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애의 건축기행] 독일 폴크방 미술관

by 데일리아트

"유리빔 사이로 드러난 안뜰의 초록 잔디와 나무가 있는 공간"
-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 주소: Museumsplatz 1, 45128 Essen, Germany
- 홈페이지: www.museum-folkwang.de


사진작가 고영애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60곳을 프레임에 담아 소개한다. 뉴욕현대미술관부터 게티센터, 바이에러미술관, 인젤홈브로이히미술관 등 현대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12개국 27개 도시에서 찾은 미술관들을 생생한 사진과 맛깔스런 건축 이야기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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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방 미술관의 전경 (사진 고영애)


인구 60만의 소도시 에센에 이렇게 멋진 현대미술관이 있다는 게 너무나 놀랍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건물의 대부분이 파괴됐던 소도시 에센은 그 트라우마를 예술로 치유하며 다시 일어선 도시다. 독일인들의 문화 보존 의식과 광기 어린 예술 사랑으로 2010년 EU가 정하는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된 에센에 이런 멋진 건축물이 들어섬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으리라.


멀리서 바라본 유리 건축의 간결한 외관만으로도 폴크방 미술관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대로변에 한 줄로 서 있는 전신주 디자인에서도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모던한 전신주 디자인은 현대미술관임을 알려주는 암시였고, 전신주에 매달아 놓은 포스터들은 폴크방 미술관 분위기와 잘 어우러졌다.

확 트인 대로변에 자리한 미술관은 길 한편으로 난 좁고 긴 통로를 따라 올라가니 자연스레 매표소와 만날 수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 계단들 위에 펼쳐진 6개동의 박스형 유리 건축은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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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를 따라 오르면 만나는 폴크방 미술관의 입구 (사진 고영애)


계단을 올라 처음 마주한 미술관 내부 공간에서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추구하는 단순하고 편안한 공간 이미지를 대하며 예전에 보았던 발렌시아의 요트경기장인 아메리카컵 빌딩의 공간 이미지를 떠올렸다. 깔끔하고 정돈된 유리 박스의 폴크방 미술관과 콘크리트 재질의 아메리카컵 빌딩은 건축 재료부터 전혀 달랐지만, 폴크방 미술관의 진입로와 전시 공간들에서 아메리카컵 빌딩의 자유로운 동선을 읽을 수 있었다.


미술관 매표소로 가기 위한 사선의 긴 공간은 마치 아메리카컵 빌딩으로 올라가기 위한 긴 진입로의 공간과 거의 유사하였다. 데이비드 치퍼필드 특유의 공간 추구는 자연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이 함께 공존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힐링을 주는 편안함이었다.


뚫린 창 사이로 오래된 이끼가 낀 외벽은 친근하게 다가왔다. 곳곳에서 건축가의 섬세한 감정이 전해져 평온과 행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복도 유리빔 사이로 중첩되어진 그림자 공간은 뚫어진 커다란 창의 공간과 안뜰 공간이 하나 되어 어스름한 오후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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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방 미술관 중정과 잔시장의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하는 긴 복도 (사진 고영애)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아메리카컵 빌딩으로 건축상을 받으며 국제적 위상을 떨쳤고, 그 이후부터 미술관 건축과 리모델링 작업을 맡게 되었다. 2016년에는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리모델링을 맡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박스형의 나지막한 폴크방 미술관은 입구에서 느꼈던 예상을 뒤엎고 꽤 커다란 전시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미술관 복도의 유리빔 사이로 드러난 초록 잔디와 나무 몇 그루를 심은 중정은 아주 조그마한 소박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햇살 아래 힐링을 주었고 쉼을 누리기에 충분한 휴식처였다.


중정과 전시장의 연결 고리 역할을 담당하는 긴 복도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자유로이 전시장을 오가며 쉼을 누릴 수 있게 한 휴식처였고, 복도 어느 방향에 서나 전시실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전시장의 소박한 내부 디자인은 작품들을 편히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요즘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한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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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천장의 채광창과 전시장 전경 (사진 고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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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의 밤색 박스 공간과 천장의 희색 박스 공간 (사진 고영애)


또한 자연광을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계된 높은 천장도 난해한 현대미술품을 설치하기 안성맞춤의 공간이었다. 무엇보다도 푸른 하늘 아래 파란 잔디로 꾸며진 조그마한 중정이야말로 압권이었다. 작품을 감상하고 나올 때마다 마주하는 파란 잔디는 순간순간 힐링을 주었기에 난해한 현대작품조차도 전혀 낯설지 않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폴크방(‘서민의 목초지, 서민의 넓은 방’을 의미)이라는 명칭대로 그 의미를 잘 반영한 소박하지만 흡사 넓은 방처럼 트인 공간들은 미술관 공간이라기보다는 휴식 공간이었다. 신관과 구관 사이를 연결하는 휴게실에는 알렉산더 칼더 모빌을 설치해놓아 아이들과 함께 온 관람객들에겐 더없는 휴식처가 되었다. 로비는 자료실과 전시장, 서점을 연결하는 구심점 역할을 담당했다. 진한 밤색으로 꾸며진 로비의 박스 공간과 하얀색으로 꾸며진 천정의 박스 공간은 대비를 이루어 멋진 공간을 창출했다. 그 너머로 바라보이는 중정은 자연 그대로의 편안한 공간이었다.


1902년 젊은 컬렉터 카를 에른스트 오스트하우스(Karl Ernst Osthaus, 1874~1921)는 자신의 고향인 하겐(Hagen)에 최초의 미술관인 폴크방 미술관을 개관하였다. 컬렉터는 서민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뜻의 명칭대로 폴크방 미술관을 열었지만, 그가 죽은 후 1929년 에센 시립미술관에 통합되었다. 그 당시 에센은 루르 지방의 산업 중심지이며 문화의 중심지로서 미술품에 열광했던 곳이었다. 문화 예술을 사랑했던 시민들은 폴크방 미술관협회를 설립했고, 미술관협회와 기업이 하나가 되어 폴크방 미술관 창립자의 이념에 따라서 새 폴크방 미술관을 에센에 짓게 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미술관은 무너졌고, 1960년에 이르러서야 에센의 중심가인 현재의 이 자리에 구관 폴크방 미술관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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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방 미술관 옆면의 원경 (사진 고영애)


2007년에는 구관 앞을 확장하여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디자인으로 현대건축물이 들어서게 되고, 급기야 에센은 더욱 활기찬 예술 도시로 부상하게 된다. 구 미술관 개관 초기에는 고대 극동아시아 지역의 미술, 중세미술, 근대미술품을 위주로 소장했지만 그 후 근대 유럽 미술과 동시대 미술로 컬렉션의 범위를 넓히면서 현대미술관으로 거듭났다.


대표적 소장품으로는 고흐, 세잔, 고갱, 모네, 르누아르, 쿠르베 등 19세기 프랑스 인상파 회화를 비롯해 에밀 놀데, 키르히너와 같은 20세기 독일 표현주의 거장의 작품, 초현실주의 미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800점이 넘는 회화와 조각, 1만 2000점의 그래픽아트, 6만여 점의 사진 작품 등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특히 1920년대와 1930년대를 풍미했던 유럽 최고 작가들의 작품을 독일 작은 마을에서 감상할 수 있음에 기뻤고, 다른 미술관에서 본 적 없는 희귀한 컬렉션을 볼 수 있어 기쁨은 배가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수확이었다. 비로소 폴크방 미술관이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디자인으로 유명세가 붙여진 것이 아닌 19세기부터 20세기의 유럽 화가들의 희귀한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으로서의 진면목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세잔, 마티스, 뭉크의 드로잉과 초기 작품들, 에른스트의 초기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 영 애


오랫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촬영하고 글을 써온 고영애 작가는 서울여대 국문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졸업했다. 한국미술관, 토탈미술관 등에서 초대 전시회를 열었고 호주 아트페어, 홍콩 아트페어, 한국화랑 아트페어 등에 초대받아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미술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글과 사진을 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잡지에 건축 여행기를 썼다.


이 연재물은 그의 책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 중에서 <데일리아트> 창간을 기념하여 특별히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을 골라서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그가 15년 넘도록 전 세계 각지에 있는 현대미술관들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기록한 ‘현대미술관 건축 여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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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애 글/사진,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 헤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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