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전을 보고 - 조선 산천이 피어나다

by 데일리아트

조선산하의 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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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호암미술관에서는 4월 2일 부터 6월 29일까지 조선 후기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대규모 기획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미술관 주변은 찬란한 햇빛에 사월 봄꽃으로 가득하였습니다. 환한 미술관 정원을 지나 어두운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니 블랙홀에 빨려 들어 이백 년이라는 시간을 거스른 듯 조선 산천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습니다. 정선의 대표작이며 국보인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와 〈금강전도(金剛全圖)〉가 들어 서자마자 활짝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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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1751년, 종이에 수묵, 79.2Ⅹ138.2 ㎝, 국립중앙박물관 (왼쪽) 금강전도(金剛全圖) 1740년대,종이에 수묵, 130.8Ⅹ94㎝, 개인소장 (오른쪽)


우리는 가끔 사진으로만 보던 유명한 작품을 실제로 보았을 때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은 겸재의 그림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두 그림이 마주 보고 서 있으니 마치 내가 하늘 높이 올라 남쪽과 북쪽의 명산(名山)들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먼저 〈인왕제색도〉를 보면 짙은 먹으로 거칠게 붓을 휘둘러 봉우리를 어둡게 그리고 아래로 길게 빈 공간을 가로질러 산을 감싸 안은 안개를 표현했습니다. 뚜렷한 흑과 백, 거칠고 옅은 붓 자국의 대비가 강렬하면서도, 은은하였으며 고요한 웅장함이 느껴집니다.


이 작품은 정선이 76세가 되던 1751년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평생 쌓아온 대가의 기량이 오롯이 화면에 담겨 있습니다. 며칠을 내리던 초여름 비가 그치고 맑게 갠 이른 아침 고요함이 가득합니다. 안갯속에서는 산새가 울고 촉촉한 숲의 향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겸재는 조선의 산하를 참된 모습을 그리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는 회화 세계를 정착시켰습니다. 우리가 현실에 있는 사물의 참된 모습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사진도 포착할 수 없는 세계일 것입니다. 그의 '진경산수'는 진경(眞景)이라 하여 산수의 겉모습을 사진 찍은 듯이 그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연을 눈으로 본 게 아니라 받아들였습니다. 〈인왕제색도〉는 그의 마음에 비추인 인왕산의 참 모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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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봉선, 방 인왕제색도 (倣 仁王霽色圖), 1993, 80Ⅹ140 ㎝,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보기 전 인사동 '공화랑'에서 전시한 문봉선 작가의 《방 인왕제색도(倣 仁王霽色圖)》를 먼저 보았습니다. 그리고 진품 정선 작품을 보고 와서 사진으로 찍은 '방(倣)' 작품을 다시 들춰보고는 문봉선 작가의 '방(倣)'솜씨에 새삼 감탄했습니다. 물론 정선의 진품에서의 느낌과는 달랐습니다. 그러나 눈처럼 하얀 종이에 미세하게 살아있는 먹의 옅은 농담과 선명한 붓 자국은 마치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그리고 마지막 붓질을 끝낸 뒤 붓을 내려놓은 듯했습니다.


문작가는 인왕산에는 폭포나 깊은 계곡물이 없는데 정선이 〈인왕제색도〉에 왜 폭포를 그려 넣었는지를 비 내린 오후에 인왕산을 직접 등반하고서야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산에는 물과 안개와 점경 인물(點景人物)이 배치되어야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는 산수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산과 소통하며 산을 내 마음에 담는 와유(臥遊)의 정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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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금강전도(金剛全圖), 18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담채, 130.8Ⅹ94.5㎝, 개인소장


인왕제색도 맞은편에는 정선의 또 다른 대표작 〈금강전도(金剛全圖)〉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정선은 남들은 일생에 한 번도 다녀오기 힘든 금강산을 여러 차례 다녀와서 많은 금강산 전경도를 그렸습니다. 그 가운데 이 작품이 가장 유명한 〈금강전도〉입니다. 금강산을 높은 하늘에 올라 내려다보고서는 화면 한가운데 둥그런 원에 집어넣어 그렸습니다. 왼편에 나무숲이 우거진 흙산과 오른편 창처럼 뾰족한 바위산으로 나눈 것은 보통 주역에 밝은 정선이 음양의 조화를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실제 금강산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지만 주요 장소에 지명을 달아 놓아 그림지도처럼 만들었습니다. 정선은 금강산을 새로운 이상향으로 그려냈습니다. 우리는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 이 두 그림에서 정선의 진경산수를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정선이 경북 포항에 있는 내연산을 보고 그린 〈내연산삼용추(內延山三龍湫)〉에 조영석은 다음과 같은 제발을 남겼다고 합니다.


"今從元伯筆 始識內延山 (금종원백필 시식내연산) - 정선의 그림을 보고서야 내연산의 참 모습을 알았다"

그는 산을 그린 그림을 보고서야 산을 알았습니다. 정선은 산수(山水)의 참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중국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데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손과 눈, 그리고 마음입니다. 이 가운데 두 가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겸재는 조선 산수의 참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발견하여 손으로 그렸습니다. 정선이 그린 참모습이란 무엇일까요?


이 번 전시에는 겸재 작품 165점이 나와있습니다. 진경산수화는 물론 인물, 화조영모 등 그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겸재의 작품세계를 파악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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