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조각의 수많은 경향 속에서 구상 조각은 여전히 강한 울림을 전한다. 익숙한 형태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안에 작가만의 해석과 감정을 녹여내는 구상 조각은 관람자에게 직관적인 공감과 깊은 사유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형상의 재현을 넘어 구상은 하나의 조형 언어로서 감정을 조형화하고 시대를 은유하며 때로는 말보다 더 섬세한 서사를 전달한다. 특히 다양한 재료와 물성을 통해 표현된 형태들은 현실과 비현실, 사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며 감상자 스스로 이야기를 완성하도록 이끈다.
이번 '망치든 조각가'에서는 구상 조각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윤유담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익숙한 형상 속에 감춰진 내면의 메시지, 그리고 조각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과 사유의 흐름. 그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조각가 윤유담
자기소개 부탁한다
조소 전공을 했고 구상 작업을 주로 하고 있는 윤유담입니다. 구상은 실물로부터 파생된 작업입니다.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실체를 세세히 관찰하고 탐구해야 합니다. 구상 작업은 객체가 지닌 실존에 좀 더 다가가고, 나아가 외적 이면에 담긴 내면을 알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작업실에서 어떤 작업을 하는가?
주로 동물의 형상을 빗대어 인간이 가진 내면과 자아에 관한 이야기들을 표현한 구상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이라는 동물은 애초에 뚜렷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편적인 의미의 동물 형상은 인간의 의사소통에 공감을 이끄는 매개적 장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물의 반복되는 형상은 주변인과 비슷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들의 모습. 남과 비교하며 서로 비슷한 삶을 추구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즉 동물의 형상을 통해 인간의 내면까지 나아가는 작업이죠. 최근에는 아직 발표를 안 해서 보여주기 어렵지만 인체 작업도 병행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윤유담,'경계하는 그들', 2023, Resin +우레탄 도장, 14x30x63cm 6pcs
윤유담 '당신이 나를 이해할수 없는 이유', 2023, Resin, 310x300x650mm
윤유담, '순간은 그렇게 변한다' 2023, Resin, 24x15x46cm 8pcs
본인의 작업의 주제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내적 혼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면 사람들은 모두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들의 자아를 시각적으로 조형화시키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이 사회에서 개인은? 우리는 무엇인가? 등에서 파생된 다양한 생각의 갈래를 조형화하고 있습니다.
표현을 통하여 자아를 성찰하고 현시대 인간이 가진 근원적 본질이 무엇인가를 탐색해 가는 과정이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작업을 통해 타인에게 어떤 목적이나 교훈을 남기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가 증명하는 것이 서툴고, 존재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진짜 나다!” 싶은 작품이 있다면?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알려주시기를
오래전 작업이지만 첫 개인전에서 만든 <검은 고래>와 2023년 개인전에서 발표했던 <시선이 머무는 자의 시선>이라는 작업에서 보여준 큰 고양이가 있습니다. 이 2개의 작품이 저의 정체성과 성향을 보여주는 작업입니다. <검은고래>는 멀리서 보면 하나의 고래라는 큰 이미지가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유리 사이에 잘린 고래의 조각들이 유리와 유리 사이 이미지가 거울에 반사된 것처럼 증식하는 이미지를 도출합니다. 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확장 가능성을 지닌 자아의 특성을 가시화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당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자신과 타인들을 보며, 쉽게 주관이 휩쓸리는 사람의 모습을 동물을 통해 형상화했습니다. 혼란스러운 당시 저의 내면이 반영된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윤유담, '검은고래', 2015, Resin1 ,저철분 강화유리, 90x130x75cm
윤유담, '시선이 머무르는 자의 시선' 2023, Resin 우레탄도장, 65x95x124cm
<시선이 머무는 자의 시선>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작품입니다. 어릴 적 서울에서 지방으로 전학 갔는데, 쉬는 시간마다 한 친구가 저를 꽤나 괴롭혔는데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작품 속 고양이는 저의 이러한 내면의 모습입니다. 내면의 불편함이 주변 상황을 회피하게 했죠. 시선을 돌렸을 때 창밖에 앉아 있던 고양이를 주제로 만들었던 작품입니다. 창밖 고양이는 단순한 길 고양이었어요. 그런데 작품을 만들려고 자료를 찾다 보니 왠지 털 없는 고양이의 모습이 헐벗은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더라고요. 당시 저도 제가 발가벗겨진 상황처럼 당황스러웠습니다. 살짝 앞발을 들어 불편함을 표현하는 모습도 사람 만나기 힘들어하는 저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고요. 불편한 것을 회피하는 저의 옹졸함이 커져 버린 고양이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 모습이 저 자신이 피하고 싶었던 저입니다. 고양이를 통해 저의 내면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사실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지나고 보면 단순히 어릴 적 흔하게 있는 일이었는데 저는 혼자 마음속으로 오래 안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저의 내면에서는 어느 날 보니 커져 있었죠. 다른 누군가도 이런 게 있지 않을까 하고 만들다 보니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이 필요할 정도의 개인적인 작업이 되어버렸습니다. 때문에 2개의 작품은 너무나도 ‘나’의 내면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작업하는 것을 보면 작품의 완성도가 엄청나다고 느껴지는데, 작가가 생각하는 완성이라는 기준은 어디인가? 언제 ‘이제 됐다’고 느끼나?
구상 작업은 표현이 설득력입니다. 표현은 분명 작가의 주제를 관객들에게 납득시키는 장치이기는 하지만 저는 혼자 작업을 하고 실력도 부족하고 시간도 한정적이기 때문에 주제에 따라 절충 영역이 있습니다.
현재는 작업 중 형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눈을 다른 부위에 비해 좀 더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조 과정에서 어느 정도 완성됐다 생각하면 작업을 멈추고 일주일 정도 기간을 두고 다른 작업을 하거나 쉽니다. 뜸을 들이는 거지요. 그리고 작업에 완성도를 높일지 아니면 캐스팅 후 가공 작업을 진행할지를 판단합니다. 이제 됐다고 해서 완성하기보다는 이제는 그만두고 '완성으로 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마 묘사나 표현 좋아하시는 작업자 분들은 공감해 주실 것 같습니다.
윤유담 작업실
윤유담 작업실
완성을 향해 가는 작품
작업실에 절대 없어선 안 되는 물건이나 공구같은 것이 있나?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려달라.
주로 소조 작업을 하므로 주걱이나 조각도 조각 용품들이 제일 중요한 공구입니다. 그렇게 중요하지만, 소모품처럼 닳고 망가져서 자주 만들거나 구해서 씁니다. 흙을 만져야 하니 가장 중요하지만 아끼긴 힘든 공구입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유토 같은 경우 굉장히 단단해집니다. 부득이하게 실내용과 작업실용으로 나누어 사용합니다.
윤유담 작가가 아껴쓰는 작업도구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나 전시는?
지난 전시의 작업이 너무 사적이고 내면적인 이야기였는데 지금 준비 중인 작업은 더 확장된 주변에서 생각할 법한 주제나 상황에 가상의 상상을 추가해 연출된 이야기를 준비 중입니다.
아직 의욕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여 작업의 속도가 많이 안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하는 작업을 좀 돌아보며 만들고 있는 작업들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단한 전시를 상상하며 해보고 싶다는 타입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의 작업이 끝나면 끝말잇기처럼 다음 작업을 구상하는 스타일이라 원대한 전시 계획 없이 소소히 계속 만들면서 전시합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시는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사실 저 작가는 작업을 통해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하시겠지만 인간은 이미 자연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초월한 생명체입니다. 타 동물과 다르게 실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이미 수 세기 동안 하고 있지 않습니까? 때때로는 스스로가 생태계 피라미드를 초월했다고 하지만 어불성설입니다. 칼 세이건 선생님이 언급한 '창백한 푸른 점'에서처럼 우주 속 작은 티끌보다 작은 무언가입니다. 저는 그 사이에서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며, 이렇게 저렇게 표현하고자 몸부림치는 작업자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망치든 조각가②] 동물을 통해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다- 윤유담 < 인터뷰 < 뉴스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