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와 같은 말] 임현. 리뷰
공감의 포인트는 기저에 깔린 납득할 만한 전제에 있다. 그래서 대중성이라는 것이 대단하면서도 위험하다. 다행히 요즘 같이 서로가 날을 세워 혐오하는 시대에는 그냥 넘어가는 것들이 적어졌다. 모두가 귀찮아하며 동조했던 일들도 한 번씩 뒤돌아 생각하고 있다. 이건 환영받아 마땅하다. 잘못된 관습들을 깨게 하는 운동 아래, 또 다른 전제들도 생겨났다.
임현의 [그 개와 같은 말]은 여러 편의 단편 소설들 속에서 이런 전제들을 뒤 흔든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들의 전제를 흔들고, 관계들의 멀어짐을 소름 돋게 포착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그렇게 마음이 따가 울 수가 없다. 읽는 이로 하여금 그 동안 생각해왔던 정의들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정의는 상식선에서 분명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이다. 하지만 상식선이라는 건, 곧 나의 바른 기준이기에 구체적으로는 개인의 전제가 지배적이다.
나를 비난하고 싶겠지. 비열하고 졸렬한 인간이라고 욕하며 세상에 진실을 밝히겠다고 정의로운 척 떠들어대고 싶은 거 아니니? 그런데 다들 그래. 다들 그러고 사는 거거든. 들키지 않을 만한 허물은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거든. 그러면서도 정작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 줄은 몰라. 그러니까 아무나 쉽게 비난하고 혐오하고 그게 정의인 줄 아는거지. 정치인을 혐오하고 가정폭력범과 강간범을 혐오하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혐오하는 게 정의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터넷에 올리고 퍼트리고 그걸로 무언가 바로잡는 줄 알아. 그러면서도 정작 그게 자기 모습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거든. (중략) 부도덕하고 불의한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줄로만 알아. 그런 세계에 사는 자들의 전형이 있고 그것은 자기와 다르며 그러므로 그래서 그랬을 거라고 상상하는 거야. 여전히 어려워하는구나. 너라면 다를 줄 아는 거겠지. 그러나 네가 다른 게 아니란다. 다만 그런 상황이 너에게 없었을 뿐. 아니라고? 너는 계속 아니야? 그런데 지금 여기가 어디냐? 뭐가 그리 깨끗해서 너는 여기에 있는 것이냐? 실수라고 했니? 그 일은 사고였다고? 봐라, 말하는 것이 꼭 나를 닮았구나. [고두] 中
관계의 멀어짐이 '구체적인 개인의 전제들로 인한 상처' 때문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결코 너의 탓도 나의 탓도 아닌 것이라고. 전제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담고 있으며, 지금의 상태에서 자신을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라고 계속해서 말한다. 그것은 결코 바뀔 수 없는 것이라고 안심을 시키기에 더욱 마음이 쓰리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뒤 나는 세주와 크게 싸우게 된다. 하루가 지나기 전에 화해하고 일주일이 되기 전에 같은 이유로 언성을 높인 뒤 연락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원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라면 나는 어떤 말로든 세주를 위로했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떠올린 것은 겨울에 죽은 그 개뿐이었다. [그 개와 같은 말] 中
나는 오랫동안 우재와 만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로부터 1년이 훨씬 지났으나 우리 중 누구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심하게 다투었다가 서먹한 기운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사이가 틀어져버렸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과 자주 멀어지는 편이다. 어느 순간 견딜 수 없다는 점을 발견하고 결국엔 그걸 참지 못했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그 사람들과 내가 달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서로 너무 닮아서였다고 생각한다. 아마 우재와도 같은 이유로 멀어진 게 아닌가 싶다. 우리가 너무 닮았던 게 아닐까. 그걸 알아보고 우재나 나나 결국 참지 못했던 게 아닐까. [좋은 사람] 中
여러 이야기 속에서 나와 멀어진 많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쉽게 가까워지지 못하는 성격인 만큼, 어렵게 만나고 어렵게 지켜갔지만 결국은 쉽게 끝냈던 관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우리가 가까워지는 데 큰 도움을 준 정의의 기준들은 커다란 울타리가 되어 우리를 둘러주었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를 지켜야 할 작은 전제들로 우리를 무너뜨렸다. 더 이상 없는 우리 앞에 잘잘못을 가른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나나 우리를 지키는 것이 아닌 너만을 지키는 구체적 전제들을 꿰뚫는 내 눈이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모든 것을 포용할 만큼 너를 사랑하지 못했음을 자책해야할지도 모른다.
현관문 앞에 서 있던 여자는 몹시 피곤해 보였습니다. 푸석한 얼굴 때문에 나이에 비해 생기가 없어 보인달까. 눈에 띄게 어두운 표정으로 사고를 당한 사람이 자기의 남편이라고 했습니다.
“불쑥 찾아와서 죄송해요.”
거기에 대고 더 이상 우리가 도울 일은 없다, 귀찮게 굴지 말고 그만 나가달라고 할 만큼 나는 매정한 사람이 못 됩니다. 그런 냉대라면 이미 너무 많이 당했을지도 몰라요. 여자에게는 작은 호의와 배려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마실 것을 더 권하는 내게 여자는 사양하며 대답했습니다.
“생각보다 넓네요.”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집 안을 둘러보았어요.
“저희도 이 아파트에 분양 신청을 했었거든요. 평수에 비해 넓어 보여요.”
나를 의식해서였는지 부끄러운 듯 다시 고개를 숙였다가도 주변을 힐끔거렸습니다. 소파를 부드럽게 쓸어보기도 했어요.
“결국 계약은 못했어요. 갑자기 상황이 안 좋아졌거든요.” 안방의 닫힌 문 쪽을 바라보며 여자가 말했습니다.
“남편과 작게 식당을 했었는데 화재였어요.”
“저런.” 의도하지 않게 큰 목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에요.”
기운 없이 담담한 반응에 나는 도리어 미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그 여자의 삶이 나와 그렇게 멀어 보이지 않더라고요. 지금까지 내가 불행하게 살아왔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나대로 그냥 살았을 뿐인데 내가 된 거잖아요. 별다른 노력도 없이 저 여자가 되지 않은 거잖아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우연한 사고들이었어요. 무얼 특별히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다만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나를 따라 여자는 작은방과 욕실, 주방을 차례대로 둘러보았습니다. 마치 새로 이사 갈 집을 구경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때 나는 여자의 발을 보았습니다. 맨발이더라고요. 그 까만 발등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그걸 덮어줄 무언가가 필요해 보였어요. 그리고 내가 말했습니다.
“우리 남편은요, 고아원에서 자랐어요.”
크게 다를 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여자에게 만큼은 어딘가 더 딱한 처지로 비춰지길 바랐습니다. 우리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마냥 행복하기만 한 가정은 아니라고요. 여자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는 걸 나는 알았습니다. [외] 中
나이가 들수록 쉽게 위안 받고 감동하지 않는다. 더불어 쉽게 누군가를 위로하려 들지 않고, 함부로 따라 울지 않는다. 뜻밖의 위안은 뜻밖의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알버려서일까. 더불어 나의 정의와 상식도 타인에겐 뜻밖의 혐오와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