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기억] 윤이형. 리뷰
작은 잊음들.
처음에는 매우 사소한 서운함에 그칠 뿐인 그런 것들. 모이고 모여서 결국은 관계를 균열시키는 것들. 대부분의 관계에서 그렇다. 기억하지 못해서, 기억하지 않아서 토라지고 실망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어떠할까. 그런 사람이라면 조금 더 이상적인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검사가 끝나자 우리나라에서 당시 그 분야 최고 권위자라는 의사는 내게 변형된 과잉기억증후군(hyperthymesia)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엄마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말들에는 내가 정상인이 아니라는 의미가 들어 있었고, 그것이 엄마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엄마의 눈물을 보자 내가 그때까지 본 수없이 많은 눈물이, 유치원과 학교에서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몇 년 전 우리 집 앞에서 전화에 대고 욕설을 퍼부으며 하염없이 울고 있던 젊은 남자의 얼굴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겹쳐지고, 빙글빙글 돌면서 엄청난 아우성으로 변해 머릿속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지율(주인공)은 그렇게 자신과 관련한 모든 것을 기억했고, 그런 그의 능력은 가장 먼저 가족이라는 지반을 약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견고하지 못했던 가족의 연대는 손 쓸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삶에서 기억의 과잉은 가장 크고 치명적인 결핍이 된다.
나는 이 집에서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어. 한번도.
집을 나가던 날, 어머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에게는 내가 그 말을 들었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지고 가야 하는 짐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충격이 내게 잊을 수 없을 만큼 컸음에도, 나는 어머니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에 있던 ‘어머니’라는 팔레트는 셀 수 없이 많은 칸으로 나뉘어 있었고, 거기에는 서로 다른 명도와 채도, 색깔을 지닌 기억들이 물감처럼 담겨 있었다. ‘나는 행복한 적이 없었어’라는 어머니의 말은 명백하게 새까만 빛깔이었고, 보통 사람이었다면 기억의 마지막에 칠해진 그 빛깔이 다른 많은 아름다운 빛깔들을 까맣게 삼켰겠지만, 내게 그건 단지 하루의 기억에 불과했고, 결코 그 날의 칸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었으므로 다른 어떤 것도 더럽히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내 죄책감은 거기서 비롯되었다. 한 사람을 중립적으로 기억하는 일이 어째서 다른 사람에게 미안해야 할 일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버지의 아들인 내게 그것은 분명히 미안한 일이었고, 나아가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지율은 어머니가 떠난 이후로 책 속에 파묻혀 살았고, 어렵지 않게 A대 의예과에 진학한다. 진로에 대해 특별한 고민이 없었던 그는 실습을 하게 됐을 때에서야 깨닫게 된다. 감당하기 힘든 기억들이 쌓여갈 것이라고. 그는 대학을 그만둔 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게 된다. ‘스몰 월드’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 그 곳에서 은유를 만나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그런 식으로 길고 자세하게, 숨김없이 털어놓게 될 줄은 몰랐다. 이야기를 들은 은유는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자신은 어떤 관계든 오직 마지막만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웃었다. 자신에게 어이가 없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그녀가 정상이라는 증거였다. 그런 식으로 망각이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적인 메커니즘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는거잖아?
-글쎄, 그런 걸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어? 난 그냥 리셋을 하고 있을 뿐이었던 게 아닐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런 건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은유는 그렇게 말하고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사랑에 대한 무능력을 각자의 방식으로 연달아 고백해버린 셈이었으니까. 우리는 이상한 덫에 함께 걸려버린 두 개의 인형 같았다. 어쩌면 그건 관계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들이 서로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였던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가장 보여주기 싫은 부분을 보여주고, 나는 이 정도로 이상하고 망측한 사람인데 그래도 나를 좋아해 줄 수 있겠느냐며 시험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몰라도 우리 역시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그 시험을 제대로 통과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소한 잊힘조차 없는 연애는 이상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에게 기억하는 행위는 재능이라기보다는 장애에 가까웠다. 어렵게 자신을 드러냈을 때, 사랑하는 이가 그 장애의 아픔을 보아주기를 무엇보다 기대했다. 하지만 은유는 ‘보편’에 속해있었다.
너는 사람의 결핍이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했지.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아. 학교 다닐 때 왕따를 당했었어. 내가 사회로 나와서 만나본 사람 중에 어떤 식으로든 그런 따돌림을 당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어. 다른 것들도 그래...... 그런 일들을 깊이 떠올리고, 그걸 특별하다고 비극이라고 여기면서 어떤 기억을 추출해내려고 애쓰는 일이 내게는 수치스럽게 느껴져. 그래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거야. 내가 아는 사람들도, 나도 그래. 말을 할 수가 없어. 말을 하는 사람들은 우선 살아남은 사람들이지. 살아남았고 목소리가 있는 사람들 말이야. 그래 너처럼 A대 의예과 문턱이라도 밟아봤다거나. 그녀는 웃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나는 정말로 너무 평범해. 간신히 살아가고 있고, 그게 부끄럽다고. 내가 너라면....
그 말을 듣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화가 났다. 나 자신과 부모님, 그리고 몇몇 사람들의 기억으로 이루어진 조그만 세계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나는 힘겨웠는데, 그녀에게는 그런 싸움을 계속하는 내가 그저 여유를 부리고만 있는 걸로 보인 모양이었다. 서운했다. 은유 입에서 나오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이, 거기 묻은 그녀의 수치심이 가시처럼 나를 찔렀다. 그녀는 내가 살아남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녀에게 나는 실은 평범한 사람조차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존재할 수 없던 보편의 영역에서 장애는 인정되지 않았고, 그녀는 그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아픔을 보아줄 수 없었다. 사랑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평범함’에 대한 욕망은 커져갔다. 남들처럼 덜 기억하고, 남들만큼 잊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오브를 복용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여러 가지를 바라고 있었다. 더 이상 안전하고 작은 세상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혹은 그른 것인지 알고 싶었고, 세상을 채우는 많은 일들에 대해 설령 틀리거나 편향된 것이라 해도 나 자신의 의견을 갖고 싶었다. 영원하지 않은 것들의 애틋함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늙은 나무가 잘려나가거나, 추억의 장소들이 문을 닫았을 때 슬퍼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면 했다. 내게 그런 슬픔은 '인간'의 표지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은유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를 사랑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불필요한 과거를 망각이라는 순리에 맡기고, 본래 그것들이 가야 했던 곳에 돌려놓고 싶었다. 나는 은유를 사랑했고, 잃고 싶지 않았으니까.
소설은 중년이 된 지율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불현듯 은유에 대해 기억하려 애쓰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약을 복용하면서까지 보편을 취하려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그 사랑은 곁에 없다. 왜 그 사랑을 잊게 되었는지도 이제 알지 못한다. 그녀가 이전에 이야기했듯 마지막만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은유는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크고 작은 다툼들이 생각났다. 무심해서 세심하지 못해서 사랑을 하면서도 자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그냥 애정의 정도, 관계의 특수성으로만 그 문제를 바라봤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지율의 이야기를 접한 후로, ‘사랑이 뜨거울 때만 기억하려 애쓴다’는 명제를 조금 떨어져서 생각하게 했다. 나를 탓하는 것을 멈추고 안심했고, 누군가를 너그럽게 헤아릴 수도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 모두 기억되고 잊히는 것 사이에서 자주 온도를 재곤 한다. 수많은 다툼들이 전부를 기억해 달라 기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대를 위해 기억하려 애쓰는 모습들 – 자꾸만 잊는 나를 믿지 않고 메모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등 –을 기대하는 정도일 것이다.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게 잊히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는 것. ‘망각’이 있기 때문에 ‘지금’이 소중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