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⑨]바보화가 한인현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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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마지막으로 한화백에게 인사를 드리고 있다


“김관장님, 시간 괜찮으시면 독서 모임 끝나고 저와 차한 잔 하시지요.”


이계진 회장님의 제안에 다른 회원 두 분과 넷이서 찻자리를 가졌다. 전 아나운서이자 국회의원을 지내고 현재 아나운서클럽 회장인 이계진 회장. 회장님 부부는 법정 스님의 유발제자이다. 은퇴 전부터 틈틈이 가꾸어 준비한 양평 집에는 텃밭도 있고 꽃밭도 있고, 제법 큼직한 연못도 있다. 회장님이 손수 정원과 텃밭을 관리하는데, 내 눈에는 몇십 년 농사 진 전문가처럼 보인다.


여기 부부가 기거하는 집 맞은편에 명상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한 달에 한 번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를 읽는 독서 모임을 한다. 내가 존경하는 양흥식 박사님이 간다고 해서 나도 데려가라고 졸라서 따라간 것이 벌써 2년이 되어간다. 공식적으로 가톨릭 신자인 나는 불교 철학을 좋아하고 요즘은 절에서 더 자주 논다.


비밀인데, 사실 나는 헷갈려서 텔런트 이계인씨가 책읽기 모임을 하신다는 줄로 알았었다. 첫날 훤칠한 미남이신 이계진 회장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안 들키고 급하게 검색해보니 우리 엄마와 동갑이셨다. 암튼 이곳에서 나와 회원들은 법정 스님이 뿌리신 씨앗을 마음에 키우며 서로에게 힐링을 선물하고 있다.


찻자리에서 이회장님은 책을 한 권 주셨다. <바보 화가 한인현 이야기>는 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에 2년간 연재한 글이 소위 히트를 치며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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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현 화백과 두 딸


‘부담 갖지 말고 한 번 읽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책을 후루룩 펼쳐보자마자 부담이 됐다. 그리고 무언가를 더 말씀했는데, 책 속의 그림을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죄송하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첫째, 스케치가 시쳇말로 넘사벽이었다. 밀라노에서 공부할 때, 에곤 쉴레의 스케치만 걸린 전시를 보고, 도서관에 왜 그렇게 에곤 쉴레의 논문이 많았었는지 이해됐었다. 한낱 스케치가 감정을 뿜고 있었다. 한인현 화백의 스케치에 보여지는 선들은 게다가 훨씬 절제되고 정제된 그것이었다.


둘째, 너무 어두웠다. 아니 슬픔과 고뇌가 너무 잘 전해진다는 게 정확하겠다. 소위 미술관에 가야하는 그림이다. 작품성은 있지만 컬렉터들이 집에 걸어놓고 눈물 흘리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셋째, 작품에 정당한 가격을 매길 수 없었다. 이름 아는 누구누구 작가 저리가라 할 최고의 퀄리티를 가진 1.5세대 작가이지만, 미술계와 담쌓고 전시도 작품 판매도 거의 하지 않은, 그래서 나에게도 낯선 작가이자 작품들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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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현, 기다림, 2008, 혼합제, 53×72cm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이렇게 머리를 굴렸는지 스스로도 놀랍다. 하지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돌연 심통이 나서 냅다 말했다.


“이정도 실력에 묻혀 있다니, 작가가 진짜 고집불통이신가 봐요”


필력이 대단하지만 어둡다는 둥 화랑과 등진게 분명한다는 둥 하는, 나의 당돌한 건방을, 이회장님은 포인트를 잘 잡았다며 두리뭉실 감싸주었다.


설치 작가를 포기하고 가방회사 대표가 된 나로서는 그의 뚝심에 부러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더불어, 이정도 선을 쓰려면 타고난 재능 말고도 엄청난 노력을 퍼부었을 진데 나 따위 1년 차 갤러리 관장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이 속 터지는, 그런 복잡한 심정에 나는 속이 상했다.


‘아직 이정도 작품을 구매할 고객을 갖고 있지 않다’라는 나의 변명은 사실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평가의 시기를 겪을 수 있다면 훨훨 날아오를 텐데.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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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현 화백의 총각 시절


바쁘다는 핑계로 몇 주 지나 <바보 화가 한인현 이야기>를 읽었던 것 같다. 달필의 글은 술술 읽혀서, 두 시간 조금 넘겨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이계진 회장의 ‘한인현’ 사랑이 글을 읽는 내내 뜨끈하게 느껴졌다. 숨어서 그림만 그렸던 화백을 세상에 내놓아 주목받게 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쓴 그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화가에게 또 뭐라도 선물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것이다.


여전히 툴툴대고 있었지만, 내 마음에도 한인현 화백이 어느새 한 숟가락 더 담겼다.그 겨울이 지나고 한참 무더운 여름, 대만에서 온 컬렉터가 투자로 가치 있을 그림을 찾았다. 나에게 한 화백님만큼 극적인 가치상승이 예상되는 작가는 없었다. 다만 그림을 안 팔기로 유명한 분이라는 것이 리스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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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서, 필자와 한인현 화백


이계진 회장은 흔쾌히 가족들을 소개해 주었다. 판교 한인현 화백 집에서 병석에 계신 화백님을 뵈었다. 당시 화백님이 대화하기 힘든 상태였던 관계로 나는 따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만난 지 얼마 되지않아 순진한 두 딸과 애송이 관장은 선생님 소원이신 미술관 건립을 위해 의기투합하기로 했다.


몇 번의 방문과 통화가 더 있은 후, 다른 작가들의 양해를 얻어 선생님의 마지막 전시를 앞당겨 기획했고 일부 작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선생님께 허락도 받았다.


전시를 3주 앞두고 갑자기 위독해지신 화백님을 가족들의 배려로 응급실에서 만나 뵐 수 있었다. 15분의 면회 시간에 선생님은 아내와 딸들을 호강시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과 전시를 열어주어 고맙다는 말씀을 반복해서 전했다. 호전되어 요양병원에 계실때는 한두 시간 동안 인터뷰도 해주셨다. 몸무게가 36kg가 되고 콧줄과 링거로 버티고 계셨지만 단정함을 잃지 않았다. 힘든 와중에도 ‘고맙다’,‘최고다’며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이 말로만 듣던 한인현. 사람 냄새나는 바로 그분이었다.


선생님 상태가 좋아지시면 뵈러 가겠다고 했었는데. 다음 주에는 그냥 뵈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왠지 생각났던 며칠 전 그냥 가봤어야 했었다. 나는 너무 늦장 부렸다. 그분에게 내일이 그렇게 쉬운 단어가 아닌 걸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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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현, 기다림, 2008_혼합제 53×72cm


오후에 선생님을 모신 추모공원에 들렀다. 아직 비석에는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다. 선생님은 여기 새길 그림을 벌써부터 준비해 두셨다. <기다림>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뒷짐을 지고 먼 곳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기다리는 영원한 소년, 한인현 자신이다.


그 언덕에서도 어머니를 기다리실 작정인 거다. 부디 뒷짐 진 긴 팔을 열어 어머니 품에 폭 안겨 계시기를 바라며, 선생님을 품은 따스한 언덕을 천천히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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