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의 영화 한 되③] '파과' – 죽여도 되니?

by 데일리아트

*본 기사는 영화 <파과> 및 원작 소설 『파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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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도전


이거 영화로 만들긴 어렵겠는데.


소설 『파과』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민규동 감독의 영화 <파과>가 개봉하기 하루 전이었다. 감독의 전작 중 <간신>을 인상 깊게 봤던 터라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가 컸다. 강렬한 이미지를 잘 만드는 감독이기에 이 작품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인 60대 여성 킬러 ‘조각’역에 이혜영 배우가, 그녀를 위협하는 젊은 남자 킬러 ‘투우’역에 김성철 배우가 캐스팅 된 사진을 보고 연기 걱정도 없겠다고 안심했다.


'그래도, 어렵겠는데.'


라고 여전히 느낀 이유는, 원작 소설이 가진 소설로서의 재미가 워낙 출중했기 때문이다. 한 문장이 대여섯 줄을 넘기는 특유의 만연체 문장으로, 시점을 바꿔가며 독자의 혼을 쏙 빼놓는 재미가 어마어마했다. 장르적 매력도 물론 있었지만, 작가의 필력과 생명찬가라는 주제의식이 장르의 배에 올라탔다는 감상이 지배적이었다. 이걸 영화로 옮긴다면, 흔한 장르영화에서 그칠까봐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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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지만 다르게


민규동 감독이 시나리오를 136고까지 썼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거야말로 조각(彫刻) 아닐까. 그렇게 깎고 다듬어 만든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소설을 영화로 각색할 때 어떤 부분을 고려해야 할지를 학교에서 가르칠 예시로 사용해도 좋을 정도다.


소설이 서술과 내면 묘사라면 영화는 이미지와 사건, 행동이다. <파과>는 충실하게 영화의 매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이미지가 쉴 새 없이 몰아치고 새로운 사건이 펑펑 터진다. 긴장감을 극의 끝까지 유지하며 독자는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영화만의 각색 지점은 명확했다.


두 인물의 대결.


투우의 등장이 처음부터 외부 영입으로 나오고, 조각이 중간에 투우의 정체를 알아채고 한 번 승리하는 듯 보이면서, 투우의 동기를 더욱 강화한 부분이 특히 눈에 띄었다. 소설은 투우가 안타고니스트로서 존재하긴 하나, 둘의 대결이 완전히 메인이라기보단 조각이 느끼는 노화와 상실에 관한 감정, 변화하는 주변 인식과 끝내 터져 나오는 생명찬가의 메시지가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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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깊이가 얕아졌다는 아쉬움은 들겠으나, 대중매체, 영상 예술이라는 영화의 특성상 명확한 대결 구도와 장르적 재미에 더욱 충실했던 건 납득할 만한 선택이라고 본다.


그 과정에서 소설보다 더욱 센 이미지도 많이 추가됐는데, 마약 범죄 조직이 커다란 구덩이에 조각을 벌레 밥으로 던져 주는 장면과, 극 후반 총격씬에서 조각이 와이어를 타고 공중에서 몸을 돌리며 총을 쏘는 장면이 특이 일품이다. 마지막 조각과 투우의 일대일 전투를 과거 둘이 스트리트파이터 게임을 했던 장면과 매치 컷으로 잇는 연출과 편집은 감독의 고민과 능력이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의 문체를 어설프게 살린답시고 조각의 나레이션으로 극을 진행하지 않은 점이 가장 좋았다. 이미지와 사건, 행동이라는 영상 언어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의 각본과 연출이 빚어낸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쉬운 선택보단 어려워도 필요했던 선택을 한 감독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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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는 왜 그랬을까


조각은 이해하기 쉽다. 물러지고 부서져 상품 가치 떨어진 복숭아 같은 자기 모습을 거절하는 인정욕구, 류를 떠올리게 만드는 강선생과 그의 딸을 지키려는 보호본능, 필요한 일을 한다는 사명감 등, 그녀의 선택과 행동은 금방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제는 투우다. 얘는 왜 이럴까?


힘겹게 조각을 찾아내 사사건건 시비를 걸다가, 정작 조각의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냅다 달려가 도와주고. 그랬는데도 자기를 한 번 죽이려고 한 사람에게 행하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여자에 대한 복수가 이 인물의 동기의 전부일까?


물론 아니다. 표면엔 복수를 발라놨으나 그 속엔 어긋난 애정 결핍이 들어있다. 버림받기 두려웠던 아이가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당신이 무슨 짓을 했든 난 괜찮다고, 온몸으로 피를 토하며 우는 중이다. 투우에게 조각은 알약을 못 삼키는 자신을 위해 손수 절구에 알약을 빻아 가루를 내 먹여주는 엄마였다. 집에서 자신과 놀아준 유일한 사람이었고, 아빠의 폭력을 견딜 힘이었다. 어린 투우에게 조각은 목적 그 자체였다.


그랬던 인물이 자신을 떠났다. 심지어 자신은 그녀에게 목적이 아닌 수단이었다는 걸 알았다.자신의 아빠가 살해당한 건 투우에게 사건이 아니었다. 조각이 자기를 떠나는 게 그의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이었고, 그녀의 뒷모습이 평생 쫓을 목표가 됐다. 조각에게 "죽여도 되니?"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투우는 드디어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얼마나 기뻤을까.


이게 투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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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인과를 여기까지 이해해야 조각이 투우를 무릎에 눕히고 묻는 마지막 대사 “이제 알약 잘 삼키니?”에 심장이 내려앉을 수 있다.


관객은 이 모든 걸 충분히 납득시키는 김성철의 사연 있는 눈동자에 빠져 허우적대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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