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게 바삐 지내며 몰두할 때는 모르다가 여유를 두고 돌아보면 벌써 이만큼 지나있구나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아이가 벌써 돌을 앞두고 있다니 새삼 놀랍다. 아이가 더 이상 팔다리를 휘적거리다 놀라지도 않고, 쉴 새 없이 입을 뻐끔거리지도 않는걸 보면 정말 많이 컸구나 싶다. 혼자 걸어보려 무엇이든 잡고 일어서는데, 이제 정말 아기이기보다는 어린이에 가깝게 성장해가고 있다.
전업주부들은 아이가 다 크면 우울증에 많이 걸린다고 한다. 아이의 성장세가 가파를 때는 그것을 함께 기뻐하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시간가는 줄 모르지만, 아이가 다 커버리면 ‘내가 뭔가’라고 쉴 새 없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누구도 아닌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가 매일 같이 내게 하는 말이다. 아이가 커가는 얘기로 호호호 재밌게 통화를 하다가도 마무리는 늘 이런 식이다.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따지고 들면 이상한사람 되기 십상인 말들. 나를 위하는 말이라 하면서 상처주기도 하는 말들. 엄마의 이런 말들에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많이 무뎌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단단해지고 아닌 것에 따라 이렇게 받아들이는 게 달라질 줄이야. 이제는 그 말들에서 그동안 많이 외로웠을 엄마를 보려고 한다.
엄마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정말 엄마의 영향력이란... 엄마의 말들은 대부분 지독한 유산처럼 마음에 품고 늘 스스로를 일깨우고 자책하며 살아왔다.) 아이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고, 그 안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나를 다잡아야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 내가 해낸 건 다름 아닌 ‘임산부 속옷 버리기’다. 계속 미루고만 있던 건데 날 잡아서 싹 해치워버리니 역시 마음이 홀가분하다. 임부복이나 수유복 등은 진작 당근에 팔아버렸어도, 끝까지 놓지 않고 있던 게 임산부 속옷이었다. 속옷이라 팔 수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한번 입다보니 편하고 익숙해져서 인 것도 있었다.
집 청소를 하다가 구질구질해진 물건들을 마음잡고 확 버리는 날이 있지 않던가.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편안하고 세상 귀한 보물이었던 것들에 순식간에 정이 떨어졌다. 매일 입으면서도 느꼈을 텐데 새삼 한 번에 감정이 몰아서 찾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편한 속옷에 맛을 들인 이상 이전에 입던 예쁘지만 불편했던 속옷들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대체제를 찾기 전에 막연히 버릴 수는 없었다. 다행히 내가 임부 속옷을 착용하는 사이에 속옷 시장은 많이 변해있었다. 답답한 와이어와 볼륨 패드를 앞세운 것들 보다는 편안하면서 예쁜 속옷들이 많이 생겨있었다.
새 속옷들이 속속 택배로 도착했고, 과감히 과거의 속옷들과는 안녕하게 되었다. 이렇게 쉽게 될 일이었다니...... 미루고 미루다 해낸 이 사소한 하나의 일로도 동기부여가 된다. 내가 일을 안 하고 아이와 계속 시간을 보내진 않을 생각이지만, 설사 그런다 한들 나는 나를 등한시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을 등한시 하는 일이 꼭 직업의 유무와 관계가 있을까. 일이나 이상이 곧 그 사람이라고 더 이상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를 돌아보며 자책하는 악순환의 루틴이 아닌 다잡고 단단해지는 선순환의 루틴이 내 아이에게 건강하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