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딸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박우란. 리뷰

by D보노

엄마가 된 딸


임신 중기면 성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품고 있는 아이는 명확하게 딸이라 했다. 물론 딸도 아들도 다 좋았다. 그저 건강히 내 곁에 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모든 엄마의 마음처럼. 다만 딸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마음이 많이 조급해졌다. 남들보다 무난한 임신 생활을 보냈다 해도 출산은 비현실 그 자체였기에 짐작 불가능의 두려움이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딸의 엄마가 된다는 건 또 다른 결의 두려움이었다.

아들의 세계와는 달리 딸의 세계, 여성의 세계는 내가 경험한 것이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해도 내 아이가 딸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게 걱정되는 것은 당연했다. 더군다나 모녀 관계에 있어서 밝은 기억만 존재하지 않던 나로서는 내 딸과 나의 관계도 큰 불안이고 숙제였다.


모든 엄마나 모성이 딸을 무조건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사용하거나 자신의 굴레로 압도하는 것도 아니고, 늘 그런 것도 아니지요. 하지만 엄마인 내가 나의 불안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때, 그것을 관리하지 못할 때, 그에 대한 대가는 가장 가까운 자녀가 치러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신경증적인 불안은 많은 육아서를 읽게 했다. 출산 전에 읽은 책 중에는 막상 내 아이의 사정에는 맞지 않은 것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로 실용서라 일컬어지는 책들이 그러했다. 많은 책을 전전했고 아이의 생활에 패턴이 만들어지고 안정될 즈음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제목부터 나를 확 끌어당겼다.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라니…….

생각해보면 나의 엄마를 이해하려던 때에도 참 많은 책을 보았다. 결국에는 책보다는 시간이 우리의 관계를 봉합 시켜 주었다 믿는 처지면서도 나는 또 책들 사이를 서성이다 이 책에 이르렀다. 이 책을 읽으려는 결심은 나의 무지로 인한 심리적 반복만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테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연대는 질긴 심리적 반복을 만들어 내면서 삶을 형성해 갑니다. 고유한 개인으로 서서 건강하게 관계를 맺어 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역설적으로 나 자신과 부모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런 반복은 멈추기 어렵습니다.


이 책에서는 끊임없이 엄마 자신의 무의식에 내재한 욕망을 회피하지 말고 들여다보라 말한다. 그것이 모든 것의 출발임을 누차 강조한다. 이러한 책의 메시지는 나의 엄마를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프랑스의 정신 분석학자인 프랑수아즈 돌토는 “아동의 심리적, 신체적 증상은 말로 표현되지 않은 엄마의 거짓말”이라고 했고, “아이는 말해지지 않은 채 남겨진 모든 것을 이해한다.”라고도 했습니다. 이처럼 엄마에게 아이는 때때로 엄마 자신의 무언가를 채우거나 보상하기 위한 대상으로 자리하기도 합니다. (…) 무언가를 누르고 회피할수록 그 덩어리는 더 짙어지고, 그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의 책임과 탓은 주변 가족에게 돌아가기 쉽습니다. 스스로의 무의식적 욕망을 대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오히려 그것에게 자유로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 길이 녹록하지만은 않지요.


돌이켜보면 우리 모녀(엄마와 나)의 큰 전환점은 엄마의 대학 입학이었다. 내가 오랜 입시로 엄마의 꿈을 가로막고 있었는지 몰랐다. 내가 대입에 뒤늦게 성공하자 엄마는 서둘러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했다. 방통대라는 게 멀리서 보면 만만해 보여도 가까이서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엄마는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이는 것들을 척척 해내며, 졸업까지 했다. 이메일 계정도 만들 줄 모르던 분이 졸업이라니 엄청난 결과였고, 우리는 함께 기뻐했다.


엄마가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엄마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언어로 표현할 때, 아이는 안전하게 엄마를 인식하고 수용할 수 있으며, 또 스스로 저항하거나 거리 띄우기도 시도할 수 있지요. 그 과정이 없으면 아이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역량을 잃어버리게 되고요. (…) 청소년과 이야기할 때, 아이는 엄마가 무언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불안하고 힘들고 답답하다고 말하고는 합니다. 사실 엄마 자신도 본인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지를 잘 모릅니다. 그저 “네가 잘되길 바라는 거지,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모호하고 무책임한 말을 던질 뿐이지요.


어린 나이에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엄마의 개인적 욕망은 감춰져야만 했을 것이다. 엄마의 결심을 듣기 전에 과정에서의 속사정을 한 번이라도 이야기해주었음 좋았을 텐데 싶었다. 하지만 딸에게 그 깊은 곳의 목소리를 들키기 싫었을 마음도 너무 이해가 되었다. 엄마는 그렇게 교육학을 전공하며 내 생각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나 또한 지금 딸을 낳은 엄마가 되어, 이 책을 읽으며 나를 들여다보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겠단 결심에 나섰다.

아이는 내가 웃으면 따라 웃고, 내가 우는 시늉을 하면 따라 운다. 내가 핸드폰이나 책을 보면 따라 만지고 싶어 하고, 허공을 응시하면 나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다. 그런 아이와 눈을 맞추자 순간적으로 욕심이 일었다. ‘아이가 내가 가진 단점을 닮지 않았으면… 내가 들어보지 못한 말과 느껴보지 못한 눈빛과 사랑을 느꼈으면… 밝고 맑게만 자라주었으면…’ 하나둘 아이를 향한 욕심이 늘어날 때, 이 책에서 제시해준 것들을 되뇌어야 할 것 같다.


간혹,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해서요.”, “내가 상처가 많아서요.”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받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것은 줄 수 없고, 설령 줄 수 있다 해도 주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립니다. (…) ‘나는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했는데, 나한테도 엄마가 끝까지 함께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나는 이렇게 받아 보지 못했는데. 나는 늘 혼자서 끙끙 외로웠는데……’ 내가 해 주면서도 내 아이가 부러워지는 이 복잡한 감정은 무엇일까요? 그 부러움은 내 안에 있는 딸아이 또래의 어린 내가 가지는 부러움입니다. (…) 이때는 아이를 재우고 나서 혼자서 조용히 어린 내가 그런 엄마를 소망했던, 그리고 기다렸던 순간들을 애도합니다. ‘이랬겠구나. 그래서 나는 힘들었구나.’ 하고 어린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 위로하고 다독거리지요.

좋은 부모는 곁은 충분히 내주지만 자녀에 관한 한 무능한 부모입니다. 이는 현실적인 무능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부모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면서 아이에게 끝없이 마음을, 곁을 내주지만 ‘네 삶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라는 무능의 자세가 아이를 생동감 있게 살도록 만들 것입니다.

현실에선 정반대 경우가 훨씬 더 흔합니다.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아이들은 부모에게 의존하거나, 아니면 부모를 만족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게 될 뿐입니다.


많은 육아서들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면, 이 책은 훨씬 근본적인 것들을 이야기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나처럼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나 임신부에게 훨씬 유용해 보인다. 하지만 비교적 큰 자녀를 둔 부모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딸에게도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해도, 끝내 엄마에게만은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은 너무 진솔하다.) 대신 엄마에게는 재미있는 소설책 끝에 ‘새해에도 사이좋게 지내요. 건강합시다’라는 메시지를 적어 건네야겠다.



*이 글은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1/26)으로 소개되었습니다. http://www.bandinlunis.com/front/display/recommendToday.do?todayYear=2021&todayMonth=1&todayDay=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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