서는 아파트 뒤로는 판자집 같은 달동네가 있었고, 이곳에서 쫓겨난 서민들은 더 외곽으로 이사 갈 수밖에 없었던 시절인데.


1956년에 만들어진 <서울의 휴일>을 보며 <서울의 찬가>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고작 6.25 전쟁이 끝난 지 3년이 흘렀을 뿐이었을 서울, 3년 전 6.25전쟁에서 수 백만 명의 사상자를 낸 상처가 여전할 텐데, 시종일관 유쾌하게 흐르는 영화의 맥락은 무엇을 의미하나? 이 영화의 영화사적 의미를 떠나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지금부터 70년 전 서울의 모습이 영화에 고스란히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노인과 여자주인공 남희원(양미희 분), 남자주인공 송재관(노능걸 분)의 동선 속에서 서울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영화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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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송재관과 아내 남희원이 휴일의 계획을 짜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인 아내와 일간신문 사회부 기자인 남편을 중심으로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서울의 한 복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중심축을 이룬다. 영화는 서울의 어느 공원 벤치에서 시작한다. 간밤에 과로로 노숙을 한 노인이 벤치에서 일어난다. 뒤에 보이는 탑의 모습으로 보아 탑골공원이다.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내래이터는 노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를 이끈다.


뒤이어 안개 속에 남산에서 바라보이는 서울의 모습이 보인다. 해방 뒤에 조선신궁이 허물어지고 빈터 위에 남은 계단 위에서 원경으로 서울의 모습을 잡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중앙청, 경기상고의 모습이 보인다. 뒤이어 비치는 곳이 시내의 모습이고, 명동성당의 우뚝 선 모습이 보인다. 청계천의 광통교도 흑백으로 희미한 모습이지만 복개하기 전 청계천의 모습이다. 옥인동 지금 세종마을이라고도 부르고 서촌, 인왕산 아래 자락의 모습이 등장한다. 벤치에서 일어난 노인은 오늘이 일요일인 줄도 모르고 술에서 깨어나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로 출근한다. 문이 닫혀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가 전후 3년이 지났다는 것은 전쟁의 폭격으로 상공장려관(현 상공회의소)의 복구 모습과 한국은행 파괴되어 조선저축은행에 들어있던 모습 뿐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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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동에서 남편과 아내 대화 중, 멀리 벽수산장이 보인다


노인은 옥인동 자신의 집으로 향하고, 그 옆집에는 산부인과 의사 희원과 신문기자 남편 송재관이 산다. 아내가 휴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들떠있다. 여기서 남희원의 모습은 쇼트커트에 소매 차림이다. 대부분의 여인들이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였을 당대의 패션으로는 무척 파격적이다. 머리 스타일과 옷차림에서 오드리 헵번의 모습이 연상된다. 아내가 세운 휴일의 계획을 들은 남편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남편이 하는 말,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의 앤 공주(오드리 헵번 분) 시찰 일정보다도 더 바쁜 일과"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아내의 계획은 거창하다. 오페라도 감상하고 서울에서 보트도 탈 계획을 세웠다. 쇼핑은 물론이다. 당시 이게 가능한 계획이었을까? 막 집을 나서 휴일 일정을 소화하려는 찰라, 이들의 일상은 한 통의 전화로 깨진다.


전화가 흔하지 않은 시절 옆집으로 전화가 왔다. 송재관은 후암동 연쇄살인 사건을 취재 중이었는데 전화로 살인사건 관련된 제보를 받는다. 그는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출근해 신문사 차를 타고 범인의 집으로 향한다. 금방 돌아온다는 남편이 오지 않자, 희원은 혼자서 외출하는데 하필 남편이 근무하는 신문사 근처이다. 희원은 남편의 동료 기자를 덕수궁에서 만나게 되고, 그들은 희원에게 남편이 바람나서 여자와 놀러 갔을 거라고 놀리며 희원과 함께 어울린다. 남편의 친구들은 진지하지 못하다. 기자가 아니라 한량들처럼 보인다.


한편 송재관은 휴일에 걸려 온 전화로 인해 범인의 외딴집으로 가서 범인에게 농락당해 정신이 이상 된 여인과 함께 지낸다. 그는 범인과 맞닥뜨려 위기도 맞지만 경찰과 함께 범인을 검거하는 데 일조한다. 희원은 남편의 친구들에게 술값을 뜯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울고 있는 소녀를 만난다. 엄마가 출산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울고 있다. 희원은 소녀의 엄마를 무사히 출산하도록 도와준다. 재관은 후암동 살인사건의 범인을 체포하는 데 일조를 하고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와 출산한 여자를 보니 범인의 아내이다. 휴일은 망쳤지만, 송기자는 범인을 잡았고 남희원은 곤란에 처한 가족을 도와주게 되어 석 달만에 겨우 얻은 휴일을 부부가 즐겁게 보내려던 하루가 저물었지만 부부는 의미 있는 날로 생각한다.

https://youtu.be/s01M3YGI8MY

출처/Korean Classic Film


18분: 1950년대 덕수궁 돌담길


25분: 뱀 출현(로마의 휴일 진실의 입?)


27분: 부부가 한강 보트를 타는 모습( 그 시절 한강에서 보트를? )


30분: 연극적 요소가 영화에 대거 등장( 햄릿의 대사와 탱고)


"도미노 도미노 나의 사랑하는 도미노.. " "저와 아름다운 탱고 춤을 쳐줘요"


33분: "왜 오늘이란 휴일은 비애만을 갖다 주는고?"


34분: "다른 건 다먹어도 나이만은 먹지 말지어다"


37분: 한강 변의 모습, 보트 놀이, 클래식 노래 <오솔레미오>


40분: 벽수산장 왼쪽에 보임


47분: 덕수궁 중화전 모습


51분: 조선호텔에서 베이비 골프 즐기는 모습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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