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하고 처음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했다. 길을 건너려는데 이미 눈앞에 버스가 도착해 사람들을 태우고 있다. 이전 같았으면 뛰어가 버스에 올라탔겠지만 버릇이 무섭다고 서두르지 않고 차를 보낸다. 임신 중에 ‘출산 후 하고 싶은 일 리스트’에는 밥 먹고 배를 통통치며 전력질주하기;;, 보행자 신호가 몇 초 안 남은 상황에서 횡단보도 후다닥 뛰어가기;; 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임신 중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조심하며 살아야했나 싶었다.
다행히 버스는 금세 다시 왔고, 덕분에 앉을 자리가 넉넉했다. 뒤쪽으로 걸어가면서 비어있는 배려석을 보았다. 늘 당당하게 앉을 수 있었던 곳이었는데 갑자기 거리감이 확 든다. ‘이제는 아니구나.’라는 마음이 스친다. 즐겨 앉던 1인석 제일 마지막 자리에 앉아 가방을 정리했다. 서둘러 준비하고 나오느라 대충 둘러메고 나온 탓이었다. 쓰고 나서 말라버린 손 소독 티슈와 소지품들이 엉켜있었는데 그 사이로... (갑자기 울컥) 내 핑크색 방패가 보였다.
가방을 바꾸면서 두고 나갔을 때 불안했던 기억 때문에, 외출하기 전날 밤엔 늘 점검하던 내 방패, 임산부 뱃지. 만삭 직전까지도 배가 남들보다 많이 안 나왔던 터라 티가 잘 안 나서 더욱 이 뱃지를 방패삼아 다녔었다. 사람들이 그냥 길을 지나다닐 때, 특히나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끌거나 할 때는 얼마나 위협적인지 잘 모를 것이다. 길에서 떼 지어 뛰어오는 아이들이나 자전거로 전력 질주하는 학생들, 자기만의 질서로만 달리는 전동 킥보드와 휠체어까지.. 나는 이 뱃지 없이는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이 모습을 보며 엄마는 지하철이나 대중교통 이용하는 젊은이들이나 알지, 근처에서만 일하고 생활하는 나이든 사람들은 그게 뭔지도 모를 거라 하셨다. 그럴지도 몰랐다. 맞는 말이었다. 여태껏 뱃지를 방패로 알고 지냈는데, 신경안정제 정도였다니 허탈해지는 느낌이었다.
출산일이 가까워올수록 산모들은 하나같이 얼른 끝내고 싶어 한다. 만삭으로 생활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가 세상으로 나와야만 끝이 나는 문제였다. 그렇게 출산을 하고 모두들 아기를 품에 안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내가 버스 안에서 뱃지를 발견했을 때 같은 순간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젠 아니구나.’
가끔 아이가 이유 없이 울 때면 ‘내가 방패에 지나지 않았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둘만의 공간을 가득채운 울음에 나 역시 아직은 보호받고 배려 받고 싶은 마음에 속상해진다. 하지만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까르르 웃기 시작하면 금세 그 마음이 죄스러워 얼른 추스르기 바쁘다. 아이는 눈치채지도 못했을 마음인데 찔려서 괜히 한번 안아본다. 몸에 열이 많아 항상 따뜻한 아이의 체온이 내게 전해진다.
우리 서로 방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