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존중하는 작은 용기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사회와 감정의 리듬을 맞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세상의 상식과 어긋난 그의 말과 태도는 사회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낙인찍히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불편해하고, 낯선 존재에게 거리감을 둡니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이방인’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타자를 가리키는 말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 속 ‘이방인’은 어떤 모습일까요? 단지 사회의 공감대에 동참하지 못한 개인이 아니라, 국경 너머에서 타인의 시선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나이프를 발음하는 방법』은 그런 디아스포라의 삶을 조용하고도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소년은 어느 날 책에서 ‘Knife’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아버지에게 그 발음을 묻습니다. 아버지는 자신 있게 말합니다. “크나이프.” 다음 날, 수업 시간. 소년은 그 단어를 자신 있게 읽지만, 교실은 웃음으로 가득 찹니다. 선생님은 부드럽게 정정합니다. “K는 묵음이란다.”
소년은 집에 돌아와 이 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틀렸다는 걸 알았지만, 그의 방식도 옳았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세상은 틀렸다고 말했지만, 소년은 끝까지 ‘크나이프’도 맞다고 믿으며 조용히 세상과 마주합니다.
그 단어를 지켜내는 그의 태도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저항처럼 보였습니다.
『나이프를 발음하는 방법』의 저자 수반캄 탐마봉사는 라오스계 캐나다인입니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본격 개입했고, 전쟁의 불씨는 국경을 넘어 라오스까지 번졌습니다. 수많은 라오스 인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고, 작가의 가족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난민이자 이방인이었고,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습니다.
세상은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한 무리의 집단이 공감하고 살아가는 생각을 ‘문화’라고 부릅니다. 문화는 특정한 지역과 시대에 따라 형성되며, 옳고 그름으로 나뉠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낯선 문화를 미개하다고 판단하거나,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합니다. 가령, 과거 한국의 개고기 문화는 서구 사회로부터 ‘미개한 풍습’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단백질 섭취가 어려웠던 한 사회의 생존 방식이 숨어 있습니다.
이방인으로 불렸던 이민자들, 디아스포라의 아픔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들이 겪은 고통은 단지 언어나 생활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이해 없이 던지는 시선과 공감 없는 판단, 그 무관심 속에서 이방인은 점점 침묵하게 되고, 마음속 어딘가에 자신만의 언어를 감춥니다.
그렇게 소년은 ‘크나이프’를 지키며 자라납니다.
문화는 이해될 수 있을 때 존중받고, 그 존중은 곧 인간에 대한 이해로 이어집니다. 나와 다른 방식,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려는 작은 시도는 결국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이방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디아스포라란, 원래 살던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을 뜻합니다. 대부분은 전쟁이나 박해, 정치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고향을 등지고, 낯선 땅에서 싸움을 이어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들입니다.
일제강점기의 3·1 운동 이후, 일부 지식인들은 고국을 떠나 중국 상하이로 향했고, 그곳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했습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디아스포라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통해, 조국을 잃은 시대에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야만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겠습니다.
by 사색하는 덕주부
책을 읽고, 삶을 사유하며,
언젠가 아들에게 전할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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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AI 생성 도구를 통해 직접 제작하였습니다. *