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일어나자마자 차 마시고 시간 보낼 때는 괜찮았는데, 밖에 나와 걷기 시작하니 몸이 자꾸 땅으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임신했을 때 임신성 공황을 겪었는데.. 비슷한 증상인가 싶어 순간 식은땀이 났다.
정확히는 신발이 버겁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끈도 헐겁게 풀어헤쳐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신발을 약간 크게 사고, 신발 끈을 알맞게 조여 신는 편이다. 갑자기 얇은 양말을 신어서 그런거라 생각하기엔 많이 크게 느껴졌다. 평소 40여분을 걷는다면 오늘은 20분도 안 되어 발바닥과 무릎에 무리가 심하게 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결심하며, 설마 남편 신발을 신고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아무리 여자 왕발(255)라도 280은 진짜 왕왕왕발 아닌가?ㅎㅎ 만약 남편 신발을 신었다면 엘리베이터에서 부터 알지 않았을까. 걷기도 힘든 수준 아닌가? 내 몸이 오늘 유난히 안 좋아서 그런 것 아닌가.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몸이 많이 안 좋아진 걸까. 신발이 목이 있는 디자인이라 그런걸까. 그래서 벗겨지지 않아서 신을 수 있는건가. 한 가지 일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집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냥 계속 헛웃음이 났다.
그냥 계속 허파에 바람 든 사람처럼 웃었다. 신발을 질질 끌면서 무릎도 너무 아프고 그냥 계속 웃음이 났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러서 이게 무슨 일인가. 아무도 공감해줄 수 없는 일에 나 혼자 허탈해서 계속 웃음이 났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혹시나 싶어 신발장을 열어보았더니 내 신발이 장안에 잘 모셔져 있었다. 당연했다. 아니 평소에 잘 신지도 않던 신발을 왜 현관에 내어두고, 내가 매일 운동갈 때 신는 신발을 장에 넣어 둔 건지.
샤워하는 내내도 어이없어서 계속 웃음이 났다.
오늘 하루는 아이랑 시간을 보내면서도 계속 웃었던 것 같다. 참 이렇게도 웃을 일을 만든다. 2020.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