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가득한 석촌호수 전경을 그린 그림
잠실(잠실도)은 여의도 처럼 한강의 섬이었다. 잠실도 위아래로 한강이 흘러 위는 신천강, 아래는 송파강이라 했다. 그런데 1925년 을축년에 어마어마한 홍수가 전국을 휩쓸었다. '을축년 대홍수'이다. 숭례문까지 잠길 정도였다고 하니 그 피해를 짐작할 수 있다. 4회에 걸친 호우로 전국에서 647명의 사망자를 냈고 한강의 물길도 바뀌었다. 송파 일대를 급격하게 휘감아 돌던 한강 물줄기가 곧게 펴지면서 신천강이 한강의 본류가 되고, 곡선 물길 위에 있던 잠실이 육지와 붙었다. 홍수 전에도 잠실도는 걸어서 건널만큼 송파강이 깊지 않았기에 홍수에 밀린 토사로 인해 섬이었던 잠실이 강남쪽으로 붙렸다. 그래서 새로 생긴 한강 본류가 신천(新川·지금의 잠실새내)이 되었다.
1963년 한강 종합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명맥이 남아 있던 잠실도를 완전히 육지화시키면서 잠실 위의 신천강을 따라 제방을 쌓고 잠실도 옆의 부리도와 연결하여 매립공사를 진행했다. 송파강 주변 약 8만평은 매립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 석촌호수이다. 석촌호수는 송파강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잠실 석촌 호수 근처가 싱크홀이 생기는 것은 매립의 영향으로 땅이 꺼진다고 보면 된다.
지난 겨울 석촌호수의 설경
지금 석촌호수는 만개한 벚꽃이 절정이다
1980년대 초 강이 변해 생긴 석촌호수 주변에 녹지를 조성하고 산책로와 쉼터를 설치하여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조상했다. 호수가 없는 서울에서 석촌호수는 단연 서울의 명소로 떠올랐다. 호수의 면적만 약 21만 7,850㎦에 달하고, 평균수심 4.5m, 송파대로를 중심으로 동호와 서호나누고 양쪽을 합친 호수 둘레가 2.5km나 된다.
동호는 산책로 길과 조깅 코스로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며 서호는 롯데월드의 매직 아일랜드가 있어 놀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하다. 호수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산책로 길을 살랑이는 바람과 함께 거닐어 보면 이것이 서울에서 느끼는 최고의 호사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봄이면 벚꽃과 철쭉 연산홍이 호숫가를 화사하게 물들이고 여름이면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버드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시원함을 준다.
“도시에 꽃길이 있어요.”
“여긴 냄새가 틀리네요.”
손자 주원과 형주의 그림
석촌호수 놀이 동산을 배경으로 형주와 주원
손자들은 도로의 숲에 단장된 꽃밭이 신기하고 흥미로운지 코를 킁킁거리며 연신 나무와 꽃 사이를 누비고 다닌다. 이 석촌호수는 가을 풍광도 예사롭지 않다. 고은 빛깔의 알록달록한 단풍과 낙엽의 운치가 돋보이고, 하얀 눈으로 뒤덮힌 겨울의 멋도 그만이다. 하지만 사계절 중에 단연 풍광이 으뜸인 것은 벚꽃이 만발한 지금이다. 1,000여 그루의 왕벚꽃이 연출하는 호숫가의 모습은 정말 혼자 보기 아깝다.
또한 롯데월드 매직 아일랜드를 품고있는 서호에는 놀이기구 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차분한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렵지만 활기가 넘친다.
“와아아아!”
손자들이 그 소리를 따라 즐기며 펄쩍거리고 뛰어다닌다. 동화 속 풍경 같은 놀이시설들이 하늘로 솟아 올랐다가 호수로 풍덩 빠저 버릴 것 같다. 기구의 움직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를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뻥 뚦린다.
지금은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의 테마파크인 롯데월드는 민속박물관과 공연장과 석촌호수를 배경으로 펼쳐진 테마파크인 매직 아일랜드는 손자들과 더불어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에 아주 좋으며 특히 제2 롯데월드라고 불리는 롯데 타워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세계에서도 5번 째로 높은 건물이다.
“우와, 구름을 뚫었나 봐요.”
손자의 탄성도 잠깐 나의 눈길을 끄는 비석이 하나 있다. 조선 역사에서 최고의 치욕으로 평가하는 삼전도 굴욕을 기록한 비석이다. 선조가 청태종에게 굴복한 사건을 기록했다. 1637년 병자호란 때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항전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삼전도(현재의 송파구 잠실동)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했다. 이때 인조는 남한산성 서문으로 나와 삼전나루터에 도착, 이곳에서 청태종에게 굴욕적인 삼배구고두례를 행했다. 청태종은 이것을 기록하여 삼전도비를 세웠다.
삼전도비 몸돌 앞면에는 청에 항복했던 상황과 청 태종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만주문자(왼쪽)와 몽골문자(오른쪽)로 새겼고, 뒷면에는 한자로 새겨 놓았다. 삼전도비는 고종 32년(1895)에 청일전쟁이 끝난 뒤 땅속에 묻혔으나, 1917년에 일제가 다시 세웠다. 1956년에 문교부 주도로 또다시 땅속에 묻히는 등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홍수로 비석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자리를 옮겨 다시 세웠다. 1963년에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문화재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원래 위치(현재 석촌호수 서호 내부)에 가장 가까운 곳에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2010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보호각을 설치한 것이다.
삼전도비
이런 역사도 기억해야 할까? 아프고 치욕스런 역사도 조상들의 흔적이 아닌가. 과거는 지나간 것이지만 또한 새겨야 할 부분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 것이다.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러나 손자들의 환호성으로 내 마음에도 갑자기 봄이 찾아오는 느낌이다. 다시 호수의 정겨운 봄꽃 속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렇듯 석촌호수에는 아름다움과 역사가 있다. 그 절묘한 조화 석촌호수에서 즐겨보자. 지금 가야한다. 벚꽃, 영산홍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석촌 호수는 지하철 2호선, 8호선 잠실역 1번출구를 나와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손자에게 들려주는 서울 이야기 19] 봄꽃향이 물씬 풍기지만 치욕의 역사가 있는 곳 – 잠실 석촌호수 < 문화일반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