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근의 미술 속 술 이야기 ②] 고산 윤선도

by 데일리아트

「오우가(五友歌)」는 조선 후기의 시인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가 지은 연작 시조집 『산중신곡(山中新曲)』에 수록된 6수의 시조다. 제1수에서는 다섯 가지 자연물인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벗으로 삼는 내용이고 제2수부터 제6수까지는 이 다섯 자연물의 아름다움을 각각 찬양하는 내용이다.


그중 인트로 격인 1수는 다음과 같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 동산(東山)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자연속의 변치 않는 수석송죽월(水石松竹月)을 통해 윤리를 탐구하고 각각의 덕목으로 인간에게 교훈을 전하려 하는 시다. 물의 부단함, 돌의 불변성, 소나무의 불굴함, 대나무의 불욕함, 달의 불언함이 그것이다. 윤선도는 정철,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 중 한 명이다.


1636년(인조 14년) 12월 병자호란 때 왕이 강화도로 피난하게 되자, 1637년 1월 그는 왕을 보호하기 위해 가복 수백 명을 배에 태워 강화로 떠났다. 그러나 이미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남한산성을 향해 가다가 이번에는 환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 화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욕되게 생각한 그는 평생 은거를 결심하고 뱃길을 돌려서 제주도로 향했다. 하지만 중간에 심한 태풍을 피하기 위해 보길도에 들르게 된다.


보길도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윤선도는 이곳을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 짓고 격자봉(格紫峰) 아래 낙서재(樂書齋)라는 집을 지었다. 산과 바다를 즐기고 시를 벗삼아 생활하며 보길도를 자신의 여생을 마칠 곳으로 삼았다. 인생의 대부분을 귀양으로 보내다 1671년에 보길도 낙서재에서 소천했다.


지금도 보길도에는 그가 연회를 즐겼던 세연정과 세연지, 시문을 창작하고 강론한 낙서재, 사색의 터전이었던 동천석실 등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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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윤두서, 자화상, 종이에 담채, 38.5X20.5㎝, 해남 녹우당 소장 (우) 윤용, 월야산수도, 지본수묵, 28.4X17.9cm, 서울대학교 소장


윤선도가 시서화에 능해서인지 그의 자손들을 보면, 증손인 공재 윤두서는 그림에 능했으며 특히 그의 자화상이 유명하다. 그리고 윤두서의 아들 윤덕희와 손자 윤용도 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윤두서의 외증손자가 그 유명한 정약용이다.


윤용의 그림 중 <월야산수도>를 보면 오우가의 다섯 벗 중 대나무를 제외하고 수석송월이 모두 보인다. 해남윤씨 어초은공파 사람들의 유물이 보관된, 해남에 있는 고산윤선도박물관에는 윤선도를 비롯한 윤두서, 윤용 등이 남긴 1,775점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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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세연정 /출처 : 녹우당 문화예술재단


윤선도는 오전에는 독서를 하고 후학을 가르치다 오후에는 세연정에서 무희들의 춤을 보며 술과 음식을 즐겼다. 해남에 많은 땅을 가지고 있던 집안 덕분이다. 평생 유배 생활을 했어도 재력에 자신 있던 윤선도이기에 이런 풍류 생활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윤선도는 세연정에서 어떤 술을 마셨을까? 분명 여러 좋은 술을 마셨을 것이다. 그중 가장 가능성이 있는 술은 보길도에서 가까운 강진의 병영소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 당시는 소주가 부의 상징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병영소주는 이순신 장군도 마셨다고 알려져 있는 술이다. 하지만 2023년에 병영소주를 빚던 김견식 명인이 별세한 후 현재는 잠시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현재 보길도를 상징하는 술은 '보길도가'에서 만들고 있는 막걸리들이다. 보길도가는 단순히 막걸리를 빚는 곳이 아니라, 보길도의 자연과 이야기를 담아 문화와 예술을 발효시키는 곳이다. 보길도가의 술은 지역 쌀로만 빚고, 감미료, 인공첨가물을 넣지 않았다. 보길도의 지하수를 사용하여 섬의 기질을 잘 나타내고, 전통 방식 그대로 자연 발효 과정을 거쳐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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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보길도가 (아래 좌측부터) 보길씨막걸리, 고산맑은막걸리, 동백꽃지다


보길도가의 술은 현재 3종으로 보길씨막걸리(9도)는 보길도의 윤슬을 닮은 막걸리로 로컬의 특성을 잘 살려 담은 막걸리이고, 고산맑은막걸리(12도)는 보길도를 사랑한 윤선도의 철학과 정신를 담아 와인처럼 마시는 막걸리다. 와인막걸리 브랜드로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다. 또 동백꽃지다(9도)는 섬 전체가 동백의 정원인 보길도의 상징이자 자부심을 동백꽃에서 영감을 받아 ‘꽃이 져야 술이 된다’는 슬로건으로 출시된 막걸리다. 모두 윤선도의 정원과 시 정신, 그리고 섬의 계절감이 술에 담겨 있다.


보길도가는 단순히 술을 빚고 파는 브랜드가 아닌, 막걸리 하나로 섬을 알리고, 섬의 가치를 전하고, 섬과 육지를 잇는 연결점이 되어 최종적으로는 ‘섬을 담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자리잡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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