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나무 이야기 ⑧]만병통치약 버드나무

by 데일리아트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


신록이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이때가 아니면 보기 힘든 초록의 향연이 산자락마다 펼쳐집니다. 이제 막 피어나는 초록 초록한 연녹색부터 짙은 초록까지 우리네 산은 스펙트럼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바람결에 긴 머릿결을 흩날리듯 물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는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키게 하는데요. 역사 속에서도 우리는 버드나무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 조선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가 바로 그 주인공들인데요. 이들이 처음 만나는 과정에서 버들과의 인연이 등장합니다. 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처자에게 물 한 그릇을 달라고 하자 급히 물을 마시게 되면 체할까 봐 버들잎을 띄워 바친 것이죠. 처자의 지혜와 총명함에 이끌린 태조는 그녀를 아내로 맞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옛 그림에는 소나무가 가장 흔하고 다음이 버들입니다. 특히 강이나 호수가 포함된 그림에는 반드시 버들이 등장하는데요. 버드나무는 종류가 다양합니다. 가지가 늘어지는 능수버들, 수양버들, 물가에 흔한 갯버들, 청송 주산지의 물속에 잠겨 비경을 연출하던 왕버들 등 우리나라에만 30종 이상이 분포하는데요. 그중에서도 능수버들과 수양버들은 구별이 잘 안됩니다. 전문가도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나라 원산은 능수버들이기에 가능하면 가지가 축 늘어진 버들은 능수버들로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작품을 보겠습니다. 그림 속에는 버드나무가 푸르게 드리운 봄날, 한 젊은 선비가 말을 타고 길을 나선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길섶의 버드나무는 간결하게 처리되어 군더더기 없이 시선을 유도하며, 선비와 일행은 화면 중심에 배치되어 장면의 주체로 자리합니다. 하늘은 넓게 비어 있지만, 그 여백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꾀꼬리의 울음이 메아리치고 봄의 운율이 흐르는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그림에서도 여백은 중요한 구성 요소입니다. 공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소리와 바람, 빛이 머무는 장소로서 감각적 상상을 가능케 합니다. <마상청앵>의 하늘 여백은 바로 그런 감각적 여운을 실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물의 옷맵시는 단원의 특기인 철선묘(필세의 변화 없이 처음과 끝을 똑같은 굵기로 가늘게 긋는 기법)로 묘사되어 조선 복식의 유려한 선과 절제된 기품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반면 말, 갓, 길섶의 풀들은 먹의 번짐으로 처리되어 흐릿하지만 생생한 현실감을 전달합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식물 재료의 물성을 고려해 공간을 조화롭게 그려내고자 했던 작가의 의중으로 보여집니다. 조선시대의 진경산수화가 만개하고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마지막 시기의 작품입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그림에 더해진 단원의 동갑내기 절친 이인문(李寅文, 1745-1824)의 제화시가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佳人花底簧千舌 아름다운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 가지 소리로 생황을 불고 韻士樽前柑一雙 시인은 술병 앞에 귤 한 쌍을 놓았도다 歷亂金梭楊柳崖 어지럽다. 금빛 북이 능수버들가지 늘어진 강기슭에 오르락내리락하니 惹烟和雨織春江 뽀얗게 안개비가 내려 봄 강에 비단을 짜는 것이냐


이 시는 풍경 속에 흐르는 소리와 감정을 고스란히 시어로 담아냈습니다. 옛 그림에서도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는 시각적 장치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들을 수 있는 풍경’으로서의 완결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단원이 음악과 시에 능했기에 가능한 묘사이며, 이는 공간을 시청각적으로 해석하는 작가의 감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단원 김홍도는 어린 나이에 문인 화가 표암 강세황의 집에 드나들면서 그림을 배웠다고 하는데,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의 화원이 된 김홍도는 29세에 22세의 왕세자(후에 정조)의 초상을 그리게 되면서 정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문인의 품격과 감수성을 지녔던 인물로서 거문고를 타고 피리를 불며 자연 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표현하는 데 탁월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못하는 악기가 없었다고 하죠. 그런 그가 그려낸 <마상청앵>은 단순한 풍속화가 아니라, 조선 후기 자연관의 정수를 담은 시적 공간입니다. 이 작품을 저 같은 조경가의 시선으로 본다면, 이는 단지 ‘보는 풍경’을 넘어, ‘느끼는 공간’, ‘머무는 계절’로 구성된 하나의 완성된 정원입니다. 김홍도의 붓끝이 그려낸 이 봄날의 장면은,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도 생생한 영감과 사유를 불어넣을 수 있는 귀중한 미적 자산입니다. 단원다운 풍속화를 선택하라면 감히 <마상청앵>을 꼽을 것 같습니다.


김홍도는 자신의 초상화나 자화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지 않은 것인지, 남아 있지 않은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추정되는 자화상이 있을 뿐인데요. 그중 김홍도의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바로 <마상청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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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종이에 수묵담채, 117.2×52㎝, 간송미술관


그림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겠습니다. 말 위의 선비가 부채를 손에 든 걸로 보아 날이 더운 여름인 듯하지만, 아직 버드나무가 무성하지 않아 완연한 여름이 아닌 늦봄이나 초여름으로 느껴집니다. 선비의 뒤로는 강둑이 연상되지만 전혀 표현되어 있지 않고 시구절로 채우고 있죠. 단원의 그림 중에는 이처럼 배경이 과감히 생략된 대담한 작품들이 많은데요. 아마도 안개가 가득 끼어 시야가 흐려진 상태를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선비와 말구종 아이는 말고삐를 멈추고 나무에 시선을 두고 있습니다. 버드나무에서 무엇을 보았을지 그림을 자세히 보면 자그마한 새 한마리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새 중 가장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가진 꾀꼬리를 나뭇가지 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꾀꼬리가 울기 시작하면 여름이 온다고 하니 고개 들어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여기서 좀 더 자세히 그림을 보셔야 합니다. 조금 더 아래 잘려나간 둥치 위에 상체만 빼꼼히 보이는 꾀꼬리 한 마리가 더 있거든요. 한 쌍의 꾀꼬리가 아름답게 봄날을 노래하는 소리에, 아마도 말을 타고 길을 가던 선비의 마음이 흔들렸던 것일까. 더 이상 젊지 않은 자신에게 들려오는 청아한 새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일까. 간결하게 그려진 버드나무와 꾀꼬리, 풀이 살짝 돋은 길 이외에는 어떤 배경도 그려지지 않은 이 그림 속에서 봄날의 아련함이 느껴집니다.


단원 김홍도는 혜원 신윤복과 함께 조선의 천재 화가로 오르내리는 인물입니다. 혜원이 풍속화에 방점이 찍혀있다면 단원은 모든 분야의 그림에 빼어난 재주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혜원이 양반들의 풍류를 그려낸 화가라면, 단원은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그려냈습니다. 당시 서민들의 고단한 삶과, 양반들의 풍류를 기록한 이들의 그림이야말로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자 보물입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볼수록 아름답습니다.


추가로 버드나무와 관련된 이야기 몇 가지 올려봅니다. 인류가 개발한 많은 약 중 100년이 넘도록 사용되는 것은 거의 없지만 1899년에 독일 바이엘사에서 출시된 ‘아스피린’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하루에 약 200억 개가 팔린다고 합니다. 아스피린은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살리실산’을 이용해서 만든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도 버드나무의 효능을 알고 있었는데요. 1571년 별과 시험 중 말에서 떨어진 이순신이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다친 다리를 싸매고 시험을 마친 유명한 일화에서처럼 버드나무 껍질에는 현대 의약품인 ‘아스피린’의 주성분인 ‘살리신산’과 ‘글루코사민’이 소염, 관절염 등의 약제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즉 버드나무의 약용능력은 만병통치약에 가깝습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환자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고자 버드나무 잎을 씹게 했다고 하며, 고대 중국에서는 치통을 겪을 때 작은 버드나무 가지로 이 사이를 문질렀다고 합니다. 이 때문인지 이쑤시개를 뜻하는 일본어 ‘요지’(楊枝)는 버드나무의 가지라는 말인데요. 양치질은 ‘양지와 질’에서 온 말로 한자로 버드나무 가지를 뜻하는 楊枝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또한 버드나무는 속살이 하얗기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청정한 기운을 준다고 믿었으며 가지가 잘 늘어지고 휘어지는 모습 때문에 예로부터 이별이나 그리움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졌습니다. 버드나무 가지를 꺾는 것은 한자어로 절양(折楊)이라 하는데요. 절양(折楊)이란 옛날에 사람을 떠나보낼 때 그 이별을 슬퍼하고 가는 길의 안전을 비는 마음으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주는 풍습이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이별의 풍습과 관련이 깊습니다. 버들가지는 예로부터 생명력이 강해 그 가지를 뒤집어 심어도 뿌리를 내릴 정도인데요. 그래서 이별할 때 버들가지를 꺾어 건네주는 것은 그 강한 생명력처럼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함축했습니다. 이 때문에 절양은 이별과 동시에 재회의 바람을 동시에 담은 말이 됐고 또한 이별하는 장소에는 이런 이유로 버드나무를 심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 버드나무 꽃씨에 붙어 있는 솜털 때문에 많은 버드나무가 잘려 나가기도 했는데요. 버드나무는 대기 중의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역할도 하고 물가에 홀연히 서서 멋진 경관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다양한 생태적 역할을 수행하는 버드나무인 만큼 우리 곁에 두고 볼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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