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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 Hyun Apr 16. 2019

작약

꽃의 여왕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살랑거리는 바람이 부는 봄 즈음에 피어나는 커다랗고 풍성한 꽃, Peony(피오니)라 부르는 작약이다.


얼굴만 한 꽃의 크기와 그 자태의 화려함으로 쉬이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작약은 숙근초이다. 숙근초란 꽃을 피우고 가을에 모든 줄기와 풀을 말려 보내고 땅속에서 새 순으로 다음 봄을 준비하는 여러 해 사는 화초들을 이른다. 한 해를 살아내고 겨울을 보내는 방법이 구근과 많이 닮았지만 땅을 파 보면 동그란 구근들이 아닌 나무 모양의 뿌리에서 순들이 솟아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홍일 작가의 '작약' Copyright ⓒ한홍일


중국에서 넘어왔다고 알려진 작약은 기후가 비슷한 우리나라 노지에서도 잘 자란다. 가을에 줄기와 잎들을 다 떨어뜨리고, 스스로 월동에 들어가게 되는데 어느 정도 춥게 지내는 동안 뿌리와 순이 더 건강해진다는 가드너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작약은 뿌리가 한번 자리 잡으면 그 이후로는 큰 까다로움 없이 꽃을 잘 피운다. 다만 뿌리가 예민해 늦은 봄 즈음 자리를 잡고 있는 중에 분갈이 등으로 자리를 옮겨주게 되면 그 해는 꽃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을, 겨울을 땅 속에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며 잘 보내고 나면, 봄이 오고 어김없이 작약은 빨간 새싹을 땅 위로 올린다. 모든 줄기를 말리고 빈 화분, 땅에서 빨간 싹이 올라올 때면 그 생명력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작약새싹 Copyright ⓒD.Hyun

필자도 처음 작약을 얻어와 그 해 꽃을 못 피우고 실망감에 온실 한구석에 모른 척 방치해 두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이듬해 그 화분에서 스스로 월동을 하고 싹을 올려냈다. 그 감동은 물 떠 온 하인만이 아는 감정일 터.


작약은 흔히 모란과 혼동된다. 꽃은 모양도 개화시기도 거의 비슷하다. 작약은 꽃이 지고 나면 식물의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고, 뿌리로만 월동하는 여러해살이 꽃인 반면에 모란은 겨울에도 나뭇가지가 남아있는 나무 꽃이다. 겨울이 아니고서는 둘은 잎의 모양으로 구별하는데, 작약은 길쭉한 윤기 있는 잎들이 어긋나고 모란은 오리발 또는 아기 손 모양의 잎이 난다.

왼쪽 | 모란꽃 Copyright ⓒ대림원예종묘 오른쪽 | 작약꽃 Copyright ⓒGardendesign.com
왼쪽 | 모란잎 Copyright ⓒ 국립중앙과학원     오른쪽 | 작약잎 Copyright ⓒD.Hyun

우리나라에서 보통 5월 즈음 개화하기 시작하는 작약은 꽃봉오리가 서서히 벌어지면서야 그 컬러가 보이기 시작한다. 작약의 꽃봉오리가 생길 즈음엔 동그란 봉오리에 개미가 떠나지를 않는데, 꽃봉오리 주위에 개미를 유인하는 꿀이 있기 때문이다. 작약은 개미들을 유인해 식물에 있을 진드기나 응애들을 잡아먹도록 하는 공생관계를 유지한다.

작약 꽃봉오리 Copyright ⓒFlower Muse
타샤 튜더의 작약 정원 Copyright ⓒTasha Tudor and Family

작약은 꽃 한 송이의 크기가 매우 크다. 동방견문록을 쓴 Marco Polo는 처음 작약을 보고 '양배추만 한 장미'라고 표현했다. 작약은 한 겹의 꽃잎들로 이루어진 홑작약과 암술과 수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겹겹이 싸인 꽃잎을 가진 겹작약으로 나뉜다. 컬러는 수수하고도 화사한 흰색부터 화려한 분홍빛과 짙은 적색까지 다양하다.


Scene from Gossip Girl  ⓒ Gossip Girl

분홍빛이나 적색의 작약은 화려하고 풍성한 느낌을 낸다. 척이 들고 있는 무심한 듯 둘둘 포장한 꽃, 분홍빛 겹작약이다. 미드 가십걸에서 화려하고 색깔 있는 블레어의 캐릭터를 그대로 드러낸다.

From the movie 'Sex and the City (2008)' Copyright ⓒNetflix

역시 같은 종류의 작약, 영화 'Sex and the City (2008)에서 주인공 캐리의 웨딩화보 촬영 중에 부케로 등장했다. 함께 매치된 드레스는 'Carolina Herrera'의 드레스로 그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을 함께 작약이 잘 어우러진다.


From the TV Series and movie 'Sex and the City' Copyright ⓒNetflix

반대로 백색의 작약은 사랑스러우면서 수수하고 깨끗한 느낌을 낸다. 같은 드라마/영화의 주인공중 샬롯의 캐릭터가 그 모습과 닮았는데, 샬롯의 집에는 백색 작약이 어레인지 되어 있는 장면을 여러 번 보여준다.


From 'It's Complicated (2009)' Copyright ⓒNetflix

"It's Complicated (2009)"에서 제인 역의 메릴 스트립은 여유로우면서도 성숙미를 풍기는 중년의 엄마, 아내 역할을 소화해냈는데 - 이 장면은 독립한 자녀들이 돌아오기 전날 테이블의 베이스 어레인지먼트를 세팅하는 장면이다. 그녀의 캐릭터를 역시나 잘 드러내 주는 백색의 사랑스러운 작약을 풍성히 꽂았다.


From U.S TV Series "Scandal" Copyright ⓒNetflix

또 한 번의 강력한 작약의 인상을 남겼던 미드 "스캔들". 영부인 멜리 그랜트 역을 맡은 벨라미 영은, 자녀를 잃고 그 무덤에 새하얀 작약을 끈으로 질끈 묶어 아무 포장 없이 들고 가 무덤 곁에 눕는다. 백작약이 아닌 다른 꽃이었더라면 이런 애절하고도 사랑하는 감정이 표현되었을까 싶다.


이토록 아름다운 작약은 그 아름다움에 여러 예술가들의 뮤즈가 되었다.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유명한 한홍일 작가는, 작약을 작업실에 두고 시간대별로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한홍일 작가의 일장춘몽(一場春夢)  Copyright ⓒ한홍일
내 앞에 꿈을 보았다. 저 꽃 한 다발 내가 본 꿈이다.
꿈속으로 뛰쳐 들어가 은밀하게 주고받던 그 눈빛 한 점 들어내려 애썼다.
이 작업들은 내가 꿈을 마주했던 그 순간의 기억이다.
Bowl with Peonies by Vincent Van Gogh Copyright ⓒWikiData

한국의 사진작가는 물론 인상파의 대가 빈센트 반 고흐 또한 작약에 한참 빠져 그림을 그렸다. 마구 꽂혀 있어도 작약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빛에 따른 사물의 다른 인지 모양을 그림으로 나타낸 인상파의 접근을 이어 현재에도 작업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Dennis Perrin은 인상파적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꽃 정물을 주로 그리는 미국인 화가이다. 그도 역시 작약을 빼놓지 않고, 다양한 빛 아래 작업하고 있다.

왼쪽 | Resting with Peonies  오른쪽 | White Peonies in Sunlight all  by Dennis Perrin ⓒDennis Perrin

올 해도 아름다운 작약을 정원에서 만나길 기대하며, 작약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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